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미스 사이공>으로 ‘김보경’ 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린 그녀는 깊어진 감정과 더 섬세해진 목소리로 더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무대에서 크리스(마이클 리)와 애틋한 사랑의 눈길을 주고 받는 킴(김보경).

먼저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해요. 수상 소감으로 어떤 얘기를 했나요?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멋진 소감을 준비하진 못했어요“. 열정을 잃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부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던 것 같네요.

공부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타고난 재능과 노력 중 어느 것이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나요?
춤과 노래 실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긴 했지만 재능을 찾아서 키우려고 했던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그저 춤 좀 추고, 노래 좀 하는 사람으로 남았을 거예요. 중학교 때까지 발레를 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연극부에서 안무를 맡으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대에 서는 것도 좋고, 노래도 좋고, 춤도 좋으니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려면 뮤지컬 배우밖에는 답이 없더라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창력이 중요할 것 같아 성악을 전공했고요.

노력을 많이 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드네요. 초연 이후 4년 만에 무대에 설 때도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때보다 배우들과의 호흡도 감정 표현도 훨씬 수월해졌어요. 주변에서 감정이 깊어졌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있어요. 초연 때는 아무래도 연출가의 지도에 따라 주어진 연기를 했다면 지금은 킴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 집중해요.

연습 때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매일매일을 킴의 슬픔과 고통을 똑같이 느끼며 사는 게 힘들지 않나요?
초연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연습이 끝나고 집에 와도 킴의 감정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해서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연습 기간 때부터 킴과 김보경을 분리하려고 노력했어요. 지금도 노력 중이고요. 함께 일하는 배우들이 많은 힘이 돼요.

크리스 역을 맡은 마이클 리나 이건명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건명 씨가 책임감이 강한 크리스라면 마이클은 연인 같아요. 초연 때 함께 무대에 섰기 때문에 무대에서 서로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아차릴 정도가 됐죠.

킴이 부르는 뮤지컬 넘버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들려줄 수 있나요?
“날이 밝아와요. 어둠 이제 끝난 거야. 그댄 여기 곁에 있어. 이제 나는 울지 않아. 다시 태어난 사랑.” 킴이 3년 만에 크리스와의 만남을 앞두고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를 꺼내 입으며 행복감에 젖어 부르는 노래예요. 하지만 관객들은 킴의 앞날이 그녀의 바람처럼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죠. 그래서 이 장면을 연기할 땐 객석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요.

무대에서 객석의 반응을 살피는 편인가요?
관객과의 소통은 무대에 서는 배우라면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할 거예요. 관객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끼면 감정에 더 몰입하게 되죠.

7년간의 뮤지컬 인생에서 정점을 찍게 한 작품은?
물론 <미스 사이공>이죠. 앙상블과 조연을 맡았던 신인이나 다름없는 저의 이름을 관객에게 알렸고, 과분한 상까지 받게 해주었으니까요.

뮤지컬 배우로서 스스로의 가장 큰 매력을 뭐라고 생각해요?
사실 사람들이“김보경 씨는 특이한 목소리가 오히려 매력이에요”라고 말해주기 전까진 제 목소리가 특별히 다르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 이제는 제 목소리를 사랑해요. 이 목소리 때문에 킴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목소리와 외모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감사한 일이고요.

뮤지컬 배우 중 롤 모델로 삼는 배우는 누군가요?
뮤지컬 배우를 처음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 전수경 씨, 최정원 씨, 김선영 씨를 존경했어요. 당시에는 배우로서 존경했지만, 연습실이나 무대에서 후배들도 살뜰히 챙기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 연기 외에도 본받고 싶은 게 많아요.

킴의 인상이 강해서인지 내면의 감정을 짙게 표현하는 역할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맘마미아!>에서 밝고 활발한 역을 맡았을 때 원래 성격과 비슷해서 즐겁게 했어요. 하지만 배우라면 자신의 성향과 관계없이 어떤 인물이든, 어떤 감정이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 누구나 행복하고 즐겁다가도 가슴 한 켠에는 슬픔이나 한을 간직하고 있잖아요. 배우가 다른 점이 있다면 감정을 좀 더 깊게 느낀다는 거겠죠.

10년 뒤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무대나 연습실에 있으면 좋겠네요. 저에게 어울리고 잘할 수 있는 역이라면 그게 앙상블이든, 조연이든, 주연이든 상관없이 행복하게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