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언어를 터득한 사진가들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자연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는다. 파헤쳐진 숲의 눈물이, 목마른 누의 울부짖음이 보이는 듯, 들리는 듯하다.

히말라야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가 _박종우

20년 넘게 히말라야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통문화와 자연을 사진에 담아온 사진가 박종우. 개발로 인해 빠르게 사라져가는 히말라야의 전통을 기록하기 위해 요즘도 그는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네팔을 잇는 험준한 산맥을 찾는다. 4만5천여 개의 빙하가 있어 1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젖줄이기도 한 히말라야 산맥이 기후온난화와 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10년 넘게 신문사 사진기자로 활동했다고 들었어요. 히말라야 작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1986년, 지인들과 인도와 네팔을 다녀온 다음 평생 히말라야를 기록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5년 엄홍길 씨와 히말라야 산맥을 함께 오르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어요.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전 세계를 누볐는데, 유독 히말라야에만 20년 넘게 드나든 이유가 궁금해요.
눈 덮인 히말라야의 설산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 반년쯤 지나면 계속 생각이 나 다시 찾게 돼요. 히말라야에 인접한 나라인 인도, 중국, 티베트의 개발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한 이유예요. 90년대 초반부터 오지에 포장도로가 만들어지고 전신주가 세워지면서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전통 복장이 사라지고 풍속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갔었던 지역을 다시 찾았는데 전통과 자연환경이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목격하면 안타까워요. 전통문화가 다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히말라야를 계속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긴 세월에 걸쳐 히말라야의 오지마을을 찾아 다녔는데 변화의 바람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모습이 많이 달라졌나요?
흙먼지가 날리던 고불고불한 길에 포장도로가 쭉 뻗어 있고, 숙소가 없어서 침낭에서 잠을 청하던 마을에는 번듯한 호텔과 식당이 들어섰어요. 개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문제는 변화가 급작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그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이죠. 오지에 도로가 뚫리면서 도시의 거대자본이 밀려 들어와 광산을 개발하거나 나무를 무작위로 베는 바람에 숲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예요. 몇 달 전에 거대한 숲이 우거진 미얀마와 중국 윈난성의 국경 지역을 지나다가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나무를 가득 싣고 중국으로 향하는 대형 트럭의 행렬과 마주쳤어요. 그날 본 트럭이 3백 대가 넘었으니, 한 대에 10그루만 실려 있었어도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나무 3천 그루가 잘렸다는 결론이 나와요. 매일 울창한 산이 하나씩 사라지는 셈이죠.

중국 본토와 티베트를 잇는 도로와 철도가 놓이면서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직접 눈으로 본 현실은 어떤가요?
티베트와 중국 서남부 쓰촨성에 사는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해왔어요. 풀을 찾아 떠돌면서 야크 가죽으로 만든 텐트를 치고 살아왔는데, 유목민들이 값싼 태양광 패널을 사서 텐트 꼭대기에 달면서 이들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태양광 패널을 통해 전기를 손에 넣은 이들은 처음에는 전구를 달고, 그 다음에는 위성 TV 수신기를 달았어요. TV는 오지마을 아이들에게 특히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어요. 한국 드라마의 주제곡을 따라 부르고, 소녀시대의 춤을 따라 춰요. 평생 초원과 하늘만 바라보며 자란 아이들이 TV를 통해 화려한 도시생활을 접했을 때, 그 문화적 충격은 엄청날 거예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유목민의 삶을 택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게다가 중국 정부에서 유목민 정주촌을 만들면서 정착하거나, 마을과 초원을 오가며 살아가는 유목민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요. 문제는 정착한 유목민 중 상당수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는 점이죠.

남극과 북극과 더불어 제3의 극지라 불릴 만큼 빙하가 많았던 히말라야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차 빙하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어요. 빙하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한 적이 있나요?
히말라야의 빙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빙하의 하단부에 흙과 바위가 눈과 뒤섞여 여름에는 질퍽거리다가 겨울에는 꽁꽁 어는 퇴석지대가 있는데, 그 끝부분이 계속 위쪽으로 올라가요. 빙하의 면적이 줄어든다는 증거죠. 환경전문가들은 빙하가 줄어들면 히말라야와 인접한 지역 주민들의 상수원이 고갈되고, 잦은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요. 아직 주민들이 몸으로 느끼는 큰 변화는 없지만, 점점 맑은 물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요.

