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두 얼굴을 가졌다. 살 곳을 찾아 하늘과 맞닿은 산꼭대기까지 올라야 했던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초고층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 호텔 공사가 한창이다.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찾아 떠난 1박 2일 짧은 여정의 기록.

1 오륙도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도착한 등대섬의 전경. 2, 3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문현동 안창마을. 지금은 담벼락에 그려진벽화와 세월이 비켜간 듯한 마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4 청사포항의 붉은 등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의 뱃길을밝혀주는 고마운 존재다. 5, 6 국제시장의 명물인 충무김밥. 시장 한복판에서 가판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김밥을 먹는 기분이 묘하다.

현재
한차례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고 또 다른 태풍 말로가 북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무렵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태풍과 더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는 게 내심 불안하기도 했지만 2년 만에 찾는 부산이라 들뜨기도 했다. 대구를 지날 때는 긴팔 옷을 걷어붙일 정도로 해가 쨍쨍했지만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날이 점점 흐려지더니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작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경성대 쪽으로 차를 몰아 쌍둥이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부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을 꼽자면 돼지국밥, 곰장어구이, 대구뽈찜, 밀면, 조개구이, 대구탕, 조방낙지, 족발 등등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단연 돼지국밥이다. 3년 전, 새벽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처음 들른 곳도 역전 돼지국밥집이었다. 말로만 듣던 돼지국밥을 드디어 먹는다며 한껏 들떴지만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심해 한술 뜨다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돼지국밥은 입에도 안 대다 2년 전에 이 집에서 국밥을 먹고 나서부터 좋아하게 됐다. 수육백반을 주문하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 국밥과 수육 한 접시를 내온다. 국밥에 부추무침을 듬뿍 넣어 한 숟가락 뜬 다음 수육 한 점과 새우젓을 올려 먹어야 제 맛이다. 담백하고 구수한 육수와 기름기가 적당히 남아 있어 부드러운 수육과 궁합이 꼭 맞아 떨어진다.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더 굵어져 있었다. 파도가 심해 배가 뜨지 않을까 걱정돼 오륙도 선착장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부산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오륙도는 육지 근처에 나란히 뻗어 있는 6개의 바위섬인 방패섬과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을 말하는데, 썰물과 밀물 때 방패섬과 솔섬이 하나의 섬으로 보였다 두 개의 섬으로 보인다 하여 ‘오륙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코스모스 군락지를 따라 언덕에 오르면 멀리 해운대와 오륙도의 풍경이 좌우로 펼쳐진다. 이날은 해무가 자욱하게 끼어 해운대를 둘러싼 고층 건물들이 흐릿하게 보여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20여분을 기다려 오륙도를 돌아보는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이라기보다 작은 어선 같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자 멀리 희뿌연 안개 뒤로 하얀 등대가 솟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등대섬이라 불리는 밭섬이었다. 가까이에서 등대를 살펴볼 요량으로 잠시 배에서 내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자, 그새 안개가 더 짙어져 바다 한가운데 동떨어진 섬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 길, 항구 바로 뒤로 초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덕을 따라 파란색 지붕을 얹은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야 할 자리에 도곡동에나 어울릴 법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이 영화 <인셉션>에 나오는, 상상으로 재현한 도시 같았다. 부산은 산을 타고 성냥갑같은 집들이 총총히 자리 잡은 산동네와 산의 능선보다 높게 치솟은 고층아파트 단지가 뒤얽혀 있는데, 여행하는 내내 여러 번 마주쳐도 도통 익숙해지질 않았다. 함께 간 사진작가가 도시의 전경이 너무 ‘부산스러워’ 부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노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달맞이고개에서 광안리를 지나 오륙도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서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과거
