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버는 사람만 하는 거라는 착각, 쓰고 싶을 때 못 쓰면 어떡하냐는 만용,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태만이 날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남 얘기 같은 재태크의 귀재들이 아닌, ‘보통의 여자’에게 들어본 재테크의 실현 가능한 법칙.



망했다. 엄마가 드디어 집에서 나가라는 선전포고를 했다. 나이 서른이면 나가야 되는 거란다. 다른 엄마들은 옆에 끼고 살고 싶어서 시집 보낼때도 운다는데 엄마는 계모 아니냐는 항변도, 뉴스에 나오는 흉흉한 범죄들은 혼자 사는 여자에게 많이 일어나지 않느냐는 협박도,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눈물 어린 호소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엄마는 요지부동이고 아빠는 웃기만 했다. 폭염도 엄동설한도 아닌 꽃피는 내년봄에 쫓아내겠다는 게 엄마의 마지막 배려라나. 현실의 심각함을 깨닫고수중의 돈을 계산해봤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월세는 그렇다 쳐도 보증금은 어쩌지? 이럴 때를 대비해 돈 좀 모아놨어야 했는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친구들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따뜻한 위로가 돌아올 줄 알았다.그러나“너 연차 좀 되지 않아? 그동안 일하면서 돈도 안 모으고 뭐했어?”라고 되묻는 그들은 엄마 편이거나 엄마 친구 딸이 분명했다. 하지만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테크, 나만 안 하고 있었다!

<혼자 밥 먹지 마라>라는 책이 있다. 혼자 밥 먹으면 영양상, 정신건강상안 좋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을 법하지만, 그 책의 주제는 밥을 먹는 일상적인 행위를 자기 계발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들의 인생 노하우를 얻고 인맥도 쌓으라는 것. 재테크 전문 서적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남 얘기 같고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나는, 점심시간을 재테크 노하우를 얻는 데 쓰기로 했다. 억대 연봉도 아니고, 안 먹고 안 써서 1억을 모았다는 슈퍼우먼도 아닌 내 친구, 내 동료와 같은 보통의 여자들의 노하우. 나는 당장 홀홀 단신 처녀가장이 될 참이었고, 그들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비장한 각오를 마음에 새겼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밥은 내가 사기로 했다.

