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지 않는 시대, 문학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책 읽지 않는 시대, 문학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확실히 요즘 사람들은 책 들여다볼 사이에 펀드하느라 바쁘고, 시 한 줄 읽기보다 스마트폰용 어플로 게임하기 바쁘다. 하지만 범부들이 푼돈 써가며 아이폰에 열광할 때,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 유수의 CEO들은 시집 옆에 끼고 창의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고로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를 쓴 황인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시를 읽으면 밥이 나오고, 떡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독서의 계절’이란 수식어 때문인지 가을은 평소 책보기를 돌같이 하던 이들마저 책과 시에 너그러워지는 계절이다. 여기, 시를 읽고자 하는 당신을 위해 시로 차린 밥상을 마련했다. 분위기에 이끌려서든, 호기심에서든 입맛대로 골라보자. 추천 시들이 얼마나, 어떻게 피가 되고 살이 될지는 각자의 소화 능력에 달린 것이겠지만.

‘진달래꽃’을 마야가 쓴 줄 아는 사람, ‘푸르른 날’을 송창식이 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우선 한국의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2권(민음사펴냄, 각 9천원)부터 집어 들 것을 권한다. 대학 입시용으로 연습장 빽빽이 휘갈기던 낯익은 시부터 어두웠던 시절 금서(禁書)에 수록되어 구경하기 힘들었던 시까지 두루 수록되어 있다. 책갈피 갈피마다 표지만큼이나 아름다운 풀 컬러 일러스트가 감성을 더한다.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젖고 싶다면 장영희 교수가 편집한 영미시선 시리즈 <생일>과 <축복>(장영희 글, 김점선 그림, 비채 펴냄, 각 9천5백원)을 추천한다. 저자 두 사람이 모두 작년에 암투병하다 별세한 여성 문화인이라는 점에서 책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애틋한 마음이 솟는다. 영문학도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아두어야 할 영미 명시들이 영한대역으로 수록된 데다, 장영희 교수의 정감 넘치는 에세이식 해설, 서양화가 김점선의 작품이 삽화라는 점만으로도 소장가치 200%의 책이다.

계절이 주는 감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를 통해 만끽하려면 최근 교보문고 ‘추천 코너’에 내걸린 <풀잎은 공중에 글을 쓴다>(정현종 외 지음, 호미 펴냄, 9천원)가 제격이다. 농부 시인 류기봉의 장현리 포도밭에서는 해마다 햇포도를 수확하는 첫 주말에 ‘포도밭 시회’가 열린다. 여러 시인들이 참여해 그들이 광목천에 직접 쓴 생태시를 포도나무에 걸어 과수원을 찾은 사람들과 나누는 행사다. 올해로 13회를 맞게 되자 그동안 참여해온 시인들의 시를 모아 책을 ‘출하’했다. 과수원에서 쓰여진 시라,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풀냄새, 과일냄새가 상큼하게 코끝을 스친다. 파란 하늘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음미하기 좋은 시집이다.

오랜만에 이름을 내민 중견 시인들의 시집도 꽤 유혹적이다. 등단 41주년을 맞은 문정희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열한 번째 시집 <다산의 처녀>(민음사 펴냄, 8천원)와 베스트셀러 시인 용혜원의 <우리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임효 그림, 나무생각 펴냄, 8천5백원)은 출간 즉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특히 문정희 시인은 10월 4일, 제7회 시카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시카다상은 스웨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해리 마르틴손 탄생 100주년에 맞춰 제정된 상으로, 고인이 생전에 아시아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을 기리기 위해 매년 동아시아 시인에게 수상하는 상이다. 한국에서는 고은, 신경림 시인이 수상한 바 있다. 문정희 시인은 예순이 넘었지만 신작 <다산의 처녀>는 여전히 피보다 뜨겁고, 묵직한 삶의 성찰로 가득하다. <우리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의 시들은 제목처럼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이 묻어난다. 그리운 사람, 사랑한 사람, 이별한 사람이 있어 눈물 뚝뚝 흘리고 싶을 때 읽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꼭 곱씹어보고, 소장하라고 권하고 싶은 시집 하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우리 시인이 있는데, 우리는 그의 시 한 수 외우고 있던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고은 시인의 등단 50주년 기념 신작 시집 <허공>(창비 펴냄, 9천5백원)에 손을 뻗어보자. 시 같기도 하고, 깨달음의 불경 같기도 한 시인의 언어를 조용히 따라 읊으면 가을도, 인생도 절로 무르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