황량한 풍경을 뒤로하고 진짜 ‘부산스러운’ 정취를 느끼기 위해 찾은 곳은 영화 <마더>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문현동 안창마을이다. 수직에 가까울 만큼 경사가 심한 언덕을 오르자 산꼭대기에 층층이 자리 잡은 집들이 보였다. 한국전쟁 때 갑자기 밀려온 피난민들이 살 곳을 찾아 산꼭대기까지 오르고 올라 거처를 마련한 애환이 서린 장소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일거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이 첫 거처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 사람들의 삶이 녹록지 않아 보이지만,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와 지붕과 경사진 골목에 심은 나무와 풀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담장 너머로 가지를 내민 감나무와 대추나무, 무화과나무와 골목을 걷다 마주친 동네 개와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어릴 때 찾았던 시골 외갓집 동네가 생각났다. 녹색 이끼가 낀 오래된 계단과 담장도 정겹게 느껴졌다. 세월이 비켜간 듯한 오래된 마을의 풍경은 여행객에게는 그저 신기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 다음 발길이 향한 곳은 국제시장이다. 자갈치시장, 깡통시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광복 직후 일본인이 급히 자국으로 도망치듯 떠나면서 전시 통제물자를 한꺼번에 내다 팔던 장소에서 유래됐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부산항을 통해 군용물자와 함께 밀수입된 온갖 상품이 이곳에 모였다 전국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규모가 크고 외국 물건이 넘쳐난다고 해서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니 당시의 위상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상권이 서면 일대로 옮겨가면서 찾는이가 줄었지만, 시끌벅적한 시장통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 구석구석을 걷다 출출해질 무렵 커다란 비닐을 천막처럼 두른 가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징어무침과 무김치를 탑처럼 쌓아 올린 가판 뒤로 아주머니들이 금방 지은 쌀밥이 가득 담긴 통을 무릎에 올려놓고 김을 한 장 한 장 돌려가며 능숙한 솜씨로 충무김밥을 말고 있었다. 시장 한복판에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김밥을 먹는 기분이 묘했다. 걸쭉하고 매콤한 고추양념과 오징어의 부드러운 속살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입에 착착 붙었다. 국제시장에서 조금 걸어 내려오면 이름난 족발집이 모여 있는 일명 ‘족발골목’이 나온다. 부산 출신의 지인이 추천한 집을 찾아 들어가자 족발이 나오기도 전에 양념게장과 오이냉채, 콩나물국을 비롯해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곧이어 족발이 나왔는데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나오는 것이 독특했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졸깃하고 부드러운 육질의 족발을 좋아하기에 기름기를 쫙 빼 보쌈처럼 담백하게 삶은 족발이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신기하게도 한 점 한 점 집어 먹을수록 입맛이 당겼다. 과일 맛이 나는 새콤달콤한 간장소스를 듬뿍 찍어 새우젓을 올려 먹어야 제 맛. 족발냉채와 오향장육도 다음에 들르면 꼭 먹어보리라 다짐하고 국제시장과 찻길을 끼고 마주한 깡통시장으로 향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과 과자류 등을 노점상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깡통시장의 시작이다. 1970년대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이 귀국해 미군 전투식량을 내다 팔면서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동안 공산품의 수입자유화로 수입품 시장으로서의 매력은 떨어졌지만, 지금은 수입품뿐만아니라 피규어와 디카, 돋보기, 액세서리 등 온갖 물건을 파는 만물시장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좁은 시장통에는 단팥죽과 옥수수, 생과일 주스를 파는 행상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길거리 음식을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복숭아 두 개를 통째로 넣은 과일주스를 단돈 1천5백원에 마실 수 있으니 후한 시장 인심에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국제시장 건너 보수동 쪽으로 난 좁은 골목에는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헌책방 골목이 있다. 이곳 역시 근처 재래시장들과 마찬가지로 광복과 맞물려 생겨난 곳이다. 일본인이 서둘러 본국으로 떠나면서 남기고 간 책들을 난전을 펼쳐 팔기 시작하면서 헌책방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것. 미군 주둔 시절에는 군인들이 읽던 헌 잡지와 소설책 등이 불티나게 팔렸고,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가지고 있던 책을 내다 팔기도 했다. 고단했던 한국 근대사와 운명을 함께해온 셈이다. 요즘은 신간을 취급하는 곳이 늘었지만 여전히 희귀본이나고서를 찾기 위해 찾는 이가 많다. 매년 가을이면 5백원으로 책을 살 수 있는 ‘500원 데이’와 같은 재미있는 행사도 열리니 한번쯤 찾아보길. 국제시장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자갈치시장이 나온다. 자갈치시장의 역사는 개항기인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민이 작은 어선으로 물고기를 잡아 일본인에게 판매하면서 소규모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6년에 기존 부산 어패류시장을 철거한 자리에 대규모 회센터가 들어서면서 예스러운 정취는 찾을 수 없게 됐지만, 건물 옆으로 재래시장이 남아 있다. 바구니에 생선을 가지런히 진열한 노점상과 가게가 줄지어 서 있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생선구이집이 여럿 모여 있다. 가게에서 파는 싱싱한 생선을 바로 구워 파니 신선함은 물론 가격도 저렴하다. 자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는 생선에 절로 눈길이 간다. 웬만한 백반 가격에 생선구이와 반찬, 국까지 든든히 먹을 수 있으니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회센터를 통과해 바다를 향해 서면 서쪽으로는 영도대교가, 동쪽으로는 산기슭에 자리한 어촌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광안대교가 개통하기 전만 해도 부산을 대표하는 다리였던 영도대교는 남포동과 영도 사이를 잇기 위해 1934년에 지어졌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이 바다 위에 비친 초승달을 보며 애환을 달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항구에 배가 드나들 수 있게 다리의 일부를 도개식으로 설계해 하루에 여섯 번 다리 상판이 하늘로 치솟는 진풍경을 구경하려고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들었지만, 1966년 다리를 건너는 차량이 많아지면서 도개가 중단됐다. 한때 철거가 논의되었지만 부산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시민들의 바람을 담아, 현재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개식 기능도 복원돼 내년 이맘때쯤이면 어른들에게서 말로만 전해 듣던 영도다리의 장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1 미포항으로 이어지는 언덕 길. 맑은 날에는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2 자갈치시장에서 바라본 어촌마을의 풍경. 성냥갑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정겹다. 3 달맞이길에서 바라본 해운대의 야경. 멀리 광안대교와 동백섬이 바라다보인다. 4 청사포항 근처의 조개구이집. 5 짚불의 순간적인고열을 이용해 굽는 곰장어 구이. 6 자갈치시장의 명물인 생선구이집. 7 송도 해수욕장 주변의 산책로. 해안절벽 사이에 계단이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현재
