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도시, 시칠리아가 이름난 갤러리와 새롭게 문을 연 호텔과 빌라, 레스토랑 등으로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는 중이다. 고리타분한 유적지에서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 떠오른 시칠리아 여행기.

1 카샤 카르치체라 빌라의 객실. 2 높은 곳에서 바라본 라구사 지역의 전경. 3 팔레르모 부치리이에 자리한 전망대. 4 사라쿠스에 있는 산투아리오 마돈나 뎁레 라크리메 교회의 실내.

1 카샤 카르치체라 빌라의 객실. 2 높은 곳에서 바라본 라구사 지역의 전경. 3 팔레르모 부치리이에 자리한 전망대. 4 사라쿠스에 있는 산투아리오 마돈나 뎁레 라크리메 교회의 실내.

수세기에 걸쳐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노르망 정복자, 그리고 부르봉 왕가까지 눈독 들인 비옥한 섬, 시칠리아. 침략의 역사 덕분에 시칠리아는 세게스타와 아그리젠토의 그리스 사원,바로크 양식의 교회 등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얻었지만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있어 침략의 역사는 커다란 상실 그 자체였다. 시칠리아는 오롯이 시칠리아 사람들만의 것이었던 적이없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분노와 저항의 결과로 마피아가 탄생했다고 말할 정도다. 중세도시의 색채가 짙게 남아 있는 시칠리아에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마피아의 기세는 전처럼 위협적이지 않고, 섬 곳곳에 새로운 빌라와 호텔이 세워지고 있으며,갤러리와 참신한 건축물 등 새로운 문화적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개발지역에지어진 신축 호텔과, 재능 있는 젊은 셰프와 소믈리에, 와인 제조업자, 포도주 연구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깊은 풍미의 요리와 와인,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현대적인 갤러리와 박물관,그리고 타오르미나와 같은 전통적인 리조트를 제치고 새로운 휴식처로 떠오른 팔레르모(Palermo), 시라쿠스(Syracuse), 모디카(Modica) 같은 곳들이 시칠리아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1 페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2 라구사에서 두오모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치치오 술타노 셰프. 3 세련된 감각이 도보이는 B&B, BB22의 객실. 4 도심 외곽에 있는 몬델로의 비치 헛.

1 페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2 라구사에서 두오모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치치오 술타노 셰프. 3 세련된 감각이 도보이는 B&B, BB22의 객실. 4 도심 외곽에 있는 몬델로의 비치 헛.

새로운 팔레르모

프란체스코 판탈레오네(Francesco Pantaleone)를 찾았을 때, 마침 그는 예수의 등을 십자가에 붙이는 중이었다. 그는 종교 성구 및 제의를 취급하는 가게‘ 판탈레오네 아르테 사크라’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는데, 이곳은 조상 대대로 수세기에 걸쳐 운영해온 곳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란체스코는 새로운 팔레르모 예술계에서 빼놓을 수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칼사 구역 중심에 자리한 곧 허물어질 것 같은 팔라초 노빌레 꼭대기 층에 그의 작업실 겸 갤러리로 쓰이는‘ 프란체스코 판탈레오네 아르테 콘템포라네아(FrancescoPantaleone Arte Contemporanea)’라는 공간이 있는데, 국내외 아티스트와 컬렉터들로 늘북적거린다.

