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요리 만화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본 요리를 눈요기라도 할 수 있어 좋다.

나는 일본 요리 만화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본 요리를 눈요기라도 할 수 있어 좋다. 요즘 즐겨 보는 만화는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이다. 만화에 등장하는 식당은 도쿄 최대의 유흥가인 신주쿠 골목에 있는데,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 문을 열어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한쪽 눈에 칼로 벤 흉터가 있어 인상은 험악하지만 알고 보면 순박하기 그지없는 식당 주인과 손님들이 그 주인공이다. ‘메뉴는 손님이 알아서 주문하면 가능한 한 만들어준다’는 독특한 영업 방침덕분에 매 회 일본 요리 한두 가지와 요리에 얽힌 손님의 사연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진다. 빨간 비엔나 소시지와 계란말이, 카츠동, 고양이맘마, 달걀 샌드위치, 전갱이 튀김, 식은 카레 등 먹음직스러운 일본 가정식 요리가 줄줄이 등장한다. 흑백으로 그렸지만 튀김옷의 바삭함과 비엔나 소시지의 졸깃한 속살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해서 전갱이 튀김을 씹을 때 나는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요리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다. 식당이 유흥가 근처에 있고 새벽에 문을 열다 보니 손님들의 구성이 야쿠자, 게이 영감, 엔카가수, 스트립댄서, 에로배우부터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는 고학생과 퇴근길에 들른 평범한 회사원까지 매우 다양하다. 직업은 물론 식성도, 외모도, 사연도 다 다르지만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다 보면 어느덧 친한 친구처럼 서로 어울리게 되는 것이 심야식당의 매력이다. 서울에도 이런 식당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만화 속 장면을 떠올리던 차에 일본에서 동명의 드라마가 방영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림으로 보고 상상했던 요리의 실제 모습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만화 속 캐릭터에 꼭 맞는 배우가 캐스팅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캐스팅부터 살펴보자면 주인공인 식당 주인 역을 맡은 코바야시 카오루는 까칠한 듯하면서도 속정이 깊은 원작의 캐릭터와 싱크로율 90% 이상이다. 야쿠자 류 역에 캐스팅된 마츠시게 유타카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만족스럽다. 아쉬움이 남는 캐스팅은 스트립댄서인 마릴린 역이다. 원작에서는 나이는 들었지만 농염한 매력을 뿜어내는데, 드라마 속 배우는 어리고 귀여운 인상이라 나이 든 여자의 농염함을 그려내기엔 많이 부족하다. 물론 오다기리 죠에게만큼은 한없이 관대해지지만 말이다. 솔직히 그의 등장은 조금 생뚱맞다. 어쨌든 캐스팅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요리의 비주얼만큼은 원작을 훨씬 뛰어넘는다. 눈도 즐겁지만, 기름에 튀기거나 팬에서 달달 볶을 때 나는 소리가 더 자극적이다.

드라마 <심야식당>을 비롯해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는 줄거리가 탄탄하고, 캐릭터의 개성이 분명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요리 드라마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런치의 여왕>과 아오이 유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오센>, 일본판 <파스타>라 불리는 <밤비노>가 대표적이다. 먼저 2002년 후지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런치의 여왕>은 ‘마카로니’라는 작은 양식당을 배경으로 잔잔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와 사형제가 일하는 식당에 나츠미라는 여자가 들어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형제들과 삼각, 사각, 오각관계를 형성하며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데, 어찌 보면 콩가루집안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순수하고 아름답게 그리고있다. 둘째 아들 역으로 출연한 츠마부키 사토시의 앳된 모습을 만날 수 있어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다. 데미글라스 소스를 뿌린 오므라이스와 햄버그스테이크, 커틀릿, 커리가 자주 등장해 식욕을 자극한다. 200년 전통의 고급 요정이 등장하는 <오센>은 아오이 유우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드라마다. 아오이 유우는 엉뚱하지만 요리에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태어난 요정 여주인 역을 맡았는데, 갸름한 얼굴과 청순한 외모가 기모노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까딱하면 촌스러울 수 있는 2대 8 가르마도, 한쪽으로 쓸어 내린 머리도, 똥머리도 아오이 유우가 하면 청순하거나 사랑스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드라마 속 그녀의 패션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어마어마한 종류의 일본 요리들이다. 흔한 가정식 요리서부터 최고급 요리까지 다양한 일본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 ‘전통을 지키며 정성을 담아 요리해야 한다’는 주제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어 결말에 다다를수록 다소 식상한 감은 있지만 일본 요리에 관심이 많다면 좋아할 만한 작품. 일본판 <꽃보단 남자>의 주인공 츠카사 역의 마츠모토 준이 주연한 <밤비노>는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에 주방이 배경이라는 점 때문에 드라마 <파스타>와 비교되며 화제가 됐지만, 사실 <파스타>보다 3년 먼저 전파를 탔다. <파스타>가 주인공들의 러브 라인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밤비노>는 요리사 지망생의 성장드라마에 가깝다. 요리와 요리사, 손님이 이야기의 중심축인데 ‘드라마라면 모름지기 사랑이야기가 있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맛있는 요리가 매 회 등장하는 요리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눈과 귀로 맛있는 요리를 실컷 요기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무쪼록 <제빵왕 김탁구> 같은 맛있는 드라마가 자주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