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의 설경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호수와 나무와 갯벌에 숨어든 겨울의 숨소리를 들었다. 낯선 장소에서, 무명의 아름다움 안에서 그 숨소리는 더 큰 울림을 남겼다.

송광사가 있는 순천으로 가는 길에 화순적벽에 들르기로 했다. 옹성산을 둘러친 붉은 빛깔의 절벽은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와 보산리, 창랑리 일대를 아우른다.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 4개의 적벽이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을 따라 7킬로미터 가까이 이어진다. 적벽을 품에 안은 창랑천은 깊이를 헤아릴 수없는 짙은 푸른빛을 띠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방랑시인 김삿갓이 13년이나 화순에 머물며 수많은 시를 남겼다고. 4개의 적벽 중 노루목적벽의 비경이 으뜸이지만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접근이 통제된다. 노루목적벽과 마주한 절벽 끝에 지어진 망향정에서 노루목적벽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시리도록 푸르다는 창랑천과 기암괴석과 노송이 둘러싼 적벽을 대면할 생각에 설레었지만 장학리에 다다르자 사방이 깜깜해지더니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적벽 근처까지 갔지만 시야가 흐려 절경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적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노산 이은상 시인의 시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산태극 수태극 밀고 당기며 유리궁 수정궁 눈이 부신데 오색이 떠오르는 적벽 강물에 옷 빠는 저 새아씨 선녀 아닌가.’ 붉은 적벽이 눈발에 희끗희끗해지는 어느 날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면서 송광사가 자리한 순천으로 차를 몰았다. 십 분쯤 달렸을까 거짓말처럼 눈보라가 그치고 햇살이 쨍쨍해졌다. 일출처럼 화순적벽 역시 낯선 이에게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보다.

이름난 절 주변이 그러하듯 송광사 입구에도 산채정식을 파는 식당이 줄지어 서 있다. 손맛이 맛깔스럽기로 소문난 집을 찾았다. 먹음직스러운 나물이 가득 차려진 상에 눈길을 주려는 순간 주위가 깜깜해지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화순에서 만난 눈이 여기까지 쫓아온 모양이다. 잠시 동안 내린 눈은 숲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숲을 바라보며 제철 산나물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밥상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세상 천지 이만한 팔자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향이 짙은 더덕과 도라지에 매콤새콤한 양념을 듬뿍 넣어 버무린 무침과 새콤하고 아삭한 매실 장아찌, 들깨양념에 버무린 죽순과 목이버섯 무침 등 반찬 하나하나가 입에 착착 감긴다. 간장과 참기름으로 양념한 김장아찌는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것이 자꾸만 입맛을 당기는 것이 간장게장 못지않다. 사콤하게 삭힌 파김치와 쌉싸래한 고들빼기 김치도 별미 중의 별미. 맛깔스러운 반찬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도 입에 침이 고였다.