팔레르모는 음악, 공연에 관한 비평 등을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아이 러브 시칠리아>가매달 발행될 만큼 시칠리아의 문화 중심지로 떠올랐다.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TV를 보는 장소인 거실에서 작은 연극이 열리기도 한다. 옛것과 새것, 신성한 것과 불경한것이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곳이 바로 팔레르모다. 아직은 작은 규모지만 점점 그 면적을 확장해가고 있는 팔레르모의 현대예술 지도에 최근 추가된 팔라초 리소를 예로 들어보자. 17세기 귀족의 저택이었던 팔라초 리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입은 폭격으로 인해 심각할 정도로훼손됐지만 지금은 시칠리아 출신의 아티스트와 시칠리아에서 작업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의전시가 열린다. 낡고 곳곳이 허물어졌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운 멋을 뽐내는 방 천장에 19개의 앤티크 장롱으로 구성된 제니스 코넬리스의 설치작품 <무제 1993-2008>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구시가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 항구 구역 칼사와 부치리아는 12세기 번영기 이후 가난과 지진, 전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교회와 다세대 주택,귀족이 거주하던 저택이 만들어낸 독특한 도시 풍경은 이 지역이 사회적&#8226;문화적 구심점이었던팔레르모의 옛 명성을 되찾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예전에는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싫어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기호에 맞춰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이 숲이 울창한 도심 외곽 지역에 문을 열었지만지난 몇 년간 스타일리시한 바와 시칠리아의 전통음식, 엄선한 와인리스트로 유명한 페로(Ferro)를 비롯해 수많은 레스토랑이 구시가지에 속속 들어섰다. 그리고 2006년, 세련된 디자인의 B&B(Bed&Breakfast)인‘ BB22’도 문을 열었다. 고전적인 장식과 현대적인 장식이 조화를 이룬‘, BB22’는 넓고 화사한 객실로 금방 유명세를 탔는데‘, 10점 만점에 10점’짜리 서비스와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아침식사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레스토랑과 호텔에 이어 새로운 해수욕장도 개장했다. 유명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바와 레스토랑, 콘서트 무대가 있는베르지네 마리아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쿠르잘 톤나라’가 바로 그것.원래 참치 양식장이 있던 장소에는 세련된 분위기의 바와 레스토랑이 있는 비치 클럽‘ 아다우라리프’가 들어섰다. 이곳에는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산책로도 마련돼 있다.

프란체스코 판탈레오네 아르테 콘템포라네아 주소 Garraffello 25 문의 +39 091 332482 웹사이트 www.fpac.it
팔라초 리소(PalazzoRiso) 주소 Corso Vittorio Emanuele 365 문의 +39 091 320532 웹사이트 www.palazzoriso.it
페로 주소 Piazza Sant’Onofrio 42 문의 +39 091 586049 웹사이트 www.ristoranteferro.com
BB22 주소 Largo Cavalieri di Malta 22 문의 +39 091 6111 610 웹사이트 www.bb22. it
쿠르살 톤나라(KursaalTonnara) 주소 Bordonaro9, Vergine Maria 문의 +39 091 637 2267 웹사이트 www.kursaaltonnara.it
아다우라 낄리프(Addaura Reef) 주소 Lungomare Cristoforo Colombo 문의 +39 091 455167 웹사이트 www.addaurareef.com

