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떠나기 전, 서점 여행 코너에서 기후 현에 대한 책을 샅샅이 찾았다. 그러나 그 속에, 기후는 없었다. 하는 수 없지. 모든 감각을 열어놓을 수밖에. 36℃의 폭염을 뚫고 찾아간 일본의 심장은 활기찼다. 아주 맑았고, 많은 것이 오래전 그대로였다.

1 시라카라고 전경. 2 큰 하천을 앞에 둔 구조하치만의 가옥.3 명성이 자자한 소우기스이 약수. 4 노점에서 파는 은어 구이5 시라카라고의 허수아비. 농촌이 많아 자주 눈에 띄는데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6 구조하치만의 오래된 거리. 골목을따라서 작은 수로들이 흐른다. 7 물 좋은 곳이 술맛도 좋다는건 진리. 다양한 사케를 맛보고 구입할 수 있으며, 포장도 아주예쁘다. 8 일본은 전통적인 가옥을 보존하는 데 일가견이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온통 오래된 집이니까.

기후 시에 베이스 캠프를 세우다
이번 여행에 전격 합류한 카이지루시 본사 해외팀의 아오키와 니시야마와의 첫 만남. 한국어와 일어, 영어가 꼬이고 뒤섞인 인사와 필연적으로 유발된 내숭은, 나고야 공항 밖으로 딱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사라졌다. 더웠다! 아스팔트 위에 달걀을 깨트리면 서니사이드업으로 익을 것 같고, 몸 안의 모든 수분을 증발시킬 것 같은 일본의 9월 더위는 악명 높은 8월의 홍콩보다도 한 수 위였다. 기후 현은 긴 고구마 모양의 일본에서도 정가운데에 위치한다. 일본에서 흔하다는 바다는 없고, 일본에서 흔하지 않다는 산은 많은 혼슈 중부지방은 내륙지방답게 맹렬한 여름 더위로도 유명했다. 그러니 우리는 제대로 찾아온 셈이었다. 서울이 하루 걸러 하루씩 물난리를 겪는 동안 일본의 날씨는 매일매일 화창하기만 했다. 기후 현의 중심 도시인 기후 시는 조금 심심한 듯하지만 미노, 구조하치만, 시라카와고 등 작은 도시를 돌아보는 베이스 캠프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강가에 위치한 그랜드 미야코 호텔은 품위 있는 호텔로, 바로 앞에 강이 흘러 아침에 산책하기 좋고 물이 좋은 고장답게 수돗물이 굉장하다. 머리를 감을 때 컨디셔너가 필요 없을 정도라면 설명이 될까. 기후 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 정상의 기후 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통일의 꿈을 펼쳤던 곳이다. 그 16세기에는 기후가 일본 역사의 중심이었다. 역사가들은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기후 현의 곡창지대를 말한다. 쌀이 넉넉했기에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고, 군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야심가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호령했던 기후 성에서는 기후 시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정상 근처까지 로프웨이가 운행해 조금만 올라가면 기후성이 나온다. 아침 일찍 산에 오르면 마주치는 사람마다 ‘오하요~’ 하고 아침 인사를 건넨다. 기후 시를 내려다봤으니 이제 작은 도시를 돌아볼 차례.

구조하치만,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의 베네치아
구조하치만은 어디에서나 물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늘 귀에 꽂고 다니는 아이팟도 이곳에서는 잠시 꺼두는 것이 좋다. 구조하치만은 일본 정부가 선정한 100대 명수로 꼽혔다는 소우기스이 수원과 요시다 강, 잘 보존된 전통 가옥의 조화로 유명한 ‘물의 마을’이다. 항주나 베네치아처럼 물 가운데 푹 잠긴 도시는 아니지만, 골목골목마다 작은 수로가 이어져 있어 온 마을에 물이 흐른다. 이 수로를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문난 청류라더니, 마을을 관통하는 하천도 수로를 흐르는 물도 맑다. 수로 가까이 주저앉아서 손가락으로 물결을 콕콕 찔러보다가 못 참고 발을 푹 담가봤다. 산에서 막 내려온 것처럼 차갑다. 이런 수로를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잉어가 살랑댄다. 파란색 잉어, 빨간색 잉어, 얼룩무늬 잉어. 크기도 팔뚝만한 것부터 손가락만한 것까지 다양한데, 더위 속에서도 시원한 물속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가 여행자들이나 동네 주민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호위호식 중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은 잉어가 틀림없다. 구조하치만은 잉어의 천국이기도하다. 더위에 푹 잠겨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던 다른 마을과 달리 이곳만큼은 사람들이 생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열을 식히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은어 낚시족, 무릎까지 오는 하천에서 노는 아이들, 양산을 든 커플, 바닷가에 태어났다면 분명 서핑을 했을 일본 소년들이 수영팬츠만 입고 보트와 노를 메고 골목 이곳 저곳에서 뛰어나왔다가 사라지고 전통 가옥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가 수로를 흐르는 물을 한 주걱 떠서 달아오른 돌길을 식힌다. 이 마을의 모든 풍경이 금방 물에 씻은 듯 싱그럽다. 일본의 여느 시골마을처럼 작은 이곳은 느슨하게 걸어도 한 시간이면 마을의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구조하치만을 즐기려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놀아야 한다. 소우기스이 수원의 약수를 한 국자 떠 마시며 무병장수 만수무강을 빌고, 마을주민처럼 하천에 발 담그고 지친 발을 쉬게 하며, 지역 명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혀끝을 즐겁게 하라!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대단할 것 없는 마을이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보낸 오후가 최고로 행복했다. 과연 명수였다!

