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고, 이른 아침이면 물기를 촉촉이 머금은 풀내음이 사방으로 퍼지는 마당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마당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죽이 잘 맞는 친구이자 일상이다.

1 효자동에 자리한 이탈리아식 레스토랑‘ 카델루포’의 마당. 단아한 한옥에 어울리는 야생화가 가득하다.  여름이면 포도덩굴에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열린다. 2 레스토랑‘ 젠 하이드 어웨이’의 정원. 실내 연못에는 다양한 수경식물이 싱그러운 빛을 뿜어내고 잉어와 금붕어도 자란다.

어릴 적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의 마당을 본 적이 있다. 마당 한쪽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는데 가지와 잎이 어찌나 무성한지 나무 그림자가 마당 전체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대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넙적한 돌계단 둘레에는 손톱보다 작은 노란 꽃이 자라고 있었다. 그 집에 다녀온 뒤로 매일같이 그런 집으로 이사를 가자며 떼를 쓰는 철부지 딸을 아버지는 스티로폼 상자에 심은 오이 모종으로 달랬다. 노란 꽃이 피었다 지고 난 자리에 새끼손가락만한 오이가 열렸는데 도통 자랄 생각을 안 하고 잎까지 누렇게 변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파트 화단에 옮겨 심고 매일같이 보살폈는데, 오이가 금세 애호박만 하게 자랐다. 식물을 기르는 기쁨을 처음 맛보아서일까? 지금도 꽃과 풀을 유독 좋아한다. 도시에서 아스팔트만 밟으며 자란 사람과 어려서 흙을 밟고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커서도 자연을 대하는 감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말린 꽃잎과 풀잎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백은하 작가도 마흔여섯 가지 꽃이 피던 춘천 고향집 마당에서 아버지가 들려준 꽃 이야기, 풀 이야기가 아버지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맺었던 꽃과의 인연으로 ‘꽃잎작가’가 된 그녀의 삶은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서울에서는 흙 냄새, 풀 냄새 한번 맡으려면 큰맘 먹고 산이나 공원을 찾아야 한다. 흙이 숨쉬지 않으니 꽃과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꽃과 나무가 없으니 새들도 찾아 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 아침 잠을 깨우던 참새 소리를 요즘은 통 들을 수가 없다. 공해와 소음에 코와 귀를 막고 사는 탓에 감각은 점점 더 무뎌진다. 실제로 서울의 마당 있는 집을 찾아 다니면서 아파트에 살다 마당 있는 집으로 옮기면서 자연의 소리와 향기에 눈뜨게 됐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듣기도했다. 부암동에 마당 딸린 집을 마련하고, 정원을 가꾸며 사는 소소한 일상을 담아 <마당의 순례자>라는 책을 펴낸 서화숙 씨는 ‘마당이 있다는것은 수많은 향기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 적었다. 수선화는 맑고 달콤한 향을 지녔고, 밤 붓꽃에서는 초콜릿 향이 난다는 건 매일같이 보살피고, 애정과 관심을 쏟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쏟아지는 빗줄기도 반가운 손님이다. 그녀는 비 오는 날의 정원을 ‘소리의 정원’이라 부른다. “감나무처럼 두꺼운 잎은 소고를 두드리는 통토동 소리가 나고 살구나무처럼 얇은 잎은 싸락눈 내리는 듯한 사스슥 소리가 나요.” 봄부터 늦여름에는 하루 사이에도 마당 여기저기서 새로운 꽃들이 피어난다. 아침마다 마당을 찬찬히 거닐며 밤새 통통하게 여문 꽃봉오리를 살피는 일도 큰 즐거움이다. 근심거리가 있을 때도 마당은 가장 편안한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말은 안 해도 눈빛만으로 진심이 통하는 듬직한 친구 같다. 마당에 나와 호미질을 열심히 하다 보면 고민거리를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고. 정원을 가꾸면서 사람 사는 이치에 대한 귀중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3 담쟁이덩굴이 풍성하게 자라 고즈넉한 정취가 묻어나는 목인박물관의 마당. 4, 5, 6, 7 서화숙 씨의 마당은 ‘시골집’ 마당처럼 따스한 정이 느껴진다. 뒷마당에는 토마토가 자라고, 해마다 발갛게 익은 살구가 주렁주렁 열린다. 다홍빛 꽃이 피는 명자나무는 새들의 쉼터다.

효자동에 자리한 한옥에서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손수 마당을 가꾸는 유승희 대표는 마당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사색에 잠기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꽃을 옮겨 심거나 가지 하나를 자를 때도 조심 또 조심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진단다. 계절마다 매화, 능수화, 들국화가 피어나고, 포도덩굴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지만, 4년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대나무도 심어보고, 화려한 꽃도 심었지만 마음같이 되질 않았어요. 가드닝 책을 뒤지고, 연구한 끝에 한옥에는 야생화가 가장 어울린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결국 마당을 가꾸는 일도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야 꽃도 피고 열매도 맺히니까요.” 마당을 가꾸다 보면 공들여 심은 꽃이시들어 죽기도 하고, 심지도 않은 꽃을 보게 되거나, 새들의 배설물에 묻어온 씨앗이 싹을 틔워 심지도 않은 열매를 맛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손대지 않고 내버려둔 덕에 오히려 개성 있는 정원이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인사동의 목인박물관은 1955년도에 지어진 목조건물의 외벽을 타고 담쟁이덩굴이 풍성하게 자란 덕분에 고즈넉한 정취가 묻어났다. 무성하게 자란 풀섶 사이로는 동자석의 모습도 보였다. 실내 공간에 흙 대신물을 이용한 정원도 있다. 발리의 리조트를 테마로 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박순철 대표는 레스토랑 정중앙에 커다란 수조를 세우고, 실내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에는 싱고니움, 파피루스, 물수선화, 연꽃, 부레옥잠 같은 수경식물이 가득하고 잉어와 금붕어가 자란다. 수경식물은 마사토와 물을 채운 그릇에 뿌리째 담그기만 하면 별다른 관리 없이도 잘 자라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미니 연못을 만들 수 있고, 실내에서 기르면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볼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화작가이자 가드너였던 타사 튜더는 미국 버몬트 주시골에 살며 평생 수만 평에 이르는 정원을 가꾸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감히 따라 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구획을 일일이 나눠 크고 화려한 꽃을 심은 빈틈 없는 정원보다는, 잘디잔 꽃들이 무리지어 피고 이를 모를 야생화가 여기저기 피어 있는 ‘시골집’ 마당에 정이 간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호미질하고, 못 보던 꽃이나 풀이 자라도 ‘잘 왔다’ 반기는, 빈틈 있는 정원이 좋다. 마당은 제주인을 닮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