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미식가에게 최고의 계절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씨 뿌리고, 무르익는 여름에 재배하고 결실을 거두는 시기가 바로 가을이기 때문이다. 이 가을, 당신의 혀를 춤추게 할 계절의 온갖 진미들.



만약 가을 미식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부터 갈 것인가? 가장 쉬운 선택은 역시 서해안이 아닐까‘. 가을’이라는 말을 성균관 유생의 별호처럼 달고 다니는 전어와 대하가 먼저 물망에 오른다. 만원짜리 몇 장이면 굽고 찌고 삶고 무치고 할 수 있으니, 소수의 마니아들을 거느린 ‘양양 가을 송이’보다 만만하기도 하다.

‘가을 대하’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오는 ‘가을 전어’는, 가을에 맛있는 대표적인 생선 중에 하나다. 얼마나 맛있으면 사람들이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뜻의 ‘전어’라고 이름 붙였을까. 전어는 봄 도다리나 여름 하모와 함께 대표적인 한철 장사 생선이다. 전어가 가을에 유독 인기인 건, 산란기를 지나고 살을 찌운 가을철에 유독 기름기가 올라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데다, 먹기 딱 좋은 크기로 자란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어는 밴댕이 못지않게 성질이 급해서 빨리 죽기 때문에, 산지에서 먹을 때 가장 맛있어서 여행의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한다. 전어를 즐기는 방법 중 최고는 뼈째 썰어 먹는 전어회와 전어구이다. 먹기 좋게 썬 전어회를 깻잎 위에 얹어 된장, 매운 고추, 마늘을 얹어 먹는 야성적인 맛은 고추냉이 발라 간장에 찍어 먹는 생선회를 압도한다. 그래도 미식가들은 여전히 전어구이를 제일로 친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을 직접 검증했던 <무한도전> 박명수도 인정했을 정도로 근사한 냄새를 풍긴다. 꽤 오래 즐길 수 있는 전어회와 달리 전어구이만은 전어철이 시작될 때, 크기가 작다 싶은 전어를 굽는 것이 가장 맛있다. 잘 구운 전어는 정말 ‘꼬숩다’. 전어가 인기를 끌면서 전어를 챙겨 먹는 사람들은 늘었지만, 막상 바닷가에 가면 전어를 마치 조기 발라먹듯 하는 기이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전어구이를 먹는 방법은 붕어빵을 먹는 법과 비슷하다. 로빈슨 크루소나 코난이 된 기분으로 먼저 전어를 손에 턱 쥐고, 머리부터 차례차례 먹어 치워야 한다. 갈치도 아니고, 작은 전어의 머리 떼고, 뼈 바르면 뭐가 남겠는가. 게다가 전어의 고소한 맛은 머리와 내장 맛이 반을 차지하니, 젓가락으로 발라먹는 건 가을 전어에 대한 모독이다. 충남 서천의 홍원항 전어 축제는 10월 2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대하 소금구이만 아는 그대에게

