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그의 모습을 맹렬하게 비추기 시작했고, 그의 조각들은 만화경처럼 흩어졌다가 모였다.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이 보는 자의 몫이라면 당신에게 퀴즈를 내고 싶다. 유지태는 정말 보이는 그대로인가?

재킷은 질 샌더(Jil Sander) 셔츠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 선글라스는 레이밴 바이 웨이브(Ray-ban by Wave). 카디건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티셔츠는 뎀 바이 블러쉬( Them by Blush).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유지태가 깨지고 금이 간 거울 위를 맨발로 걷고 있었다. 진공청소기가 한번 쓸고 간 후였지만, 파편이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분명 신발을 신어도 좋다고 했는데도, 그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매니저를 쳐다보니 그냥 으쓱, 웃고만 있다. 배우를 꼭 닮은 매니저라니. 그러고 보니 조금 전 거울을 깰 때도 그는 손수 망치를 들었고, 나는 말렸다. 만난 지 15분 만에 인터뷰이에게 감동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원래 몸을 아끼지 않는 편이냐고 탓하듯 물었다. “네, 촬영할 땐.” 하지만 이건 블록버스터 영화촬영장이 아니지 않나. <얼루어>의 인터뷰 촬영은 대개 평화의 시대니까. “모든 촬영을 똑같이 대해요. 너무 진지하게 하려고 해서 탈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 이 남자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균열된 거울이 그의 모습을 맹렬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10월 14일. 드디어 유지태와 수애가 주연한 새 영화 <심야의 FM>의 개봉일이 잡혔다. 5월에 크랭크업한 후 꽤 기다렸을 텐데도 그는 별일 아니라는 반응. 하긴 그가 <바이 준>으로 데뷔를 한 지도 벌써 12년 전 일이다. 그사이 그는 열아홉 편의 영화를 찍었고, 배우가 영화 속에서 겪어야 할 모든 것은 이미 겪었을 거란 생각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심야의 FM>에서 그는 평소 흠모하던 DJ의 마지막 방송 날,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한정수 역을 맡았다. 영화 시놉시스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라디오 부스 안에서 겁에 질린 수애의 얼굴. 그리고 반대로 얼굴을 숨긴 채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유지태의 목소리였다. 그의 타고난 목소리는 영화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낮은 목소리를 가졌으면서도 둔함이 없고, 청명함이 느껴진다. 타고난 발성과 발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정교해졌다“. 처음 배우 생활을 할 땐 키나 체격 같은 요소가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있었죠. 언제인가부터는 목소리가 중요해진 건 사실이에요.” 그도 이 영화에서 목소리가 유난히 중요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목소리 외에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했다. 이를테면 그의 머리카락 같은 것. 머리는 삭발해야 했고, 몸은 다시 바짝 죄었다. <내츄럴 시티> 이후 두 번째 삭발. 삭발이 배우에게는 썩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남김 없이 밀었다. 감독이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곤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아주 징글징글하게.

