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서 읽는 책을 ‘베드타임 북’이라고 한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엄마가 되면 은은한 램프 아래서 요리책을 읽어줘야지“.



잠들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서 읽는 책을 ‘베드타임 북’이라고 한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엄마가 되면 은은한 램프 아래서 요리책을 읽어줘야지. “당근을 손가락만하게 썹니다. 양파도 동그란 귀고리처럼 썰고, 토마토는 마구 으깨고. 이 모든 것을 프라이팬에 넣어 사이좋게 굽습니다.” 한밤중 야식을 권장하는 나쁜 엄마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매일매일 읽어주다 보면 편식은 안 하지 않을까. 이런 공상은, 어릴 적 엄마가 가지고 있던 손바닥만한 수첩 같은 것부터 문갑 문짝만한 것까지 요리책을 읽곤 했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읽는 것만으로도 연습이 되었는지, 지금도 비슷한 친구들에 비해서는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이라는 거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요리책이 있다. 한동안 천 원짜리 몇 장만으로 해결되는 책이 유행하기도 했고, 자연주의 밥상책, 파스타와 브런치 책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그런데 고르긴 까다롭다. 햄과 김치를 넣어 만드는 김치볶음밥, 라면에 오징어다리를 넣은 짬뽕라면 등이 등장하는 요리책이라면 그냥 가만히 내려놓는다. 그 정도는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소 뒷걸음질하면서 만들 수있는 음식이고, 요리 블로거가 활성화된 지금은 웬만한 레시피는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나의 눈을 통과하고 두고두고 잘 샀다고 생각하는 책은 <선재스님의 사찰 음식>이다. 산속의 절에서 찾아오는 객을 위해 공양을 지어야 하는 스님의 정갈한 손맛이 담겨있고 무엇보다 온갖 채소를 찾아내고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고 멋지다. 한 가지 요리를 깊게 연구해서 내는 요리책도 실패가 적다.

설탕과 버터를 사용하지 않는 베이킹 레시피를 담은 <쿠키와 비스킷>은 쿠킹에 비해 베이킹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의 손을 자극했는데, 프라이팬으로 만드는 쿠키 레시피는 소량을 구울 때 참조하면 요긴하다. 이달 갓 출간된 <전 50>은 우리가 해 먹는 전이 극히일부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해준다. 오래전 출판되어 지금까지 25만 부가 팔린 전설의 책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은 며느리가 없는 지금 시집가는 친구에게 주는 선물로 유용하다. 사진 한장 없이 편지글로 꾹꾹 적은 레시피는, 다른 레시피에는 없는 엄마의 사랑과 노하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요리 에세이로 불러야 할지, 레시피로 불러야 할지 모르는 책도 있다. <프렌치 테이블>은 호주 사람의 프로방스 정착기인 동시에 미국식 실용주의와 프랑스의 자연주의를 절충한 요리책이기도 하다. 살바도르 달리나 피카소, 괴테, 헤밍웨이 등 미식가로 알려진 아티스트들이 남긴 맛에 대한 기록과 증언, 요리법을 함께 실은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 <훌륭한 식탁에선 웃음이 절로 난다>같은 책이다. 특히 괴테의 음식에 대한 집착은 다수의 기록으로 남았는데, 연애 편지를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해서 보내오. 다른 재료와 섞지 말고 혼자만 드시오” 로 시작했을 정도고, ‘세상은 한 접시의 정어리 샐러드’라는 시도 썼다. 괴테는 음식을 먹을 때도 문인이었다.

가끔은 거저 얻은 책에서 보석을 발견하기도 한다. 몇 년 전 그리스 출장을 갔을 때, 우리로 따지면 문화관광부 장관쯤 되는 여사가 손수 챙겨준 잡지도 그랬다. 그리스의 건강하고 뛰어난 음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든 계간지 <Greek Gourmetraveller>와 단행본을 만들어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는데, 요리를 주제로 한 아트북이라고 할 정도로 잘 만든 책이었다, 정통 그리스 요리가 아닌 모던한 그리스 요리를 취한 까닭에 나 같은 외국인도 만들 수 있다(정통그리스 요리는 상당히 어렵다. 우선 문어부터 창문에 매달아야 하고, 생선알도 긁어 모으고, 치즈도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 무거운 책들을 한 권도 빠트리지 않고 한국까지 애지중지 들고 왔다. 그 이후 태국관광청과 뉴질랜드에서도 비슷한 책을 받았다. 우연한 기회로 생긴 에스티 로더가문의 요리책 <In Great Taste>도 아끼는 요리책이다. 에스티 로더 여사의 딸인 에블린 로더가 쓰고, 고유의 핑크색으로 테두리를 두른 이 책에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건강 레시피가 가득실려 있다. 따뜻한 한 접시의 가정식을 표방해서 만들기 쉽고 입에도 달며, 보기에도 예쁘다. 여기 레시피를 따라 ‘대파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는데 지금까지 몰랐던 대파의 맛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재료를 다시 서양식 조리법으로 요리했을 때 만나는 의외성은 외국 레시피북을 욕심 내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몇 가지 조리 용어와 재료만 숙지하면 독해라고 할만한 과정이 없으니 과감히 도전하길. 해외로 출장을 떠나는 남자 친구가 ‘뭐 사다 줄까’ 물으면 요리책을 사달라곤 한다. 혹시 직접 만들어서 맛 보여주지 않을까란 기대감을 자극하면 빠트리지 않는다. 여행 중에 직접 고른 책, 선물받은 책, 얻은 책을 하나하나 모으면 거대한 맛의 도서관이 된다. 그 책을 잠들기 전에 읽고 자면 꼭 맛있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