일본도의 장인과 가마우지 장인을 만나다
세키 시에서는 일본도의 장인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장인은 담금질을 잠시 멈추고 다다미가 깔린 방에 앉아 달아오른 열을 식히고 있었다. 여닫이 문을 활짝 열어놓은 안채와 겨우 세 걸음 떨어진 곳은 논이 펼쳐 있었고 그 사이에는 어김없이 작은 수로에 물이 흐르고 있다. 가끔 길을 잃은 은어가 찾아올 정도로 맑은 수로다. 세키 지역이 일본도 명산지로 손꼽히게 된 것도 풍부한 수자원 덕분이다. 재료의 수급은 물론 전국배송도 용이했기 때문. 한눈에도 ‘선생’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카네후사 후지와라는 새파란 벼를 보면서 한쪽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고, 곁에는 세 명의 훈남 도공이 자리했다. 그중 하나는 후지와라의 아들이었다. 이들은 안채와 이어진 대장간에서 전통적인 방법 그대로 일본도를 만들고 있다. 대문에는 악귀를 쫓기 위한 부적과 신물이 걸려 있고, 전등만 제외하면 200년 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오래된 가마와 풀무 등이 채워 있었다. 그들은 막 새로운 칼을 만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아직은 칼이라기보다 덩어리에 가까운 모습. 한 손으로 풀무질을 하며 박자를 매기면, 다른 사람의 손이 철광석 덩어리를 엎어 치고 메치며 다시 박자를 받는다. 쨍쨍하는 맑은 소리가 같은 박자로 울려 퍼지며 붉게 달아오른 철덩어리가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금술이었다. 그 앞에서 화학 공식과 물리 반응을 모두 잊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고 싶은 신기한 광경이다. 강도를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철을 얹고, 두드려 섞고, 다시 다른 철을 얹고 두드려 섞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한 칼에는, 곱게 물결이 그려 있다. 활처럼 유려하게 휜 곡선은 찌르는 것 보다 휘두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무술 때문이라고 한다. 한 대장간에서 1년에 24개의 일본도를 만들 수 있는데, 이 장정들이 모두 달라붙어도 보름에 한 개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과정을 손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후지와라는 ‘25대째’ 일본도의 장인이다. 한편 가마우지 낚시의 장인은 어둠 속에서 찾아왔다. 가마우지 낚시는 기후 시에서도 볼 수 있지만 나가라 지역이 가장 전통적이고 운치 있다. 오후 4시쯤 은어 코스요리를 배불리 먹은 후, 나룻배를 타고 아사히 맥주와 땅콩을 먹으며 노닥이다 해가 지면 장인들이 나타난다. 내륙지방인 기후의 식생활에서는 민물 낚시가 중요한위치를 차지했는데, 그중에서도 5월부터 10월까지 맛볼 수 있는 은어를 제일 좋아한다. 우리말로는 은어, 일본에서는 아요(ayo)를 낚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 ‘우카이’로 유명한 곳이 기후의 나가라 강이다. 우카이는 가마우지 새를 이용하는 낚시 법으로 무려 1300년이나 이어져왔으며, 가마우지 장인인 ‘우쇼’는 인간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가 만난 장인은 ‘17대’였다. 해가 지면 장인은 짚으로 만든 치마를 겹쳐 입고 가마우지 여섯 마리의 목에 줄을 매고 배를 띄운다. 작은 은어는 삼키게 두고, 큰 은어를 잡으면 잽싸게 줄을 당겨 은어를 꺼낸다. 이 방식으로 잡은 은어는 상처가 없는 데다, 가마우지가 은어를 잠시 기절시키기 때문에 특별히 맛이 좋다고 한다. 가마우지를 멀리 보내고 끌어당기는 모습은 춤사위 같고, 시야를 확보하기 위에 나룻배에 나무를 태우는 등불을 올려, 배가 미끄러지면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화톳불의 꼬리도 길어진다. 사람들은 해 질 무렵부터 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장인을 따라가며 낚시를 구경하는데, 밤의 뱃놀이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까닭에 유카다를 입은 여인들이 뱃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동물 학대가 아니냐고? 가마우지가 은어낚시를 하는 시간은 20분 정도로 짧으며, 여러 마리의 가마우지가 교대로 일한다. 나머지 시간은 150년 된 고급 주택의 전용 수영장에서 논다. 가마우지의 비벌리힐스가 따로 없는 것! 새끼 때문에 장인들과 교감하며 자란 덕분에, 이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에는 고단함이 없다. ‘자, 오늘도 놀아볼까’하며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가마우지와 장인은 달이 밝은 강 위에서 잠시 춤을 췄다.

