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의 설경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호수와 나무와 갯벌에 숨어든 겨울의 숨소리를 들었다. 낯선 장소에서, 무명의 아름다움 안에서 그 숨소리는 더 큰 울림을 남겼다.



전라남도는 팔도에서 가장 다채로운 풍광을 지녔다. 서해와 남해, 산과 강, 그리고 너른 평원을 품은 까닭에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다가도 푸른 강과 호수가 등장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이 끝나는 길목에서 마른 가지가 무성한 겨울산과 마주하게 된다. 바다와 산과 들에 스민 겨울의 숨소리를 느끼기 더없이 좋다. 지도를 펼치고 서해와 맞닿은 영광부터 창랑천이 흐르는 화순, 조계산과 순천만이 자리한 순천, 꼬막으로 유명한 보성의 벌교를 하나의 선으로 이었다. 매년 겨울마다 뉴스에 등장하는 강원도의 설경이 아닌 전남의 색다른 설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성탄절부터 전국에 많은 눈이 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탄절 다음 날, 함평 한옥마을 고택 중 한 곳인 모평헌 안주인과 연락이 닿았는데, 한옥집 마당과 담장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며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 내려오라 했다. 다음 날 새벽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서울을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영화 <러브레터>에서 봄직한 설국의 풍경이 펼쳐졌다. 수북하게 쌓인 눈에 산과 들판의 경계가 사라지고,마른 가지에 핀 눈꽃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설국의 장관은 대전을 지나 전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광주에 가까워지면서 눈이 점점 줄어들고, 마른 가지와 휑한 논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광IC를 지나고 십여 분쯤 달렸을까 크고 작은 산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로 갯벌이 힐끗힐끗 보였다. 영광에서 굴비만큼이나 유명한 백수해안도로에 닿은 것이다. 해안을 따라 16.5k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는데, 밀물 때는 드넓은 갯벌이, 썰물 때는 푸른 파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해안절벽과 작은 섬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십여분 달리자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법성포에 닿았다. 법성포 인근 바다에서는 예로부터 산란기를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알이 꽉 찬 조기가 잡혔다. 포구 주변에서 갓 잡아 올린 조기를 염장해 바닷바람에 말리고는 했는데 짭짤한 바다 내음이 하얀 속살에 배어들어 귀한 대접을 받았다.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왕을 독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하면서 정주(지금의 영광)로 귀양을 왔다. 조기의 맛에 반한 그는 정성껏 말린 조기를 왕에게 보내면서 영광의 옛 지명인 정주(靜州)에‘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의 굴비(屈非)라는 이름을 붙여 왕에게 보낸다. 그 뒤로 영광에서 나는 조기를 굴비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굴비로 이름난 지역답게 포구 주변은 굴비상점과 굴비백반집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집집마다 끈으로 엮은 굴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통에 온 동네에 비린내와 짠내가 진동을 한다. 그 냄새를 맡고 있자니 찰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 생각이 절로 났다. 이때만큼은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놓고 굴비 한번 쳐다보고, 밥 한술 떠먹었다던 자린고비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굴비구이에 반찬 서너 가지가 따라 나오던 백반집은 찾아오는 외지 사람이 많아지자 반찬의 가짓수를 늘려갔고, 남도 한정식 못지않은 굴비정식이 탄생하게 됐다. 굴비구이에 굴비전, 굴비조림, 굴비매운탕, 삭힌 홍어찜, 삼합, 광어회, 떡갈비와 각종 나물과 젓갈까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나오는데, 뭐니 뭐니 해도 진미는 살이꽉 찬 굴비다. 간이 적당히 밴 탱글탱글한 굴비살을 발라 밥에 올려 한입 가득 먹으면 구수한 맛과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맛있는 굴비 한 마리면 열 반찬이 안 부럽다.