전어 철에서 대하 철로 넘어가면 가을도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신선한 대하의 껍질을 벗겨 회로 먹는 것도 가능한 때다. 머리 떼고, 꼬리 떼고, 껍질을 벗겨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생새우회의 달큼하고 진득한 맛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서해안에서 새우를 먹을 때는 킬로그램으로 주문한다. 알려진 것처럼 수족관에 살아있는 대하는 양식산이 많고, 자연산은 죽어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수족관에서 볼 수 있는 크기의 새우는 ‘중하’다. 20cm가 넘는 진짜 대하들은 소래포구 같은 곳에서도 발품을 좀 팔아야 살 수 있다. 보통 굵은 소금을 깔고 대하를 투척한 후 발갛게 익혀 먹지만, 바닷가에서 만난 대하 파는 아주머니의 말은 조금 달랐다“. 소금 깔고 구우면, 새우의 맛을 소금이 다 가져가. 나한테서 사면 맛있게 구워 먹는 방법을 알려줄게. 새우장을 담가도 맛있고.” 그 말에 홀려 새우를 2킬로그램이나 사고 말았다. 아주머니가 구매에 대한 대가로 전수한 비법을 옮긴다. 먼저 움푹한 팬을 준비해서 약한 불에 달군다. 여기에 생수를 딱 소주 한 잔만큼 붓고, 대하를 올려 뚜껑을 꼭 닫고 굽는다. 대하의 색깔이 2/3 정도로 변했을 때 불을 끄고 뜸을 들인다. 레서피대로 익혀 발개진 새우를 먹자니, 과연! 소금에 올려 새우를 구우면 소금이 새우의 수분까지 뺏어가 새우가 마르고, 너무 익기 십상이다. 먹어야 할 때를 놓친 대하가 오그라들고 쪼그라든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조리법을 따르면 마지막 한 마리까지 촉촉하고 탱글하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바삭한 대하 머리 구이는 포기해야 한다. 대하로 유명한 홍성 남당항 대하 축제는 9월 10일부터 26일까지, 안면도 백사장 대하 축제는 10월 9일까지 열린다. 가을은 어쩔 수 없이 멀리했던 조개류를 다시 만나는 달이다. 생선이야 가을이 더 맛있고, 덜 맛있는 차이뿐이지 독을 품는 경우는 없지만 굴이 나 홍합, 가리비 같은 조개들은 여름을 많이 탄다. 알도 작고, 독성도 품을 뿐 아니라 쉽게 변질되는 까닭에 사계절용 패류인 바지락이나 모시조개 외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 홍합도 독이 있다고 해서 여름엔 잘 먹지 않다가 가을부터 먹는다. 이탈리아식 레스토랑 ‘그랑씨엘’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다시 홍합찜을 시작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 같지 않은데도 맛이 좋다. 토마토 소스나 블루 치즈 소스에 가려진 홍합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들어가는 재료도 거의 없다. 먼저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잘 볶아서 향을 낸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하니까 정성껏 볶는다. 그 다음 신선한 홍합을 투척해 흔들어가면서 익힌다. 홍합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팬 바닥에 뽀얀 물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여기에 생 바질을 찢어서 올린다. 끝이다. 레몬도, 화이트와인도 필요 없는 것!“ 화이트와인을 넣으면 화이트와인 향이 홍합의 맛을 많이 가리거든요. 홍합 자체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 다른 재료를 넣지 않았어요.” 그랑씨엘 이송희 셰프의 말이다. 집에서도 한번 시도해보길. 촉촉하게 익은 홍합을 먼저 쏙쏙 빼먹고 자작한 국물은 홈메이드 빵을 찍어 먹는다. 여름 내내 먹지 못했던 굴을 질리도록 먹고 싶을 땐 천북 굴구이 단지를 추천한다. 생굴은 못 먹고 익힌 굴은 먹는 사람들에게는 딱 좋은 곳이다. 충남 보령시 천북면 바닷가에는 굴구이집 수십 개가 조르륵 늘어서 있는데, 언제인가부터 이곳의 이름이 아예 ‘ 굴구이 단지’가 되어버렸다. 생굴보다는 굴구이가 특히 유명한데, 굴구이를 시키면 먼저 ‘바께스’ 한가득 껍데기 굴을 가져온다. 둘이 먹나 넷이 먹나 무조건 일단 한 바구니다. 먹다 먹다 지쳐서 남기면, 아주머니가 쓱 돌아보고 얼마간 가격을 깎아준다. 불을 피우고 철망을 올려, 껍데기 굴을 올려 익혀 먹는데 조금 입이 벌어지면 다 익은 것. 껍데기를 벌려 꺼내 먹으면 오동통한 굴의 감칠 맛과 바다향이 입안 한가득이다. 진정한 굴 마니아라면 이곳에 갈 때 미리 마트에 들러 레몬 몇 개와 타바스코 소스를 챙겨 가길. 굴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초장보다는 역시 레몬즙이 낫기 때문이다. 신나게 레몬을 뿌려 굴을 구워 먹다 보면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며, 주인아주머니가 제대로 먹을 줄 안다며 가리비도 몇 개 갖다 주는 덤도 누릴 수 있다. 직접 담가서 파는 굴젓도 동네보단 훨씬 저렴하다.

