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스타일을 지닌 11인의 패셔니스타들. 그들의 20대도 지금처럼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채 완성되지 않은 풋풋함이 있는 그 시절 그때를 이야기한다.

1. 1990년도에 촬영한 오리지날 리 카탈로그. 2. 1993년도에 촬영한 오리지날 리 카탈로그.


1. 최미애 |모델(나이 20+25)


20대 시절은 모델 활동을 했다. 여행을 다니며 열심히 연애를 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20대 시절의 모습은 1980년대에는 화장을 진하게 하고, 머리에는 스프레이 한 통을 다 뿌려가면서 치장을 했다. 옷은 특별히 어떤 패션을 추구한 것은 아니고, 그냥 키 큰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었다. 이신우 선생님 의상을 많이 입고 다녔던 것 같다.

20대 시절 최고의 관심사는 연애. 어떻게 사랑할 지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연애를 좀 더 많이, 열심히 해보고 싶다. 그런 경험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20대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자면 외향적인 모습은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다. 한창 모델 활동을 하던 20대 시절에는 진한 화장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모델을 그만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두꺼운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온 후로 시간이 꽤 많이 흘러서인지 지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훨씬 더 좋다. 그때에 비해서 사고 방식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과 자연,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취향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1. 뉴욕에서 함께 음악 하던 친구들과. 2. 엄마인 디자이너 설윤형과 함께 찍은 몇 장안 되는 사진 중 하나. 뉴욕에서 돌아와서 설윤형 디자인실에서 일했을 때다.


2. 이주영 |레주렉션 디자이너(나이 20+20)


20대 시절은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의외겠지만 전공은 첼로. 20대 시절의 모습은 그때도 지금처럼 펑크 스타일을 좋아해서 뮤지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

20대 시절 최고의 관심사는 음악. 클래식을 공부했지만 펑크를 좋아했고, 이름 없는 인디 밴드들의 음악까지 찾아 다니며 들을 정도로 장르를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들었다. 물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다. 엄마가 디자이너여서 패션을 늘 보고 자랐으니까. 콘서트할 때 직접 무대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더 열심히 보고, 많이 느끼고 싶다. 그때 받은 문화적인 자극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니까.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20대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자면 지금은 많이 여유로워졌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뭐에 쫓기기라도 하듯 초조해했는지 모르겠다.



1. 1988년, 청평. 당시 일본 아이돌 그룹 쿠와타 밴드에 심취해있어서 인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본식 아이비 룩을 즐겨입었다. 2. 1990년, 호주 골드코스트, 주피터 카지노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모습. 당시 일본 아이돌 사이에서 유행했던 밑위길이가 긴 팬츠, 게다가 팬츠 밑단을 롤업하는 센스! 3. 약 20년 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앞이다.


3. 황의건 |에이전시 오피스H 이사(나이 20+23)


20대 시절은 호주에서 유학하고 있었다. 20대 시절의 모습은 지금 나의 패션 스타일이 20대 초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일본 아이돌 스타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아이비 룩을 추구했었다. 지금과 다른 한 가지는 헤어스타일 정도다.

20대 시절 최고의 관심사는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될까?’ 20대 시절의 관심사는 나의 미래와 사랑 이렇게 딱 두 가지뿐이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없다. 모두 다 해봤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하고 싶은 것을 20대에 모두 해보았다.

20대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자면 변한 것은 없다. 단지 ‘진화’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 한두 살 나이를 더하면서 그 시대에 나의 좋고 싫은 것들을 접목하여 진화했다. 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보수적인 클래식 스타일을 좋아한다. 나의 과거 패션을 보면 지금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히려 시대에 약간은 앞서나가는 듯한 스타일이었다. (사실, 당시의 한국 패션은 상당히 뒤처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 봐도 완벽한 나의 교과서적인 패션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었다. 하지만 난 당시 나의 스타일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었다.

1. 풀 메이크업을 한 극히 드문 때다. 직접 만든 블레이저에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했던 것 같다. 2. 파리 콜레트 앞에서 만난 이완 맥그리거와 함께. 지금까지도 즐겨 입는 꼼 데가르송의 피그먼트 티셔츠와 501 데님 팬츠를 입고 있다. 3. 28살. 패션 브랜드에서 디자인 실장이라는 타이틀을 처음 달았을 때다.


4. 박순진 |카이아크만 디자이너(나이 20+18)


20대 시절은 학업, 취업, 열애, 광란의 쇼핑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20대 시절의 모습은 ‘진’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벨보텀에서 스키니까지 ‘진’에 관한 모든 유행을 믹스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트렌드에 꽤나 민감했던 것 같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여성스러워 보이는 것이 싫어서, 나만의 매니시한 스타일을 연출하려 꽤 노력했었다.