서해를 떠나 내륙으로 차를 몰았다. 추수가 끝난 논밭을 지나 사십여 분을 달려 함평군 해보면 모평마을에 도착했다. 고즈넉한 한옥고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다. 1460년 윤길이 제주도에 귀양을 갔다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정착하면서 생겨나게 됐다고. 때문에 마을 주민이 모두 친척지간이란다. 긴 세월, 모진 풍파에 불에 타고, 쓰러져간 한옥이 여럿이지만, 후손들이 옛 원형을 복원해 한옥을 지었다. 여행 중에 머물렀던 모평헌 역시 지은 지 80년이 넘은 고택으로, 바닷물에 7년 동안 담갔다 15년 동안 말린 소나무로지은 집이다. 군에서 이곳을 한옥체험마을로 지정하면서 새로 지은 한옥이 들어섰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답게 수백 년 된 우물과 누각, 느티나무숲, 대나무숲 등이 옛 마을의 풍경에 이야기를 더하고 있었다. 모평헌 담장과 이웃한 안샘은 과거 관아의 우물로 사용하던 곳이다. 모평헌 안주인은 이 샘물이 천년 동안 한 번도 마른 적이 없고, 추운 겨울에도 섭씨 13도가 유지되는 신령한 샘물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마을 뒷산이 감싸고 있는 모평헌은 겨울에도 푸른 대나무숲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뒷산에 오르면 마을의 전경을 시원스레 볼 수 있다는 말에 마을 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뒷산으로 향하는 산길 옆으로 가파른 언덕에 지어진 오래된 누각인 영양재를 발견했다. 온 마을이 한 장의 그림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옛 선조들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 나무와 수풀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찾아온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누각 기둥에 걸린 현판에서 한자로 쓰인 글씨를 발견했다‘. 비예물청(非禮勿聽), 비예물견(非禮勿見), 비예물언(非禮勿言), 비예물동(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행하지 말라’는 뜻의 글귀에서‘ 예(禮)’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옛 선비들의 생각이 읽혔다. 눈이 녹으면서 축축해진 솔잎을 밟으며 열 걸음쯤 걸었을까, 솔잎 사이로 야생 녹차의 싱싱한 초록색 잎새를 발견했다.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자란 탓일까, 그 잎새가 어찌나 단단한지 한여름 땡볕에 펼쳐놓아도 쉬이 마르지 않을 성싶었다. 녹차 잎을 만지던 손길에서도 진하고 그윽한 향내가 났다. 어제 내린 눈이 녹아 습기를 가득 머금은 숲은 축축한 솔 향기로 가득했다. 가파른 산길을 십여 분쯤 오르자 느티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마을 입구부터, 옹기종기 붙은 한옥집과 논밭 등 고즈넉한 시골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차고 시원한 바람이 점퍼 위로 드러난 귀와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 열흘쯤 이곳에 머물며 아침이고, 낮이고 쉬엄쉬엄 산에 올라 쉬었다 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산길을 내려와 이번에는 언덕길을 따라 걸었다. 길은 마을 저수지인 송산제로 이어졌다. 수묵화처럼 여러 산이 겹쳐 보이는 겨울 산이 너른 가슴에 잔잔한 호수를 품고 있었는데, 일몰이 가까워지자 노을빛을 품은 호수가 진주빛으로 반짝였다. 지난달 영월의 청령포 절벽에서 해 질 녘에 마주친 강은 쓸쓸함이 묻어났지만, 송산제의 호수는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호수 주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해진 한옥집 주변을 가로등의 붉은빛이 밝히고 있었다. 스치는 바람에서 어릴 때 시골집 부엌에서 맡았던 장작 타는 냄새를 맡았다.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보자 허기가 졌다. 오랫동안 걸어 다닌 탓에 손과 발끝도 시려왔다. 숙소로 돌아와 방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군불을 지핀 것처럼 바닥이 뜨끈하게 달궈져 있었다. 상에는 노릇하게 구운 군고구마와 장독에서 방금 꺼낸 김치 반포기가 통째로 놓여 있었다. 안주인의 세심한 배려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아버지는 마치 지정석이라도 되는 듯, 바닥이 까맣게 그을린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부엌 아궁이와 맞닿은 자리라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으면‘ 앗 뜨거워’ 소리가 절로 나는 통에 할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치고 늘 멀찍이 떨어져 앉곤 했다. 철이 들고 보니 손녀딸을 가장 따뜻한 자리에 앉히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어 가슴 한구석이 시렸다. 장작 냄새가 밴 달콤한 호박고구마를 베어물고 김장김치를 쭉 찢어서 한입에 넣었다. 깊고 깔끔한 맛이 할머니의 손맛과 닮았다.

다음 날 새벽, 날이 흐려 일출을 보기는 힘들 듯싶어 산책할 겸 마을 길을 걸어 송산제를 찾았다. 다시 만난 송산제는 고요한 적막에 싸여 있었다. 저수지를 둘러싼 산은 물안개에 휩싸여 윤곽이 없는 잿빛 그늘 같았다. 바람도, 시간도 잊은 듯한 잔잔한 호수는 희끗희끗 눈발이 서린 겨울 산을 온전히 비추었다. 수면에 비친 풍경이 어찌나 선명한지, 데칼코마니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 놀라운 전경에 넋이 나가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그때 호수 건너 산기슭에서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왔다. 잔잔한 수면에 파동이 일자 호수에 비친 겨울산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호숫가로 다가가 허리를 굽혀 호수 표면을 가만히 지켜봤다. 바람소리가 거세질수록 물결도 점점 거칠어졌다. 호수의 검은 물이 금방이라도 덮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마른 풀섶을 헤치고 강둑으로 올라왔다. 바람이 차고 시렸다. 어슴푸레한 푸른빛이었던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주변이 해 질 녘처럼 어두워졌다. 그리고 얼마 뒤 이마에 얼음처럼 차가운 뭔가가 닿더니 비처럼 흘러내렸다. 진눈깨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