부산 중구에서의 짧은 역사 여행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해운대 방향으로 향했다. 광안대교를 지나 광안리와 해운대를 거치자 해안가로 이어지는 경사진 길이 나타났다. 철길과 건물들 사이로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해운대>의 촬영 장소였다고 한다. 언덕을 내려가면 배 서너 척이 매어 있는 작은 항구인 미 포항에 닿는다. 항구 근처에 대형 횟집과 식당이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대구탕집이 유명하다. 탱탱한 대구살과 맑고 시원한 국물이 해장용으로 그만이다. 날치알이 톡톡 씹히는 통통한 알말이도 인기다. 미포항과 청사포항을 잇는 달맞이길은 산책로를 따라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해운대와 동백섬은 물론 멀리 광안대교까지 내려다보여 부산의 명소로 꼽힌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해 벚꽃놀이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찬찬히 걸으며 바다구경도 하고, 인근의 갤러리나 카페에 들러 쉬어가기도 좋다. 밤에는 달빛 아래서 해운대의 야경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달맞이길이 끝나는 지점에 청사포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난다. ‘청사포’라는 지명은 어부인 남편을 기다리다 아내가 죽자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용궁으로 데려와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는데, 원래 뱀 사(巳)자를 썼으나 후에 모래 사(沙)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얀 등대와 붉은 등대가 마주하고 있는 청사포는 조개구이로 유명하다.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연탄불에서 구운 싱싱한 조개구이에, 소주 한잔하는 기분이 괜찮다. 조개에 버터와 양파, 고추를 올려 함께 굽는데 버터의 고소한향이 부드러운 관자에 배어들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조개구이만으로는 뭔가 허전해 송정해수욕장 근처의 기장 곰장어집을 찾았다. 기장 곰장어는 살아 있는 곰장어를 짚불에 세 번 굽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맣게 그을린 껍질을 벗기면 탱글탱글한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데, 그 모습이 먹기전에는 조금 비위가 상했지만 기름장에 찍어 한 입맛보는 순간 곰장어의 졸깃졸깃한 식감에 반해버렸다. 첫 맛은 담백하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각종 한약재를 넣어 직접 담근다는 고추양념에 버무린 매콤한 양념구이도 맛있다. 짚불구이에 양념구이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오니 어느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밤이 되자 안개가 더 짙어졌지만, 부산의 야경을 보기 위해 조선시대에 설치된 봉수대가 남아 있는 황령산으로 차를 몰았다. ‘서울에는 남산, 부산에는 황령산’이라는 말처럼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 곳곳에 연인들이 찬 타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길 양 옆으로는 부산의 야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봉수대와 송신탑이 있는 정상에 오르면 멀리 광안대교를 비롯해 부산 시내 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여러 개의 낮은 산이 마을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짙은 안개와 구름에 가려 초점이 흐릿하게 보이는 야경이 오히려 멋스러웠다. 이날의 종착지는 방파제에 둘러싸인 광안리 근처의 산책로였다. 여기서 보는 광안대교의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지인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실제로 조명에 반사돼 황금색으로 빛나는 광안대교의 자태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나 오다이바에서 바라본 레인보 브리지보다 훨씬 우아하고 멋졌다. 해무가 걷히고 안개에 가려졌던 다리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감탄사마저 흘러나왔다. 다음 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송도 해수욕장에 들렀다. 해수욕장 주변해안절벽을 따라 산책로와 해안도로가 만들어져 차를 타고 소나무 숲 사이를 시원하게 달리거나 산책로를 걸으며 항구와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전날보다 파도가 거세진 탓에 산책로를 걷다 커다란 파도가 뒤에서 덮치는 아슬아슬한 경험도 했지만, 서울로 떠나기 전 부산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 하나를 만든 것 같아 되레 웃어 넘겼다. 아쉬운 마음에 창밖을 바라보며 부산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안개가 자욱한 등대섬, 시골집 같던 산동네마을, 위압적인 초고층 아파트, 바다 냄새 나는 시장, 안개와 구름에 뒤덮인 야경까지. 하룻밤 사이에 참 많이 보고, 많이 담았다. 몇 주 뒤면 여름 휴가객이 떠난 황량한 해운대가 영화제부스와 영화 팬들로 북적일 것이다. 부산을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여러 가지 빛깔을 가진 덕분에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부산의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