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얘기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작년 여름의 지산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늦어도 3월에는

아직도 그 얘기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작년 여름의 지산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펫샵보이즈의 차가운 열정과 뮤즈의 공연 중 때맞춰 내려준 비, 박명수의 ‘Time is Running Out’,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을 끝까지 잡았던 코린 베일리 래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차마 눈을 맞추기 힘들었던 눈웃음이 그랬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난 그때 코린 베일리 래의 무대 앞에서 잠들어 있었다. 펫샵보이즈와 디제잉 타임, 숙소에서 벌어졌던 잠깐의 고스톱으로 이어졌던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데다, 지켜주는 것이라곤 달랑 보잉 선글라스밖에 없는 상황에서 온몸으로 받게 되는 늦여름의 진한 햇살은 가만있는 사람도 노곤노곤하고 흐물흐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돗자리나 낚시의자에 몸을 기대어 잠들어버린다. 구름이 흘러가나 보다 싶었는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코린 베일리 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깼는데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정확히 나와 머리와 발을 반대 방향으로 누워 자고 있던 친구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그렇게 일행 넷이 다 같이 코린 베일리 래의 공연을 본 것이다. 그녀는 명실상부한 ‘지산의 여신’이었다.

다행히 짝사랑은 아니었다. 우리의 뜨거운 관객 문화에 감동한 해외 뮤지션 목록에 그녀도 올라간 것이다. 그녀는 약속했다. 한국에서 단독 공연을 갖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러 3월, 그녀가 한국에 온다. 공연 사전 인터뷰에서 그녀는 가득 찬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아티스트들이 장거리 여행과 여러 가지 여건을 감수하고 투어에 나서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지난 ‘지산벨리 록 페스티벌’에서 느꼈던 한국 관객들의 서포트로 공연을 결정했죠.”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 더 친밀해지길 원한다는 코린 배일리 래는 이번에 새롭게 발매하는 <The Love EP>의 수록곡들도 레퍼토리에 포함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The Love EP>는 그녀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의 곡들 중 5곡을 선곡해 녹음한 그녀의 첫 리메이크 앨범. “<The Sea>는 굉장히 어둡고 슬픈 감정이 지배적인 앨범이죠. 지난해 전 세계 투어를 다니며 여러 곳에서 공연하면서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는 보다 밝은 느낌의 곡들을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곡을 부르는 나도, 그것을 듣는 관객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곡들. 그래서 이 앨범을 만들었어요.” 참고로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는 아이유가 선다. 싱어송라이터 뮤지션으로서 그녀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진실(honest)’과‘ 노력’을 말했다. “음악을 하고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감을 끊임없이 얻는 거예요. 내 주변의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것, 관찰하는 것, 나를 미치게 하는 것, 그런 모든 것에서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얻죠. 사람들과 제가 소통하는 최고의 수단이 음악이에요.” 코린 베일리 래 첫 단독 내한공연은 2011년 3월 10일, 악스홀에서 열린다.

그리고 또 3월에는 애줘 레이(Azure Ray)의 내한공연이 열린다! 애줘 레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기적 같은 공연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년 만의 재결합 소식도 황송한데, 내한공연까지 열린다니 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소개하자면 애줘 레이는 마리아 테일러(Maria Taylor)와 오렌다 핑크(Orenda Fink)로 구성되어 있는 미국 드림팝 듀오다. ‘드림팝’이라는 장르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첨언하자면‘드림팝’은 내면의 이야기를 몽환적으로 나타내는 팝음악의 한 종류로, 애줘레이는 드림팝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세 이름 안에 늘 포함되곤 한다.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나 <식스핏언더(Six Feet Under)>,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의 드라마, 영화, 광고의 BGM으로도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했지만 2004년 각자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해체했다. 그리고 2009년 개인 활동과 팀 활동의 영원한 병행을 선언하며 재결합했고, 2010년 9월 그해의 최고의 팝튠으로 기록될 만한 앨범 <Drawing Down the Moon>을 내놓았다. 작년 가을, 신보들과 섞여 내 책상 위에 올라온 이 앨범을 들었을 때의 기분 좋은 흥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이 차가운 도시를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대단한 위로가 된다. 한번쯤 들어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Across the Ocean’, ‘Home’, ‘Don’t Leave My Mind’를 찾아보길. 고백적인 가사와 서늘하고 슬픈 사운드는 공감을 자아낸다. 어떤 긴 밤, 집으로 가는 길이 유독 길게 느껴질 때면 이들의 노래를 듣는다. 그럼 그 순간, 수없이 반복되어온 길이 단 한번뿐인 로드 트립처럼 변하곤 한다. 가끔 못 견디게 외롭게 만들긴 하지만, 또 많은 순간 위로받는다. 2011년 3월 26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