1 여행을 하다보면 곳곳에 신을 모신 사당을 자주 마주친다. 사당마다 모시는 신이 다 다르다. 2, 6 깔끔하게 장식된 식당 입구 역시 일본 문화의 특징. 3, 10 시와카라고의 소바 정식과 박잎 쇠고기 된장구이.4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란 돈카츠다. 이곳만의 특별한 소스는 일본에서도 유명하다고. 5 일본인들이 사족을 못 쓰는 은어구이. 일본식 정원이나 가마우지가 뛰노는 안채, 강변을 보며 다섯가지 은어 코스를 즐길 수있다. 7, 8, 9 25대째 일본도 장인의 맥을 잇는 후지와라의 대장간. 11 카이지루시 공장 근처의 유명한 장어집 츠지야. 이렇게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눈을 감고도 코로 찾을 수 있는 건 당연하다.장어 정식을 주문하면 장어로 만든 가벼운 요리와 제철 생선회, 마지막으로 장어 덮밥까지 먹을 수 있다. 양이 어찌나 많은지, 아까운 장어 덮밥을 남기고 말았다.

리틀 교토로 불리는 다카야마
히다 지역의 다카야마는 일본 중부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다. ‘히다 비프’로 불리는 쇠고기와 온천, 사케양조장, 전통 료칸이 많은 이곳의 별명은 ‘리틀 교토’인데 오래된 상점 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교토의 건축물을 지은 목수들이 다카야마의 건축물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고즈넉한 풍경 때문에 기후 현의 여행지 가운데 외국인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다.다카야마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 이전부터 중부지역의 행정 중심지였다. 마을의 중심에는 막부 시대의 관청이었던 ‘다카야마 진야’가 남아 있다. 넓은 정원, 집무실과 연회실, 세금으로 거둔 쌀 창고 등 위용이 대단하다. 이 관청을 중심으로 상업이 번성했는데 기념품 가게나 카페 등으로 업종을 바꾼 곳도 있지만 몇 백 년째 사케를 팔고, 된장을 파는 가게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운치를 더한다. 양조장을 낀 사케 집에서는 지역에서 만든 사케를 얼마든지 맛보며 살 수 있는데, 각기 다른 맛과 향을 자랑해 금세 얼굴이 벌개지기 십상이다. 우리나라에 비해서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주렁주렁 사케를 사고 만다. 된장 가게도 흥미롭다. 다양한 된장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큰 솥에 된장국을 끓여놔 역시 맛을 보고 살 수 있다. 커다란 간판이나 네온사인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찻집은 작게 찻잔 그림을 그려놓을 뿐이라 하나하나 가까이 들여다보고서야 정체성을 파악하게 된다. 다카야마의 재미는 바로 이 상점 거리인데 저녁 6시면 음식점을 제외하고 일제히, 정말 순식간에 문을 닫는다. 마침 그 시간에 다카야마 거리를 걷고 있던 나는 순간 얼얼해졌다. 다카야마의 해가 떨어지고 할 일은 세 가지다. 저녁 먹기, 술 마시기, 온천 하기. 일본에서 고베 비프보다 알아준다는 히다 비프는 과연 명불허전이고, 청량한 사케도 그렇다. 크고 작은 온천에서 피로를 풀면 하루가 끝나 있다.