가지 싫어하는 사람도 유혹하는 가지 요리

옆 나라 일본에서는 가을이면 가지를 굽는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가을가지는 며느리에게 안 준다”라는 속담도 있다. 여기에 대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짐작 그대로 너무 맛있어서 며느리 주기 샘 나서. 두번째 이유는 씨가 없는 까닭에 자손을 보지 못할까봐. 만화 <심야식당>에는 가지를 안 주겠다는 시어머니 말에 토라져 가출한 며느리가 매일매일 가지를 구워 먹고, 튀겨 먹고, 볶아 먹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을 가지는 떫은 맛이 적으면서도 부드럽고 맛있어서“, 가을 아욱은 계집 내쫓고 먹는다”는 아욱과“, 가을 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상추와 함께 가을에 최고 맛있는 채소다. 그러나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많다. 유희열도 자신의 책에서 형광 보라색인 채소를 어떻게 먹냐며, 가지를 타박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가지 요리는 삶아서 무치거나 냉채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지 요리법은 그릴에 잘 구운 서양식 요리나, 어향소스에 볶은 중국식 요리가 더 낫다. 가지는 스펀지 조직처럼 소스와 기름기를 흡수하기에 소스와 함께 조리하면 맛있다. 브런치로 유명한 ‘마이쏭’에서는 어린 시절 손가락만큼 자란 가지를 따 먹던 맛을 잊지 못한 셰프가 가지 오믈렛을 만들어 준다. 가지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가지 소테를 만들어야 한다. 씹는 맛이 나도록 가지와 양파를 듬성듬성 썰고 홈메이드 토마토 소스에 살짝 볶아둔다. 여기에 슬라이스한 검은 올리브와 케이퍼를 넣으면 이국적인 향이 더해진다. 이렇게 만든 소테를 몇 시간 정도 더 재워두면 가지와 토마토 소스, 다른 재료들이 혼연일체가 된다. 오믈렛을 즐기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사 먹는 오믈렛이라면 그 맛을 설명할 수 있을까? 셰프를 졸라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소테를 한 스푼 떠 먹어봤다. 아무것도 안 바른 바케트 빵에 올리면 열두개쯤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은 맛이다.

서두르세요, 가을 한정!

일본 사람들이 즐기는 또 다른 가을 별미는 가을 한정 사케다. 가을에 첫선을 보이는 포도주 보졸레 누보처럼, 일본에서는 가을이면 ‘ 히야오로시’를 마신다. 겨울에 만든 술을 봄과 여름 내내 숙성시켜 가을에 마시는 술이다. 열 처리를 하지 않는 이 사케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이는 대신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견디게 한다. 그렇게 자연 숙성으로 완성된 사케는 더욱 부드럽고 참한 향을 자랑하게 되는데,이 과정을 거쳐 가을에 선보이는 사케를 통틀어 ‘히야오로시’라고 부른다. 늦가을부터 마시기 시작해 겨울이 끝나기 전에 동이 나는, 계절의 별미다. 저장하면서 발생하는 풍미를 그대로 간직해, 마치 양조장에서 마시는 것처럼 신선하고 그윽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출시 후에는 늘 냉장 보관해야 하는 까다로운 존재지만, 까다롭게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달까. 가을이면 중국에서는 게를 먹기 위해 안달을 한다. 9월부터 11월까지 선보이는 상하이게가 그것. 이때가 되면 홍콩, 상하이, 베이징 등의 레스토랑 대문은 일제히 손발 꽁꽁 묶인 상하이게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거리에서 마주치는 생선 가게에도 상하이게가 귀빈 대접을 받고 있다.이 상하이게의 수급은 중국인에게 민감한 문제다. 인기는 많은 반면 공급은 줄고 있어, 상하이게 중에서도 제일로 치는 양 칭호 출신 상하이게는 일련번호까지 입력된다. 과거 20세기 초에는, 삼합회가 이 상하이게를 두고 전쟁을 벌인 일도 있다. 호수에 사는 민물게로, 다리에 털이 보송보송 나 있고, 각진 몸통을 가진 상하이게는 대게를 쪄 먹듯이 그냥 쪄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중국에서 상하이게를 주문하면 설탕을 넣어 단맛이 도는 붉은 식초나 검은 식초를 가져온다. 다른 게보다 훨씬 진한 맛을 자랑하기에 먹다 보면 입맛이 뻣뻣할 때가 있는데, 식초를 곁들여 먹어야 입안이 부드러워지고, 게맛은 더 달아지고, 진한 상하이게의 묘미를 끝까지 누릴 수 있다. 특히 상하이게 알은 별미로 쳐서, 고급 딤섬 등에 사용한다. 재료의 고유의 맛을 살리는 게 특징인 광둥요리도 가을에 가장 빛난다. 우리나라의 정통 광둥요리 전문점인 ‘홍연’에서는 다양한 가을 진미를 선보인다. 정수주 셰프는 말한다“. 여름 동안 다른 재료에 밀린 해산물이 일제히 맛을 내기 시작합니다. 생물 해삼, 키조개와 같은 조개류, 새우, 송이버섯이 아주 맛이 좋아집니다. 광둥요리는 튀기거나 볶는 대신 찌거나 굽는 방식으로 재료의 맛을 이끌어냅니다.” 하늘은 높고, 말을 살찌고, 미식가도 살찌는 계절. 가을은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