밥을 먹는 잠깐 사이에 세차게 내린 눈발은 마른 가지와 나무 기둥에 희끗희끗 눈 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다. 거센 눈보라가 휘몰고 지나간 숲에는 눈꽃이 피었다. 송광사로 향하는 산길, 마른 가지 끝에 눈이 녹아서 만들어진 작은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가지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눈 위로 떨어지면서 내는‘똑똑’ 소리가 고요한 숲의 적막을 깼다. 그 소리가 합창 같기도 하고, 돌림노래 같기도 했다. 눈 내린 숲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송광사 입구에 닿았다. 조개산 북서쪽자락에 자리 잡은 이 절은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입구를 지나자 조계산에서 흘러 내려온 아름다운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꽁꽁 언 강바닥과 눈 덮인 바위 너머로 펼쳐진 조계산의 설경에 눈이 부셨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에 돌을 아치형으로 쌓아 올린 홍교와 홍교 위에 세워진 우화루가 고즈넉한 멋을 더했다.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풍경에 매료돼 우화루 기둥에 기대 서서 조계산 산자락을 한참 동안 바라다 보았다. 우화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자 대웅보전의 웅장한 기세와 맞닥뜨렸다. 조계산의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부츠를 벗고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서자 마룻바닥에 닿은 발끝이 시렸다. 입김이 새어나올 만큼 공기가 찬 데다어마어마한 규모의 불상까지 마주하자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다.그동안 전국을 돌며 유명한 절을 여럿 다녔지만 이렇게 큰 불상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위용에 위축돼 밖으로 나와 사찰 주변을 찬찬히 걸었다. 주변은 온통 고요하고, 이따금 처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나무를 엮은 담장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고개를 들자 눈발에 희끗희끗해진 기와가 눈에 들어왔다. 절을 떠날 무렵 또다시 눈을 만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 펑펑 내리는 눈을 맞고 있는 송광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겨울 사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무렵 아슬아슬하게 순천만에 닿았다. 순천만 갈대숲의 규모는 익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광대한 갈대숲과 마주하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에 둘러싸인 순천만은 드넓은 갯벌과 갈대밭, 습지, 섬을 품고 있어 희귀조류와 짱뚱어, 게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2007년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면서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순천만이 지금과 같은 거대한 갈대숲의 위용을 갖춘 것은 20여 년 전의 일이다. 순천 시내를 흐르는 하천에서 대량의 유기물이 공급되면서 1998년 15만 평이던 갈대밭이 5년 만에 70만 평으로 늘어났다고. 다양한 생물이 살아 숨쉬면서 10월 말부터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청둥오리, 민물도요 등 200여 종에 달하는 철새가 갈대숲으로 찾아든다. 어른 키만큼 자란 갈대숲 사이에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는데, 멀리서 보면 사람들의 머리만 힐끗힐끗 보여 들판에 까마귀가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다섯 시가 가까워오자 갈대숲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시시각각 그 빛깔을 바꾸었다. 구름 사이로 붉은 해가 모습을 감추자 강물은 진주빛에서 옅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30여 분 거리에 있는 용산전망대와 우명 마을 전망대, 우명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포구인 화포에서 바라본 순천만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특히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S자를 그리며 갯벌을 휘감아 도는 수로와 미스터리 서클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갈대밭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한참 맞고 서 있었더니 허기가 졌다. 꼬막 집이모여 있다는 벌교 회정리로 차를 몰았다.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벌교 갯벌은 꼬막이 천지다. 그중에서도 살이 통통한 참꼬막은 벌교에서만 자라는데 살짝 데치기만 해도 맛이기가 막히다. 꼬막이 흔하다 보니 꼬막을 데쳐서도 먹고, 무쳐서도 먹고, 전으로 부쳐서도 먹고, 된장국에 넣고 끓여서도 먹는다. 꼬막으로 만든 요리를 이것저것 상에 올리다 보니 꼬막정식이 탄생하게 됐다. 벌교 회정리에 가면 화려한 간판을 내건 꼬막집들이 한데 모여 있는데, 꼬막정식의 메뉴는 동일하다. 통꼬막, 꼬막무침, 꼬막탕, 꼬막전, 양념꼬막이 바로 그것. 자리에 앉자마자 살짝 데친 통꼬막을 내오는데, 꼬막입을 벌려 훅 빨아들여야 국물까지 남김 없이 맛볼 수 있다. 싱싱한 꼬막의 졸깃한 속살과 비릿한 바다 내음이 입안 가득 퍼진다. 집된장을 풀고 꼬막과 무, 두부를 넣어 개운하게 끓인 된장국도 맛있다. 살짝 데친 꼬막에 무와 상추를 썰어 넣고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꼬막회무침도 별미 중의별미다. 매콤달콤한 꼬막회무침을 사발에 듬뿍 담아 나물 넣고, 김가루 넣고, 참기름 넣고 밥과 함께 슥슥 비벼 먹어야 제 맛이다.

서울로 향하는 길, 또다시 거센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새벽녘 물안개에 휩싸인 잔잔한 호수와, 눈보라 치는 차창 밖으로 보았던 느티나무와,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반짝이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호숫가의 적막을 깨던 물소리와 서걱거리는 갈대숲의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발길과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겨울의 숨소리가 나지막하게들려왔다. 지난 한 해 동안 기사를 핑계 삼아 국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사소한 풍경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은 결국 여행자의 몫이라는 것. 여행을 하며 수많은 낯선 길과 마주했던 허만하 작가 역시 <길 위에서 쓴 편지>에서 ‘길 위에 서는 일은 단순히 경치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정신의 깊이와 넓이를 키우는 길이다. 성장한 정신은 평소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하찮은 일에 주목한다. 참된 아름다움은 대체로 이름 없는 곳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