앞으로 히말라야 외에 다른 곳을 찾아 작업할 계획은 없나요?
수천 년간 소금을 만들어온 주민들의 삶이 잘 보존된 캄이라는 지역이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히말라야의 전통문화가 이 땅에서 사라질지도 몰라요. 앞으로도 히말라야의 소중한 전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어요.

열대우림을 누비는 사진가 _강제욱

사진가 강제욱은 20대에 전 세계 40여 개 나라의 땅을 밟았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여행길에서 잃어버린 땅과 감시받는 땅을 보았고, 지구 곳곳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와 사막화, 물 부족,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과 마주했다.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그는 숙명처럼, 환경에 관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의 다큐사진가라는 게 이슈가 돼 첫 전시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본격적인 사진작업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1999년, 발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어요. 1년 뒤 총학생회 임원을 맡으면서 사회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달라이 라마 방한을 추진하다 결국 무산되었는데,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났어요. 그때 만난 스님 한 분이 티베트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저의 인생도 중요하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작가로서 티베트를 돕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2년간 틈틈이 티베트에 머물면서 티베트의 식민지 현실을 사진에 담았어요. 당시만 해도 티베트 하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간직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터라 사진이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이때부터 다큐작가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인문학적인 다큐사진을 찍다가 2007년부터 본격적인 환경 다큐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04년부터 3년간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으로 파라과이에 다녀온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어요. 파라과이에 있는 동안 숲이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환경 문제가 결코 국지적 문제가 아님을 실감했어요. 2007년에 환경단체에서 세계 100대 환경 이슈를 적어서 인터넷에 올린 것을 보고, 환경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슈가 있다는 점에 깜짝 놀랐어요. 순간 그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목격했던 기후변화의 실상이 환경이라는 주제로 모아졌어요.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고비 사막과 빙하가 사라져가는 히말라야 산맥, 아름드리 나무가 힘없이 잘려나가는 파라과이의 숲. 그때부터 10년의 호흡으로 환경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여기서 환경은 좁은 의미의 환경이 아니에요. 넓게 보면 인류에 대한 이야기예요. 기후변화가 단순히 환경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양극화, 빈곤, 도시화, 도시 빈민 등 사회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에요. 환경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인 것 같아요.

보루네오 섬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을 촬영한 사진에는 파괴된 숲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숲이 등장해요. 환경문제를 다루면서 파괴된 숲을 찍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개발로 인해 열대우림이 사라져가는 문제를 다루는 다큐사진 대부분이 불에 타거나 주민들이 나무를 베고 있는 장면을 찍어요. 사진을 보면 톱을 든 주민들을 비난하게 되는데, 사실 그들은 일당 몇 천원 받으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무를 베고 있는 거예요. 결국 그 나무는 대도시에서 소비하기 위해 베어지는 거죠. 보르네오 섬의 벌목업자 중 상당수가 한국 교민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목재를 얻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팜유 농장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베는 일도 허다해요. 결국 책임은 대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있다는 거예요. 파괴되는 장면을 촬영하는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시의 자연에서 느낀 감동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숲이 파괴되고 있는 건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사진 속에 울창한 열대우림의 모습을 담되 과연 이 숲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지켜질 것인가 하는 위태로운 느낌을 담으려고 했어요.

기존의 사진전과 달리 가장 최근에 열었던 <이상한 관광전>에서는 사진과 설치작품을 함께 전시한 점이 독특했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을 순수미술로까지 확장하고 싶어요. 관광산업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다룬 <이상한 관광전>을 열면서 사진과 오브제를 함께 전시했어요. 사진이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도구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전시회를 열면 사진을 중심으로 하되 오브제 설치, 영상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에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곳곳을 돌며 작업을 해왔는데, 다음 목적지는 어딘가요?
환경에 대한 이슈가 있는 곳들이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 전체가 수몰될 위기에 처한 투발루에도 직접 가보고 싶어요. 그동안 가봤던 지역 중에서도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많아요. 히말라야 산맥과 보루네오 열대 숲, 고비 사막은 면적이 워낙 넓어서 전체를 아우르려면 앞으로 몇 번은 더 찾아야 할 것 같아요.