혼자 먹어서 미안한 기후의 여섯 가지 맛
모락모락 피어나는 장어 향기 더운 날씨 때문인지 길에도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골목에선 장어 굽는 냄새와 연기가 진동했는데, 작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십 명의 사람이 진지한 자세로 장어를 먹고 있었다. 일본의 장어는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지만, 이곳의 명물 장어집 ‘츠지야(0575-22-0220)’는 쫄깃하고 훈연향이 가득하게 굽는 것이 다르다고. 장어 코스를 주문하면 작은 요리가 이어지다 마지막에 장어덮밥이 나온다. 근처에 가면 눈을 가려도 코로 찾을 수 있는 집이다.

눈물 나게 맛있는 돈카츠 그 돈카츠 집은 논으로 둘러싸여 생뚱맞게 서 있었다. 그럼에도 차들이 꽤 세워져 있었다는 건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먼 거리에서도 일부러 찾아온다는 뜻. 돈카츠가 맛있어봤자 돈카츠가 아니겠나 생각했지만 이 집 돈카츠를 한입 베어 물고 사과문이라도 써야겠다 싶었다. 돈카츠도 예술의 경지에 오를수 있다. 바삭한 빵가루도, 촉촉하고 고소한 돼지고기도, 특제 스위트 소스도 엄청나게 맛있었다. 이 돈카츠를 먹고 조금 불행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 돈카츠를 먹을 때마다 논두렁에 있던 그 집을 떠올릴 테니까. 모둠 카츠, 카레 돈카츠 등 다른 메뉴에 눈 돌리지 말고 오직 돈카츠만 시켜 먹을 것!

황홀한 은어 코스 가마우지 낚시의 장인, 인간문화재가 운영하는 은어 요릿집에서는 은어로 만든 코스 요리를 먹으며 해 질 때를 기다린다. 은어 구이, 은어 조림, 은어 튀김, 은어 생강소스 찜을 먹고 마지막으로 은어 죽을 먹는다. 은어 한 마리로 이렇게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구나, 무릎을 치는 것과 동시에 신선한 은어에서는 싱그러운 수박향이 난다는 속설을 확인했다. 200년 가까이 된 강가의 오래된 저택과 정원도 운치 있다.

시라카와고식 된장 구이 동화 마을 시라카와고의 음식점은 물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다. 관광지의 음식이라면 비싸고 맛없는 음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시라카와고는 달랐다. 특히 이곳은 소바와 쇠고기 요리로 유명하다. 일본의 소바 간장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짠 편이라 국수 끝만 살짝 담가 먹어야 한다. 시라카와고의 쇠고기 요리는 작은 숯불 화로 위에 향이 나는 박잎을 두 어장 깔고 특제 된장 위에 마블링이 고운 쇠고기 몇 조각과 두부, 버섯 등을 올려 자작하게 익혀 먹는 음식이다. 짭짤하고 구수한 된장이 밥을 부르고, 밥이 된장구이를 부른다. 쇠고기 정식을 주문하면 간단한 절임 반찬과 산나물이 나오는데, 이것도 또한 별미.

촉촉한 비프 커틀릿 다카야마의 명물 식당은 ‘히다 비프’로 만든 비프 커틀릿이다. 입구에는 온갖 협회에서 받은 상이 가득 걸려 있다. 겉모습은 꼭 고로케를 닮은 이 주먹만한 비프 커틀릿을 먹지 않고 다카야마를 떠나는건 비극이다. 덩어리 쇠고기 대신 잘게 썬 쇠고기에 다진 양파를 섞고 빵가루를 묻혀 튀긴 것인데,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 깜짝 놀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생맥주와 비프 커틀릿을 먹어보길. 이런 음식을 파는 다카야마가 한층 더 사랑스러워진다.

고베 비프 그 이상의 쇠고기 고베 비프가 값비싸고 유명하다는 건 다 아는 이야기. 하지만 기후에서 만난 일본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베 비프보다 한 수 위인 마츠자카 비프와 히다 비프를 먹지 않고선 말을 말라는 이야기다. 기후 시 ‘센류(058-231-1151)’는 마츠자카 비프로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마중하고, 직접 원하는 방식으로 고기를 구워준다. 숯불 화로 직화 구이와 테판야키 스타일로 반반을 주문해봤다. 엄청난 두께의 쇠고기에는 지방이 눈의 결정처럼 고루 퍼져 있었다. 우리나라 쇠고기가 진한고기맛과 육질을 자랑한다면 일본의 쇠고기는 스르르 녹는 맛이다. 다카야마에도 히다 비프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많다. 고기의 종류를 골라 샤브샤브, 스키야키 또는 우리나라 식으로 구워 먹으면 된다.