새로운 음식

시칠리아는 페이스트리 셰프와 전통 트라토리아(레스토랑보다 규모가 작은 식당)로 유명하지만‘먹을거리가 없는 섬’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다. 예전에는 주로 5성급호텔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이 가격은 비싸고, 음식의 맛과 질은 떨어지는 데다 죄다 르코르동 블루 스타일이라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재배한 신선한식재료에 상상력을 가미한 요리를 선보인 페페 바로네(Peppe Barone) 셰프를 비롯한 새로운__ 세대의 셰프들 덕분에 1980년대 말부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바로네 셰프는 모디카에 있는 파토리아 델레 토리(Fattoria delle Torri) 레스토랑을 운영하고있고, 그보다 조금 젊은 셰프들이 외식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중 특히 두각을 드러낸 셰프는 라구사(Ragusa)에 있는 레스토랑 두오모(Duomo)의 치치오 술타노(CiccioSultano)와 리차타(Licata)에 있는 레스토랑 라 마디아(La Madia)의 피노 쿠타이아(PinoCuttaia) 셰프다. 2007년 두오모를 방문했을 때 갓 수확한 사과 조림을 곁들인‘ 라구사노 치즈타틀렛’을 맛봤는데 재료의 신선함과 셰프의 테크닉이 더해져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여행 중에 방문한 라 마디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음식은 물론 훌륭했고,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도고급스럽고 우아했다. 피노 쿠타이아 셰프가 요리의 영감을 얻는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시칠리아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음식에 담긴 셰프의 테크닉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와퍼에 들어가는 오징어 두께만한 두툼한 오징어가 반투명한 얇은 막으로 변하는 요리를 맛보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여러 요리 중에서도 싱싱한 대구를 솔방울로 지핀 불에서 구워 살짝 찐 다음 체리토마토와 토마토향의 올리브유로 장식해 감자 퓌레와 함께 담아내는 대구 필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칠리아 요리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요리라 할 수 있겠다. 이들 거장에 도전장을 내민 새로운 셰프들의 이름도 눈에 띈다. 팔레르모 공항 근처의 작은 마을인 테라시니(Terrasini)에 있는 레스토랑 일 바발리노(Il Bavaglino)에서 20대의 젊은 나이에도 실력을 인정받는 지우세페 코스타(Giuseppe Costa) 셰프가 개발한 음식을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레스토랑과 더불어 시칠리아의 델리 문화도 급성장 중이다. 팔레르모에서는 슬로 푸드 운동과함께 농장에서 직접 만든 치즈와 살라미, 그리고 엄선한 와인 리스트를 내세우는 식당이 여기저기 성업 중이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면 시칠리아식 비스트로로 변신하는데, 고트 치즈나 바질 탈리아텔레, 아몬드 페스토 같은 간편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점심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시칠리아에서 이렇듯 가벼운 타파스 스타일의 음식으로 점심을 대신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파토리아 델레 토리 주소 VicoNapolitano 14, Modici 문의 +39 0932 751286 가격 디너 약 89유로(2인 기준)
두오모 주소 Capitano Bocchieri 31, RagusaIbla 문의 +39 0932 651265 웹사이트 www.ristoranteduomo.it 가격 디너 약 180유로(2인 기준)
라 마디아 주소 CorsoF. ReCapriata 22, Licata 문의 +39 0922 771443 웹사이트 www.ristorantelamadia.it 가격 디너 약 150유로(2인 기준)
일 바발리노 주소 B. Saputo 20, Terrasini 문의 +39 091 8682285 웹사이트 www.giuseppecosta.com 가격 디너 약 80유로(2인 기준)
라 디스펜사 데이 몬수(IlDispensadeiMonsu) 주소 Principe di Villafranca 59, Palermo 문의 +39 091 609 0465 가격 디너 약 50유로(2인 기준)

새롭게 변신한 전원식 빌라

시칠리아의 유명 관광지인 팔레르모와 트라파니 사이에 위치한 산 비토 로 카포(San Vito loCapo) 해변과 시라쿠스의 벤디카리(Vendicari) 남쪽 해변을 접어두더라도 시칠리아가 최고의 감성을 지닌 섬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돌담에 둘러싸인 배밭, 동굴이 점점이 들어선 외딴 협곡, 파피루스 갈대 숲에 둘러싸인 맑은 개울, 검은 화산토에 초록색 선을 수놓은 포도밭은 시칠리아를 찾은 관광객들의 머릿속에 스냅사진처럼 각인된 이미지다. 예전에는 섬의정수를 맛보려면 자연체험이나 일일 투어에 참여해야 했지만 요즘은 호텔이나 빌라에서도 전원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고지대에 자리한 벨리 스파(Belli Spa)는 뛰어난 전망을자랑하는 곳이다. 호텔 대표인 마시모 벨리 델리스카(Massimo Belli Dell’Isca)는 마도니에(Madonie) 산 위쪽에 자리한 작은 마을로 반쯤 방치된 상태에 있던 크라테리(Crateri) 마을의거리 하나를 통째로 사들여 15개의 침실을 갖춘 스파 리조트로 재탄생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객실은 여전히 마을의 일부로 존재하는데 마을에 있는 7개의 교회 종이 제각각 울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깨닫게 된다. 스파의 정원과 크기는 작지만 완벽한 시설을 갖춘 수영장은 여유로운전원생활을 체험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장소다. 현지에서 생산된 카타라토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나눈다거나 매력적인 셰프인 베페 폰타나(Beppe Fontana)가 창의적으로 재현한 시칠리아 전통 음식을 즐기며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파의 규모는 작지만 숙련된 직원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따뜻한 물이 나오는 실내외의 수영장 덕분에 사계절내내 매력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에트나(Etna) 산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지대에는 돈나 카르멜라(Donna Carmela)가 자리하고 있다. 비둘기색의 19세기 전원주택과 인근 건물을 빌라로 개조한 이곳은 시칠리아의 가장큰 식물원인 피안테 파로(Piante Faro)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오래된 올리브 나무에 둘러싸여 있으며 실내에는 싱그러운 꽃과 식물로 가득하다. 총 18개의 객실은 대부분 공간이 널찍하고, 직원들의 서비스가 훌륭하며, 에트나의 경치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에 한번 이곳을 찾게 되면 금세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벨리 스파와 돈나 카르멜라모두 영국의 여행 전문 서적인 <Think Sicily>에 실리기도 했다.