4대강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가 _이상엽

사진가 이상엽은 10년간 중국, 연해주,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국내에 돌아온 그는 우리 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무장지대와 4대강, 버려진 땅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개발논리에 밀려 아름다운 우리 땅과 자연이 사라질수록 그의 사진은 점점 더 거칠고, 단단해져 간다.

11년간 아시아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오다가 2009년부터 우리 땅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작업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아시아 전역을 돌며 깨달은 게 있다면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게 된다는 거예요. 결국은 환경 문제인 거죠.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원을 착취하고 있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요. 지금부터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 지속 가능한 삶을 살 것인지 고민해야 돼요. 우리 땅을 주제로 매년 한 가지 기획을 하기로 하고, 재개발, 비무장지대, 4대강 작업을 해왔어요.

아프리카 초원을 연상시키는 비무장지대 평원에서 고라니가 물을 마시는 장면을 찍은 당신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작업이었나요?
처음에는 민통선과 비무장지대의 인문지리학적인 취재를 하면서,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숲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을 다시 관찰하게 됐어요. 흔히 비무장지대하면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의 보고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시야 확보를 위해서 남과 북 양쪽에서 불을 내는 통에 숲은 숲인데 이상한 숲이 만들어졌어요. 군사적인 필요에 의해서 자연이 교란된 거죠. 통일이 된다고 해도 이 지역은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겠어요. 사람의 손길이 안 닿게 보존한다면 세상에 없는 기념비적인 생태 공원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정부는 이미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을 개발해서 상업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국토가 작은 나라에서 끊임없이 국토를 개발하자고 하면 나중에 우리는 정말 재미없는 땅에서 살게 되는 거죠.

지난해 7월, 이갑철, 노순택, 성남훈 등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사진가들과 4대강 사진 전시회를 열었는데, 4대강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작년 봄부터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진가들과 4대강 공사 현장을 찍었어요. 4대강 사업이 발표되기 전만 해도 우리 강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강은 늘 주변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손을 대니까 그게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더라고요. 정부는 부정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이 운하의 전 단계라면 이것은 시작일 뿐이에요. 자연 그 자체를 그대로 두자는 의미가 아니라, 개발을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만큼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작년 봄부터 최근까지 주기적으로 4대강을 찾아 달라진 모습을 찍고 있는데, 눈앞에서 공사 현장을 목격하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4대강 사업의 핵심은 강의 모래를 퍼내 수심을 깊게 만들고 강의 폭을 규정화해서 매끈하게 하는 거예요. 때문에 포클레인으로 강 한가운데 퇴적물이 쌓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하중도나 둔치를 모두 깎아내고 있어요. 자연이 만들어낸 섬인 하중도는 수없이 많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귀중한 서식처예요. 선진국은 오히려 고불고불한 강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강을 옛모습으로 돌리려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에요. 다시 복원하려면 초기 공사비용의 10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해요. 4대강 사업이 끝나면 강 주변에 카페와 모텔, 아파트가 들어서겠죠. 토지공사는 또 그 땅을 비싼 값에 팔겠죠. 그럼 과연 누가 행복할까요? 똑같은 강 4개? 재미없잖아요. 진실이 안 보인다고 생각은 안 해요. 그 진실을 덮으려고 하는 경제적인 욕망이 큰 거죠.

당신은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말을 건네기 위한 사진을 찍나요?
사진을 절대적인 예술 행위라고 보지 않아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도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다르게 대량으로 복제될 수 있는 최초의 예술이었거든요. 사진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거나 진실을 전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문자는 너무 명쾌한 반면, 사진은 모호해요. 보는 사람이 약간 해석하고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거죠. 사회적으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진을 찍어서 보존하고 남겨놓는 것도 사진가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사진가 스스로 역사학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후세에 전달할 만한 사진을 찍는다면 유의미한 기록을 많이 남길 수 있을 거예요.

올해는 어떤 작업을 할 계획인가요?
일단 올해까지는 4대강 공사 현장을 찍고 내년에 완공된 모습을 찍고 나면 소외되고 버려진 땅에 대한 작업을 시작할 거예요. 끊임없이 개발을 하지 않으면 돈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국내에서 개발되지 않은 땅을 찾기가 어려워요. 인간의 손떼가 묻지 않은 땅도 있고, 이미 한번 파헤쳤다가 방치된 땅도 있죠. 그런 땅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