1 종이로 유명한 미노 등불 축제의 모습은 밤의 피크닉을 부른다. 축제 때가 되면 이 작은 마을이 온통 사람들로 넘실댄다. 2, 5 화지로 만든 작품. 미노 시는 모두 3곳의 종이 박물관 겸 갤러리가 있다. 종이 무역으로유명한 상인의 가옥과 작품을 전시 중인 갤러리가 있고, 좀 떨어진 박물관에서는 직접 종이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3 가마우지를 이용한 낚시 장인. 세계 곳곳에서 취재를 오는 기후 현의 명물이다. 4 오래된 집을보존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소도시들. 때문에 독특한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6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전거 풍경. 지붕에 끝에 달린 동그란 것이, 화재 피해를 막아주는 방화벽‘, 우다츠’다.

21세기 장인 정신을 잇고 있는 ‘카이’
일본인은 무엇인가를 정성껏 만들어내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 모든 세계가 수공품을 만들었던 시대가 끝나고 산업혁명을 겪으며 사람들은 손맛을 잃어갔지만, 103년 된 일본 기업 카이지루시는 기계와 손맛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은 듯했다. 카이지루시의 공장을 보며 느낀 건 공산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건 기계가 아니라 한번 더 사람의 손으로 연마하고, 사람이 제품을 확인하는 정성이라는 점이었다.

카이지루시라는 사명보다 ‘카이’라는 브랜드명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지만 아마 이 이름을 인지하지 못했다고해도 한번쯤 카이 제품을 써봤을 확률이 높다. 일본은 물론 세계의 손톱깎이와 면도날 시장을 점령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 일가견이 있다보니 비슷한 분야로 사업이 확장되었고, 지금은 수술용 메스나 가위를 비롯한 메디컬 제품과 부엌칼 등 키친 제품도 명성이 높다. 다양한 부엌칼 라인 중 세계적인 스타 셰프 미셸 브라스와 협업으로 만든 칼은 한눈에도 명품. 또 가위에도 명품이 있다는 걸 보여준, 7000시리즈로 불리는 전문가용 가위는 수십 겹의 옷감도 스르륵 자를 수 있는 마법의 가위였다. 모두 네 곳의 공장을 돌아봤는데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공장 견학’은 여행 못지않게 신나고 신기한 광경투성이였다.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직접 참여하는 부분도 만만찮게 많았는데, 부엌칼을 손으로 그라인딩하는 공장 직원을 보며 하루전 만난 일본도 장인이 떠올랐다. 그의 대장간이 전통적 대장간이라면 카이지루시의 공장은 현대식 대장간이었다. 방식은 다를지라도 그 기저에 깔린 정신만큼은 같을 것이다.

이 카이 제품에 <얼루어 코리아>가 흥미를 갖게 된 건, 카이의 뷰티 제품 때문이다. 올리브영과 아리따움에서 인기몰이 중인 ‘카이’ 제품은 세상 좋은 아이템을 다 체험해본 뷰티 기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타고난 생머리라 속눈썹까지 축 처져서 고민이라고 우연찮게 이야기했을 때 선배 기자가 자신의 뷰티 파우치에서 이걸 꼭 써보라며 꺼내준 동그란 뷰러도 카이 제품이었다. 가위, 면도칼, 부엌칼, 수술도구를 만드는 회사가 뷰티 제품이라니, 낯선 느낌도 들 법하다. “뷰티 케어 제품을 처음 만들게 된 건 소비자들의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네 개의 공장을 돌아본 후 카이지루시의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에서 정통 다도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때다 싶어 이것저것 물었고, 카이지루시의 미즈타니 상무는 친절하게 답해줬다. “손톱깎이와 가위를 만들고 있으니 좋은 눈썹가위도 있었으면 한다는 요구가 생겨났죠. 만들어보니 아주 반응이 좋았습니다. 특히 한쪽 날에 눈썹빗을 달아쓰기 쉽게 만든 눈썹가위와 뷰러는 뷰티 케어 제품의 히트 상품입니다. 조금씩 뷰티 케어 제품을 만들면서 이시장이 굉장히 매력 있고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 블루오션이기도 하지요. 화장품 회사는 많지만 화장 도구를 만드는 회사는 많지 않으니까요.”

