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자로 관객을 끌어 모으는 영화감독은 많지만, 티켓 파워를 가진 공연연출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름 석자로 관객을 끌어 모으는 영화감독은 많지만, 티켓 파워를 가진 공연연출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독백극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시작으로 <그리스>, <헤드윅>, <대장금>, <서편제> 등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스타 연출가로 떠오른 이지나의 존재감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녀는 그 이름만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증하는 ‘연극계의 송강호’ 같은 존재다. 그런 그녀가 최근에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와 창작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연출을 맡았다. 연극배우 출신의 그녀가 연출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 차가 됐는데, 작품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여전히 신인 같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미국에서는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졌지만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 작품을 연출하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정치범(발렌틴)과 아동성범죄로 감옥에 온 게이(몰리나)가 감방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함께 갇힌다는 상상력이 재미있었어요. 동성 간의 사랑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혁신주의자와 진보주의자, B급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대립 등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는 점도 흥미롭고요. 혁명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발렌틴이 오히려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저급한 대중문화에 심취한 몰리나의 사랑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요.

<버자이너 모놀로그>, <헤드윅>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동성애자가 등장하는데요. 동성애라는 주제를 작품에서 자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동성애를 다뤘다고 할수 없어요. 발렌틴과 몰리나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요. 몰리나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서 잠자리를 할 수 있었던 거지 발렌틴은 절대 게이가 아니에요. 몰리나의 희생이 발렌틴의 인생을 변화시킨 것만은 분명해요. 남녀 간의 사랑이었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제 인생에서 이성 간의 사랑이 커다란 의미를 가졌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