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라는 말이 지나치게 소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게으른 창작자들의 손쉬운 돌파 구라고 생각한다면 양혜규의‘ 뒤라스 프로젝트’가 더욱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오마주’라는 말이 지나치게 소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게으른 창작자들의 손쉬운 돌파구라고 생각한다면 양혜규의‘ 뒤라스 프로젝트’가 더욱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는 영화 <연인>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소설로 출간되어 전 세계적 인기를 얻게 된 <연인>은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으로, 10대 프랑스 소녀와 30대 중국인 남자의 사랑과 성을 그린 문제작이다. 제인 마치라는 아이콘과 전설적인 페도라 룩을 남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책에는 영화포스터와 유사한 뒤라스의 소녀시절 사진이 실려 있는데, 작가 본인도 인정한 것처럼 깊은 눈매가 심상치 않다. 뒤라스의 작품은 그 외에도 몇 편 더 영화화되었다. 영화계에 불었던 누벨바그의 주역이 트뤼 포라면, 그녀는 문학계에 불어온 누보로망의 주역이었고, 두 세계는 종종 마주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그리트 뒤라스 자신이 직접 연출을 하곤 했던 감독이라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녀는 1996년 세상을 떠났다. 2009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며 세계 미술계의 중심에 떠오른 작가 양혜규는 반 세기를 앞서 산 마르그리트 뒤라스와의 접점을 발견했고, 그녀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작가 양혜규와 사무소(SAMUSO:)는 <셋을 위한 목소리> 개인전과 함께 마르그리트뒤라스의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소설을 모노드라마로 직접 각색한 <죽음에 이르는 병(The Malady of Death)>을 무대에 올리고, 뒤라스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파괴하라, 그녀는 말한다>, <인디아 송> 등을 상영하는 영화제를 기획 진행한 것.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장르의 교환을 이야기하고, 비미술적인 요소로 여겨진‘ 목소리’를 끌어안았다. <셋을 위한 목소리>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양혜규의 가장 큰 공통점은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뒤라스에게 글쓰기란, 언어뿐만이 아니라 음성의 범위를 의미했다. 때문에 영화와 연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한 양혜규 역시 다양한 표현 기법을 사용하고 있고, 문학 작품의 번역과 출판을기획하곤 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 역시 그녀가 국내 소개한 작품이다. 뒤라스는 작가노트에서 이 책을 두고 연극 공연으로 올릴 수도 있다고 남겼지만, 생전에 무대에 올린 적은 없다. 양혜규는 뒤라스의 짧은 작가노트를 확장하고 해석해 근사한 모노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주인공은KBS 아나운서 출신 유정아가 맡았다. 연극배우가 아닌 아나운서를 기용한 이유는, 연기보다 낭송에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뒤라스는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연인>의 완성본을 보고 격노했다고 알려져 있다. 작품의 의미를 완전히 날려버렸다는 이유였는데, 그녀가 양혜규의 모노드라마를 보았다면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궁금해진다.

이번 전시는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녀가 국내 미술기관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그럼에도굳이‘ 오마주’ 작업을 포함시킨 이유는, 아트선재센터에서 10월 24일까지 열리는 전시 <셋을 위한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총 10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개인의 기억과 역사가혼용되고, 개인과 사회가 어우러진다. 그 안에는 독창적인 감각 매체들이 등장하고, 사진과 영상,조각과 설치 등 다양한 표현 형식이 존재한다. 아티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감각의 총체가 그곳에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뒤라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서 사는 삶을 추출해내고 극대화한다.물론 우리는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최측인 사무소는 각각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와‘ 셋을 위한목소리’로 이름 붙인 작가의 모노그래프를 발간했다. 그러나 소개서를 먼저 읽는 대신 작품을 먼저 보아야 한다. 작품을 처음 볼 때의 아득함이나 작품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뇌세포의 몸부림이야말로, 갤러리를 찾는 가장큰 묘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