시칠리아에 있는 빌라 중 가장 선호하는 곳은 에트나 빌리지 외곽에 위치한 일 팔멘토 데이 카스타니(Il Palmento dei Castagni)다. 회색 용암석으로 지어진 독특한 시칠리아 풍 주택에 자리하고 있는데, 와이너리를 개조해 빌라로 만든 곳으로 탁 트인 실내에서는 여전히 와인 프레스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가장 매력적인 장소는 수영장으로 내려가는 산책로와 수영장이다. 수영장이 객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해 있고 올리브나무와 밤나무 숲에 둘러싸인 덕분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오붓하게 지낼 수 있어 매력적인 곳이다.__ 노토(Noto)의 바로크 타운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카사 카르치체라(Casa Carcicera)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휴양지로 그리스 양식의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흙 길을 지나 도착한 올리브와 아몬드 농장을 걷다 보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흰색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규모는 작지만 우아하게 꾸며진 객실과 널찍하고 시설을 잘 갖춘 부엌은물론 수영장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펼쳐진 탁 트인 전망도 이곳의 자랑이다.

벨리 스파 문의 +39 0921 431114 웹사이트 www.belliresortspa.com 가격 128유로부터(더블룸 1박 기준)
돈나 카르멜라 문의 +39 095 809383 웹사이트 www.donnacarmela.com 가격128유로부터(더블룸 1박 기준)
일 팔멘토 데이 카스타니 문의 020 7377 8518 웹사이트 www.thinksicily.com 가격 2,430유로부터(더블룸 7박 기준)
카사 카르치체라 문의 020 7377 8518 웹사이트 www.thinksicily.com 가격 3,540유로부터(더블룸 7박 기준)

1 지우세패 코스타 셰프가 만든 프루타 디 마레 2 일 바발리노의 자우세패 코스타 셰프. 3 새로운 시칠리아 요리의 대부로 통하는 일 바로네의 페페 바로네 셰프. 4 페페 바로네 셰프가 만든 파스타.

1 지우세패 코스타 셰프가 만든 프루타 디 마레 2 일 바발리노의 자우세패 코스타 셰프. 3 새로운 시칠리아 요리의 대부로 통하는 일 바로네의 페페 바로네 셰프. 4 페페 바로네 셰프가 만든 파스타.

 

1 카사 카르치체라의 객실. 2 에트나 산에 위치한 돈나 카멜라의 내부 전경.

1 카사 카르치체라의 객실. 2 에트나 산에 위치한 돈나 카멜라의 내부 전경.

아홉 곳의 새로운 와이너리

뜨거운 태양 아래 숙성된 시칠리아의 와인은 풍미가 뛰어나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간다. 하지만안타깝게도 와인을 제조하는 많은 사람이 천혜의 자연환경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지못한 듯하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이탈리아 와인의 풍미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뛰어난 품질과적은 제조량’이란 공식을 읊어왔지만 시칠리아만큼 그 공식을 엄격히 지켜온 곳도 드물다. 지형적인 특색 때문에 와인 생산지가 일부 지역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체리 향이 가득한부드러운 맛의 레드 와인 네로 다볼라(Nero d’Avola)는 이름 자체에서부터 과일 맛이 느껴지는‘ 시칠리아식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그 뒤를 플라네타(Planeta), 체우소(Ceuso), 쿠수마노(Cusumano), 마라비노(Marabino)와 같은 와이너리가 잇고 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와인이생산되는 만큼 와인을 선택할 때 원산지가 시칠리아 남단의 아볼라(Avola)나 파치노(Pachino)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최대의 잠재력을 지닌 시칠리아의 와인 생산지인 에트나의명성을 따라갈 곳은 없다. 어떤 이들은 에트나 와인을‘ 지중해의 진정한 버건디’라 부르기도 한다.비옥하고 배수가 잘되는 용암 토질은 풍부한 영양소와 미네랄을 공급하고, 평균기온 20℃를 유지할 정도로 일교차가 적은 기후는 에트나의 유서 깊은 와인메이커 지우세페 베난티(GiuseppeBenanti)의 말처럼‘ 낮에는 태양의 애무를, 밤에는 온화한 기후의 보호를 받는’ 포도를 열리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화산지대 북단에서도 추수가 이루어지는 까닭에 10월 마지막주까지 지속되는 숙성 과정은 와인의 맛과 향에 깊이를 더한다.