20대 시절 최고의 관심사는 단연코 패션! 단지 입는 즐거움의 향락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던 때였다. 학창 시절과 직장 초년기에 압구정동과 명동 일대의 쇼핑몰과 백화점에서 아주 쉽게 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무지막지한 지름신이 찾아왔었는지, 개념 없이 쇼핑을 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정확하게 23살 즈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불타는 연애를 청아하게 하고 싶다.

20대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자면 탄력이 없어지는 몸매, 무표정해진 심각한 얼굴,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이 소심해진 유연성으로 나를 합리화할 때.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취업을 한 상태로 졸업식에 잠깐 가서 사진만 찍었다. 어린 마음에 빨리 취업하면 좋은 줄만 알고 그랬었나 보다.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5. 서영희 |스타일리스트(나이 20+30)


20대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 직업을 정하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고, 아이 둘을 낳았다. 20대 시절의 모습은 그때는 바람머리에 ‘뽕’이 들어간 어깨가 유행인 시절이었다. 이대 앞 은하 미용실에서 파마하고, 쁘렝땅의 신상을 입으면 최고의 패셔니스타였다.

20대 시절 최고의 관심사는 25살에 결혼하면서 일은 그만두고 마사 스튜어트처럼 집 꾸미며 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진 않았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쯤 다시 패션계로 복귀해서 무슨 일을 시작할까 고민했다. 그때 선택한 것이 스타일리스트였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없다. 그 중요한 결정들을 다시 하는 건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냥 살련다.

20대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자면 내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몸매도 불고, 주름도 생기고, 눈도 처지고. 느린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많이 강해졌다. 바느질하고,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그때는 옷을 다 만들어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엄두도 못 낸다. 그래도 할머니의 재봉틀을 보면 여전히 기분이 좋아진다.



1. 심플한 셔츠와 카디건을 즐겨 입었다. 2. 커다란 칼라가 달린 퍼프 소매 원피스와 커다란 모자까지. 나의 공주풍 패션.


6. 고원혜 |메이크업 아티스트(나이 20+29)


20대 시절은 생각해보니 20대에 참 많은 일을 했다. 미대를 졸업하고, 유치원 미술 선생님도 ‘잠깐’ 했고, 미군부대 중령비서로도 ‘잠깐’ 일했다. 일찍 결혼해서 아기도 낳았다. 그때는 메이크업 학원이라곤 화장품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밖에 없었는데, 그중 한 곳에 3개월 정도 다닌 후에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그때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20대 시절의 모습은 플레어스커트에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꼭 플레어 스커트를 맞춰주셨는데, 이 스타일을 아직도 가장 좋아한다. 머리에는 리본 모양의 헤어밴드를 직접 만들어서 하고 다니기도 했다.

20대 시절 최고의 관심사는 20대 초반에는 남자. 그 당시에는 종로가 뜨고 있을 때여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종로의 물 좋은 카페로 가곤 했다. 등나무 공예를 배우러도 다녔는데, 소질이 좀 있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했다. 결혼할 때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제일 큰 고민은 역시 진로였던 것 같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일본에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 갔다. 일본에 가고 싶기도 한데, 사실20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깔깔거리며 살았던 것 같다. 그보다는 40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20대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자면 20대 때는 좀 새침했다.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잘 안 하고, 어떻게 보면 좀 거만하기도 했다. 지금은 사람들과 어울릴 줄도 알고, 부드러워졌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1. 지금 보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너무 부끄러운 프로필사진. 댄스그룹 활동을 위해 소속사에서 찍어준 사진인데 포즈는 이현우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연출했던 기억이 난다. 2 1991년 이등병 시절.


7. 한상혁 |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이 20+20)


20대 시절은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에 다녀왔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술과 나이트클럽이 제법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시 유명했던 R.E.F와 같은 가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후배 2명과 연습생 생활을 하기도 했다. 명동에 있는 중국대사관 근처의 수입책방에서 <멘즈 논노>를 보며 패션 디자이너가 좀 멋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6개월 정도 다닌 명동의 국제복장학원에서 패턴과 미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할만큼 열심히 배웠다. 졸업이 다가오자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회사에 포트폴리오를 보냈고, 이틀 후에 취업이 결정되었는데, 그곳이 뱅뱅 사거리에 있던 미치코 런던이었다. 회사에 취직하고, 너무나 다양한 사람과 모험적인 장소를 알게 되었고, 주위에 친한 사람들이 게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회사 동료 때문에 회사 다니는 것이 싫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20대 후반에 알았다. 20대 시절의 모습은 그때 당시 난 홍콩배우 장국영이나 유덕화처럼 입고 싶었다.

20대 시절 최고의 관심사는 연애와 연예.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연예 활동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