<심야의 FM>은 스타에 대한 팬의 뒤틀린 집착이라는 점에서 <더 팬>을,DJ 박스와 전화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폰부스>나 <나이트 플라이트> 등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정작 내용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스릴러 영화 특성상 거의 모든 것이 숨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애와 유지태가 함께 연기를 한다고 하면 멜로 영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반전을 노리기도 했고요.” 유지태에게도 처음은 아닌 악역. 그러나 유독 징글징글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연기자니까. 연기를 가장 먼저 생각하죠.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한정수 역할을 하고 싶어서예요. 그는 주로 전화를 이용해 괴롭히고 협박하죠. 그러니 더 장악력을 발휘해야 해요. 한정된 공간에서 연기력을 보여주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를 괴롭힌 건 표현의 방식보다 한정수라는 인물 자체였다. 이 역할이 자칫하면 오타쿠처럼 보일 거라는 것을 간파한 그는 어떻게 연기해야 조금이라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뒤틀린 인물이며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인물과 동정심 많고 ‘바른 생활’같은 배우의 간극. 캐릭터와 연기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혼자서 겪어야 했던 치열한 전쟁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연기를 답습한 적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난 모든 걸 계산하고 만들어요. 살을 찌우고 빼고 몸을 만들기도 하고 풀기도 하면서.” 신기한 건, 그럼에도 그가 보여준 모든 연기에는 늘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동감>의 순수한 청년, <봄날은 간다>에서 흘러내리는 사랑을 잡으려는 남자, <올드보이>의 폭발적인 잔인함, 심지어 <주유소 습격 사건>의 페인트 역할에도 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었고, 그런 내면 연기는 유지태라는 배우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자연스러운 연기를 지향해온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연기하는 기술도 보여줘야 해요. 나라는 사람은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죽는다’라고 말할 때 더 효과가 좋아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새롭지 않죠. 만들어낸 몸짓과 만들어낸 말도 필요해요. 그래서 한정수라는 인물을 택하고, 이번에는 좀 더 터트렸어요. ‘또라이’니까 ‘또라이’처럼 연기했어요. 험한 길이었어요. 하지만 그래야 연기가 느는 법이죠.”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진지함은 강박과도 같은 거였다“. 아버지가 안 계시고 내가 가장이니까,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난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스무 살 무렵, 내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때 두꺼운 명함첩을 샀어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게 평가하면 난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 명함첩이 다 채워질 때쯤 유지태는 유명해졌다. 그런 진지함이 그를 좋은 배우로 만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진지함이 무겁지 않을까. “정체성의 혼란 같은 걸 느낀 적이 있어요. 내 나이는 서른다섯인데, 열아홉 편의영화를 찍었어요. 12년 동안 영화에, 또 연기에 너무 편중된 삶을 살았어요. ‘나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쿄에서 한참 지내다 왔어요. 아마<봄날은 간다> 때였을 거예요.” 도쿄까지 왔건만, 그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편의점에 가도, 물건을 사면서 점원과 나누는 최소한의 대화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 보름쯤 은둔하자,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자괴감이 들었고,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순간 뭔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는 스시를 먹으러 갔어요.”

유지태와 만난 날은 연예 뉴스에 유독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몇몇 스타들이 배신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반면 내 앞에 앉은 유지태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고 있다.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죠. 꿈을 이루는 방법은,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달린 거예요. 바쁘게 사는지, 행복하게 사는지, 열심히 사는지, 대충 사는지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져요. 그냥 척하는 건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이에요. 고고한 척, 고지식한 척, 금방 들통나죠.” 유지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배우로서의 욕망, 인간으로서의 선한 의지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일찍 배웠다. 모범생 같은 인생관은, 그 자신이 인생에서 체득한 것이기에 마음을 움직인다. “가끔은 효진이가 그래요. ‘오빠 촌스러워졌어.’ 그럼 전 그러죠. ‘어 그래? 알았어. 내가 한번 열심히 해볼게.’

슬리브리스, 롱 니트, 카디건은 모두 릭 오웬스(Rick Owens). 팬츠는 크리스 반 아쉐 바이 블러쉬(Kris Van Assche by Blush). 셔츠는 다미르 도마 바이 블러쉬(Damir Doma by Blush). 팬츠는 블리커(Bleeker). 반지는 마코스 아다마스(Macos Adamas).

”유지태와 그의 연인 김효진이 함께 찍힌 사진 속에서 그는 늘 같은 모습이다. 앞에 혹 장애물이나 적은 없는지 확인하려는 듯 반 발짝쯤 앞선 채 한 손으로는 김효진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버릇이에요. 손 잡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유지태는 여자 친구가 떠오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 효진은, 나를 선배로 좋아했었어요. 너무 편중된 인생을 살진 마, 라는 말을 하면 저는 ‘네가 인생을 몰라서 그래’라고 답하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해요.” 순순히 밝힌 것처럼 그의 연인은 영화, 연출, 연기, 봉사활동과 함께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제 5원소 중에 하나다“. 사람들이 여자 친구 이야기를 물어보면 난 늘 대답을 해요. 너무 많이 해서 탈이지만, 숨길 건 없으니까. 대신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이 좋아요. 남자 친구의 의무가 있다면 사랑을 해주고, 서포터의 역할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포토그래퍼 최용빈에게도 그녀가 안부를 물었다고 전하는 유지태는 분명 다정한 연인일 것이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한다. 좋은 남편, 좋은 가장,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그는 언젠가 그 꿈을 이룰 것이다.

