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책 냈니?” 새롭게 도착한 신간을 확인하던 나는 도저히 책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한숨을 쉬었다.

책이 안팔리는 세상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유명인들의 여행 에세이. 괜찮은 작품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함량 미달인 경우가 많다.

“너도 책 냈니?” 새롭게 도착한 신간을 확인하던 나는 도저히 책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한숨을 쉬었다. 옆자리에 앉은 후배가 책의 저자를 확인하더니 웃으며 한마디 툭 던진다. “요즘은 책 한 권 안 쓰면 ‘쪼끔’ 불행한 건가 봐요.” 잘나가는 친구가 책을 내서 배가 아픈 거냐고? 내가 한숨을 쉰 건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아나는 바오밥 나무처럼 자꾸만 출간되는 ‘OOO의 여행 에세이’ 나부랭이가 한 달에도 몇 권씩 편집부로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그 책의 저자들은 대개 여행 전문작가가 아닌, 문화면보다 가십란에 더 어울릴 만한 치들이다. 책의 내용? 당연히 없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며 쓸 만한 여행 정보도 찾아보기 힘들다. 소형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는지 화질도 작품성도 낮은 사진이 반, 한글인 건 분명한데 도무지 앞뒤가 안 맞아 이해하기 힘든 허세 젖은 감상이 반. 그나마도 글 쓰는 게 고되셨는지 글보다 여백이 더 많다. 이쯤에서 책 담당 기자로서 양심 고백 하나. 이런 류의 신간은 내 손에 들어오면 일반인이 썼든, 유명인이 썼든, 혹은 3년 전에 외국으로 떠난 이래 전화 한 통 없다가 갑자기 연락 온 친구가 썼든 곧장 다른 곳으로 버려진다. 기껏해야 한 달에 대여섯 권밖에 안 들어가는 <얼루어>의 신간 칼럼에 그들의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아서다.

놀라운 건, 서점에 가면 이런 책들이 가판대에 떡 하니 ‘잘’ 전시된다는 사실이다. 간혹 유명인이 썼을 경우 사인회라도 열면 구름같이 독자들이 몰려올 테고, 덕분에 홍보도 되고 책도 팔리니 서점은 손해 볼 게 없다. 문제는 애초에 왜 이런 책을 만들었느냐 하는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독자들의 잘못이 크다. 학계 인사들이 인문학이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할 만큼 순수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웬만한 정보는 조금만 웹서핑을 해도 누구든 찾아낼 수 있는 세상이 된 탓에 책 판매량이 크게 하락하면서 출판업자들은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해야 했다. 가볍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하고, 책을 거의 사지 않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진지하고 심도 깊은 내용의 책보다는 캐주얼한 책이 적격이라 판단했을 것이고, 그중 판매량을 가장 그럴싸하게 보장해줄 만한 것이 셀러브리티와 여행 에세이의 조합이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그런데 이 에세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꼭 여중생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연습장에서 보았을 법한 수준의 사진과 글이 실려 있다. 내 눈에는 한없이 유치해 보이는 책이 젊고 순수한 누군가에게는 공감 백 배라도 되는 것일까. 어쨌거나 출판사는 여행 에세이로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렸고 ‘딴따라’에서 ‘작가’로 신분 상승하고픈 셀럽들이 너도나도 책을 쓰기 시작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마당에, 딱히 전문가가 아니라도 아무나 여행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여행 에세이를 핑계로 해외에 갈 구실을 만드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소설가, 방송 작가, 블로거 할 것 없이 한 번이라도 물 건너 나갔다 오면 봇물처럼 여행 에세이를 써대는 통에, 서점에 가면 여행 에세이 가판대가 지하철 속 엉덩이 큰 아줌마처럼 온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아 있는 꼴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감히 단언컨대 그중 절반 이상이 ‘책’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책들이다. 네이버 검색등록 담당자가 봤다면, ‘정보성 콘텐츠 부족’이라는 도장을 꽝 하고 찍어줬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출간된 셀럽들의 책 중에는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작품도 여럿 있었다. 차인표의 <잘가요 언덕>, 김창완의 <사일런트 머신, 길자>, 게키단 히토리의 <소리 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가 그랬다.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과 한지혜의 <마이 페어 레이디> 역시 몇 번이고 직접 쓴 게 맞냐고 물었을 정도로 훌륭했다. 나는 엄숙주의자가 아니다. 이상이나 헤밍웨이처럼 신의 가호를 받은 천재만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이 인문학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돈을 지불하고 구입해야 하는 ‘상품’으로서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책만 출판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업 작가가 아닌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이 책을 쓰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덕이 아니던가. 하지만, 매달 수십여 권의 신간을 검토하고 옥석을 가려야 하는 책 칼럼 담당 기자로서 부탁한다. 다들 일기는 일기장에 쓰고, 어설픈 여행 에세이는 그만 좀 내라. 김영주, 서명숙, 김남희만큼 쓸 자신이 없으면 여행 에세이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 일생의 추억으로 한 번쯤 책을 써서 간직하고 싶다면 조용히 소량으로 찍어서 친구나 가족들하고만 나눠 가지면 될 일이다. 괜히 홍보비 들여가며 대대적으로 판매해서 신간 가판대 앞에서 “부르투스, 너마저!” 하고 탄식하게 만들지 말아달란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