일본 여행에서 사와야 할 필수 아이템이나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아이템을 잘 아는 블로그 등을 보면 헬로키티가 프린트된 귀여운 뷰러, 스펀지에 머리카락을 돌돌 말고 잠들면 다음 날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생기는 스펀지 볼 등 일본 특유의 아이디어 제품을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인터넷으로 보며 탐을 내던 제품 대부분이 카이 쇼룸에 있었다. 2천 개에 달한다는 카이 제품 중에서도 몇몇 라인은 쇼룸을 통째로 비행기에 실어 가져오고 싶었다. 아직 우리나라에 선보이지 않은 맨즈 그루밍 제품도 그중 하나다. 남자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될 테지만 모던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무광택 때문에라도 꼭 갖고 싶은 제품이다. 도쿄 아키하바라 지역에 위치한카이 본사의 1층에는 ‘카이 하우스’라고 부르는 쇼룸이 있다. 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한 아이디어 작품은 물론, 야심차게 선보이는 럭셔리 라인 ‘코바코’도 볼 수 있었다. 코바코 라인은 뷰티 케어 제품의 선두인 카이가 9월에 열리는 파리 뷰티 페어 ‘비욘드 뷰티(Beyond Beauty)’를 겨냥해 개발한 제품이다. 일본에서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히로시마 현 구마노산 고급 자연모를 이용한 브러시 라인과 원하는 컬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뷰러 라인, 속눈썹 세트로 이루어졌으며 긴자의 고급 백화점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이고 있었다. “최고급 재료와 세심한 기능, 편리한 휴대성에 초점을 맞춰서 개발한 제품입니다.” 카이지루시 본사 기획실 엔도의 설명이다. “눈화장을 강조하는 일본 여자들에게 속눈썹은 가장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속눈썹을 겹겹이 붙이는 게 유행입니다. 코바코의 속눈썹은 최상의 재료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레이어드가 가능하도록 세트로 만들어 출시한 것이 특징입니다. 왼쪽 눈을 위한 뷰러와 오른쪽 눈을 위한 뷰러를 만든 것처럼 여자들의 욕구를 세심하게 반영했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의 뷰티 스페셜리스트의 자문을 받았어요.” 집요할 정도의 세심함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최근 카이의 히트 아이템은 등 면도기였다. 등에 난 잔털을 밀 수 있도록 손잡이를 길게 하고 안정성을 높인 제품이다. 여자의 마음을 읽다니, 과연 카이!

기후와 도쿄에서 들른 수많은 편의점과 잡화점, 드럭스토어에서 카이 보물찾기를 해봤다. 어디에나 카이 제품이 있었다. 제품이 워낙 많아, ‘일단 사고 보니 카이’라는 농담도 생겨났다고. 돌아보는 동안 정말이지 인정하지않을 수 없었다. 카이 제품은 달랐다. 비슷해 보이는 눈썹가위도, 심지어 족집게 하나도 달랐고, 작심하고 만든 고급 라인은 하나같이 갖고 싶어서 몸이 동했다. 뷰티 제품부터 부엌칼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아니 단 하나나무랄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제품이 너무 많더란 것이다! ‘카이’의 더 많은 제품을 한국에서 만날수 있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일본 사람들만 알고 쓰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아까워서. 눈 높기로, 깐깐하기로 유명한 <얼루어>의 에디터는 그렇게 ‘카이’의 팬이 되어서 돌아왔다. 참, 카이는 ‘3대째’다.

교토도 나라도, 삿포로도 아닌 곳. 나카사키나 오키나와처럼 이국적이지도 않은 곳. 그래서 기후 현에 대한 여행 책도 찾기 어려운 것일 테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고 말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이 가장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잘 보존되어 있는 까닭이다. 다른 매력적인 여행지가 상업적인 여행지로 변모하는 동안 기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정신을 지킬 수 있었고 카이 역시 그곳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기업이다. 소박함과 성실이 최고의 가치가 된 지역. 여전히 이곳의 사람들은 전통 목조 주택에 살고, 쫀득한 맛이 일품인 고시히카리 쌀을 재배하고, 장인의 대를 잇거나 스스로 명품을 만들어내며 지금껏 살아온 방식으로 살고 있다. 기후의 도시, 기후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자연스러움과 자부심 때문에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