유지태가 배우로서도, 한 남자로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건 분명하다. 게다가 네 편의 작품을 만든 ‘감독 유지태’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뷰 전날 열린 ‘DMZ 영화제’ 개막식에서 공식 트레일러를 만든 것도 그였다. 비가 너무 와서 열심히 만든 작품이 빛을 못 봤다고 서운해하긴 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죽을 때까지 작업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겠죠.” 시간이 많이 흐르기 전에 장편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지금 그에게는 가장 큰 과제다. 여기에 나눔에 대한 의무와 의지가 더해진다. 그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 서른다섯의 배우는 이제 자신에게 당면한 과제는 ‘밸런스’라고 말한다. 연기, 연출, 나눔, 남자 친구로서의 역할을 조화시키는 것. “정교한 작업에 끌려요. 오디오를 좋아하고, 소리에 약간 집착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소리를 따는 직업을 연기했던 <봄날은 간다>의 역할이 더 좋았어요. 궁합이 맞는 소리를 찾기 위해서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해요. 그래야 좋은 매칭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으면 정말 기쁘죠.” 소리에서 밸런스를 찾듯 그는 계속 가슴에 귀를 대고 자신의 내면을 듣고 있다. 가장 좋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요즘 개봉한 영화들이나 책에 관한 것으로 옮겨갔다. 나는 계간 <문학동네>에 실린 하루키와 사흘간 이루어진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만약 유지태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의 시간을 만들어간다면 우리도 사흘 동안 그의 모든 작품과 숨겨진 일상에 대한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지만 정작 그가 그 인터뷰를 봤다면서, 하루키 앞쪽에 실린 신경숙의 대담을 꺼냈을 땐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곤 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었던 것. “북콘서트에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낭독한 적이 있어요. 방송을 하는 행사는 아니었어요. 제의를 받았을 땐 좋아하는 작가라, 꼭 하겠다고 나섰죠.” 그는 지금까지보다 약간 더 빠른 말투로 작가 신경숙과 그녀의 새 작품에 대한 생각을 늘어놨다. “신경숙 작가는 정말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들은 좀 답답해요.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난 선물 같단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렇게 말하잖아요. 드디어 갇혀 있던 틀을 깨고 나온 거예요. 작가가 7편의 장편을 만들고서도 여전히 자신의 틀을 깨고, 예술가로 가고 있단 게, 감동스러웠어요.” 신경숙의 성장은 그가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조건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늘 변화하려고 애쓰고, 성장하려고 애쓰는 배우니까. 그러곤 잠시 책 이야기를 더했다. 그가 좋아하는 폴 오스터, 노통브, 무라카미 류와 작품에 대해서. 낭독회가 끝난 후 신경숙은 그에게 “당신, 지켜볼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지켜보겠노라고. “그러곤 ‘뉴욕으로 오세요’ 하시더라고요. 여자 친구 만난 곳도 뉴욕이라서. 가고 싶긴 해요.”

그와 한번 이야기해본 적 없는 사람들도 그의 진지함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건 그의 온도였다. 사람들은 그가 보통의 온도를 가졌거나, 아님 보통보다도 낮은 온도를 가질 거라고 예상한다. 내성적인 그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과묵한 수줍음은 곧잘 냉정함으로 오해 받곤 하니까. 그러나 그의 심장은 보통의 온도보다 4도쯤 높았다. 생각한 그가 겨울이었다면 마주한 그는 봄이거나 가을이었다. “내 연기는 인생이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또 내 인생은 연기가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계는 냉혹한 바닥이지만, 오해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어떤 항변도 하지 않아요. 결국은 진심으로 만나면 된다고 여전히 믿고 있어요.” 그는 배우야말로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거 알아요? 나는 한 번도 연기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내가 한 작품들은 정말 좋은 상을 많이 탔거든요. 칸에도 갔고, 시체스에도 갔고, 감독상, 작품상, 여우주연상, 조연상도 타는데 늘 나만 못 받아요. 그래도 서운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좋은 사람들과 작업을 했고, 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이미 받았기 때문이에요. 난 그 사람들이 내가 받은 상이라고 믿어요.”

올해 그는 두 편의 영화를 보여줬다. 문득 찬바람이 느껴졌고, 올해의 마지막 날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머릿속에 계획한 것이 있는데, 그게 이루어졌으면 좋겠군요.” 그는 그게 뭔지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다만 순간 따뜻해지던 그의 눈만 기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