고도가 1천2백 미터에 달하는 고지대에 펼쳐진 에트나 포도밭은 일반적인 테루아의 기준을 초월한, 극단적인 와인 제조 방식을 실험하는 장소다. 투스카니의 와인메이커 실비아 마에스트렐리(Silvia Maestrelli)는 최근 화산지대 북단에 1만8천 평 규모의 오래된 포도밭을 매입해 얼마전부터‘ 테누타 디 페시나(Tenuta di Fessina)’라는 라벨로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Mascalese) 레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에트나가 가진 잠재력에 대해 묻는 질문에“ 에트나는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줍니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에트나 포도밭은 포도밭 주인들이 가장 염려하는 해충인‘ 포도나무진디’조차 꺼리는 화산토가 겹겹이 쌓여 있으며 19세기 후반 유럽 포도밭의 4분의 1을 휩쓴 유행병이 돌기 전부터 고대에서부터전해 내려온 울퉁불퉁한 포도나무가 여전히 자라고 있다.

베난티는 1988년에 이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노 델 콘타디노(VinodelContadino)’로 통칭되던 네렐로 마스카레제와 네렐로 카푸치오(Nerello Cappuccio)와 같은 에트나 산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인 카리칸테(Carricante), 그리고 순전히 지역 소비만을 위해 생산된 농장 와인의 잠재력을 깨달은 최초의 와인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시칠리아 와인은 라구사 서부의 네로 다볼라(Nero d’Avola)와 프라파토(Frappato) 포도밭에서 생산되는가볍고 은은하며 향이 좋은 레드 와인인 체라수올로 디 비토리아(Cerasuolo di Vittoria)다. 유럽산 와인 소비의 주요 공급원 중 하나인 마르살라(Marsala) 와인보다 등급이 낮은 화이트 와인카타라토(Catarratto)도 지금 한창 변신 중이다. 마도니(Madonie) 산에서 지역 생산자인 가스텔루치 미아노(Castellucci Miano)가 갓 만든 시큼한 카타라토 와인을 마셨는데 타파스 같은가벼운 점심 식사와 궁합이 딱 들어맞는 맛이었다.

와이너리 리스트
Castellucci Miano www.castelluccimiano.it
Ceuso www.ceuso.it
Cusumano www.cusumano.it
Marabino www.marabino.it
Planeta www.planeta.it
Tenuta di Fessina www.villapetriolo.com
Vinicola Benanti www.vinicolabenanti.it

교통편

국내에는 시칠리아까지 직항으로 운항하는 항공편이 없으므로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밀라노나로마로 가는 항공기를 이용한 다음, 이탈리아 국내 항공편을 이용해 시칠리아로 이동해야 한다.대한항공은 인천공항과 밀라노, 로마를 잇는 항공편을 운항 중이다. 인천공항에서 로마까지는약 11시간, 밀라노까지는 약 12시간이 소요된다. 섬 안에서 이동할 때는 렌터카나 버스 투어를이용하면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시칠리아의 파란 바다를 보기 위해 매년 여름 많은 여행자가 시칠리아를 찾는다. 한여름 기온은30℃를 웃돌고, 건조한 편이지만 바닷가는 해풍이 불어 서늘하다. 뜨거운 햇살도, 비구름도 사라지는 9월 말부터 10월경이 여행하기에는 최적의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