첫 번째 식사, 적금 붓는 여자
그녀는 눈웃음이 선한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의 직장이 있는 미국에서 신혼살림을 꾸릴 예정이었다. 결혼과 이민이 겹친 셈이니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바빴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에게 청첩장을 주기 위해 찾아온 의리파. 금융권에서 일한 지 5년 만에 저축액이 8천만원에 육박한다는 그녀였기 때문에 마침 잘되었다 싶었다. 드레스 얘기, 신랑 얘기, 신혼여행 얘기를 끝으로 나는 슬슬 본론을 꺼냈다. 그녀가 친구들 사이에서‘ 저축의 여왕’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적금이 최고야.” 비결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그녀가 금융권에서 일한 것은 아니었다.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일한 2년 동안에는 저축은커녕 빚 없는 게 다행이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버는 족족 썼을걸. 옷도 사고 해외여행도 갔으니까. 일 스트레스를 풀려고 소비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 여기까지 스토리는 나와 똑같았다. 하긴, 그녀와 함께하와이로 여름휴가를 떠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동일한 노선을 걷던 그녀와 내가 결정적으로 달라진 계기를 추척해보니‘ 이직’이었다. 보다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외국계 금융권으로 이직을 했다. 처음에는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다음 해에 정직원이 된 그녀의 성공 스토리는 한동안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금융권의 알뜰한 분위기가 재테크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걸,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이직하고 몇 달 후부터 월급의 절반을 적금을 부었어. 우리 부서는 다들 그런 분위기였어. 점심을 먹을 때도 재테크 이야기만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이자를 많이 받기 위해서 제2금융권의 적금을 들었어. 사람들은 불안하게 생각하지만 예금자 보호를 해주니까 걱정 없어.”처음에는 펀드에도 손을 댔다. 하지만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예금이반 토막이 나자 아까워서 며칠 잠을 못 이뤘다고. 그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오직 적금’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1년 혹은 2년 만기의 적금을 넣고,그 만기가 되면 넣고 싶을 땐 넣어도 찾고 싶을 땐 찾기 힘는 통장으로 옮겼다. 금융권의 특권인 야근수당, 인센티브와 보너스도 이어졌다. 그 돈 역시 예금통장으로 직행. 그 과정을 반복했더니 어느새 8천만원의 돈이 모였다. 월급의 반을 저축한다는 사람이 설마 내 친구일 줄이야.
“금융권에서 일한 다음부터는 20만원 넘는 건 손이 떨려서 못 사겠어. 은행에서 일하면 어떤 줄 알아? 당장 1백만원이 없는 사람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줄을 서는 모습을 매일 봐. 은행은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과 가장 돈이 없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니까.” 쓰고 남은 돈을 넣는 게 아니라 적금 넣고 남은 돈만 쓴다는 생각이 적금 재테크의 기본이다. 예기치 못한돈이 생겨도 넣고, 쓰고 남은 돈도 넣기. 그래서 적금으로 재테크를 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절약이다. 하지만 잡지 에디터는 소비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두 번째 식사, 주식사는 여자
“적금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어.” 식품회사의 마케터로 일하는 그녀는 시저 샐러드를 아삭아삭 씹으며 명쾌하게 말했다“. 요즘 금리가 몇이지?5%는 되나? 우리가 아는 어떤 재테크도 그보다는 수익성이 좋아. 돈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적금은 부을 이유가 없어.”
그녀는 오직 주식으로만 재테크를 한다. 몇 백으로 소박하게 시작했던 투자금은 4천만원까지 늘어났다. 주식은 곧 고스톱과 같은 투기라고 생각하는 나는 조금 겁이 났다. 주식을 해서 혼쭐난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에도 있었다. 바로 아빠!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때 아빠도 나처럼 집에서 쫓겨날 뻔했던 것이다. 그런데 겁도 없이 그 위험한 주식을 하다니.
“우리가 아는 회사들 있지? 그런 회사를 사면 절대로 손해는 보지 않아.”그러다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하나? 나의 소심한 질문에 그녀는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회사야. 물론 그런 회사도 도산할 수 있지. 그럼 주식 가격이 폭락할 거야. 하지만‘이름을 들어본 회사’라면 누군가는 꼭 그 회사를 인수하게 되어 있어. 그럼 그 주식은 다시 올라. 휴지조각이 되는 일은 없어. 날 믿어도 좋아.”왜 주식을 하는가? 그녀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돈을 모으려고 재테크를 하는 게 아냐. 돈을 쓰려고 재테크를 하는 거야.” 솔깃했다.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쓰려고 재테크를 한다?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여자들을 위한 재테크가 정말 있을까?
그녀가 되려 내게 물었다“. 왜 재테크를 안 해?” 난 지각해서 선생님께 혼나는 학생처럼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니까. 그리고 내가 꼭 갖고 싶은 게 생겼는데, 꼭 여행을 가고 싶은데 돈이 죄다 묶여 있으면 어떡해. 그녀는 또박또박‘ 내가 재테크를 안 하는 이유’를‘해야 할 이유’로 바꿔나갔다“. 나도 마찬가지야. 돈을 많이 벌지 못하니까 내가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해. 매달 월급만 쓰고 산다면, 생활비다 뭐다 너무 빠듯했을 거야. 하지만 주식을 한 다음부터는 월급에 더해서 용돈이 생기는 기분이거든. 사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그때 주식을 매각하면 금방 돈이 생기지. 단, 주식 등락에 일희일비하게 되면 결국 돈을 잃어. 대범하게 멀리 보는 게 중요해. 그리고 매일 신문을 봐야 해. 특히 북한 관련 이슈를 눈여겨보도록 해.” 북한과 관련된 이슈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큰손은 외국인 투자자가 된 지 오래. 그들은 우리나라에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미사일이 터진다거나 북한이 우리나라와 대립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주식을 매각하기 시작하고 주가는 급락한다“. 지난번 미사일 이슈 때 오전 주식시장은 처참했어. 사람들이 매도할 때 나는 거꾸로 샀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오후가 되니까 산 가격의 두 배가 되던 걸! 덕분에 난 밀라노에 다녀왔지.”그녀는 호쾌하게 말했다“.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난 잘 계산이 안 돼. 버는 족족 다 써버렸거든!”

세 번째 식사, 펀드 하는 여자
세 번째로 만난 그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학교에서 배운건 실전에서 하등 쓸모가 없었다면서 고개를 젓긴 했지만“. 적금은 지루하고, 주식은 머리 아파. 그래서 난 펀드를 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펀드. 한때 펀드는 평범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재테크의 신화적 존재였다. 펀드에 넣었더니 두 배가 되었다는 말은 적금만드는 거북이를 약 올리며 냅다 달려나가는 토끼 같았다. 물론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펀드 반 토막 났다는 말이 인사처럼 되었었고, 화병으로 술을 마시다 술병까지 얻는 재테크 폐인도 속출했다. 다리에 쥐가 나서 엉엉 우는 토끼를 보면서 거북이들은 쾌재를 불렀다“. 그때 판매한 사람들은 물론 손해를 봤겠지. 하지만 너무 억울해서 팔지도 못한 사람들은 이미 원금 회복을 했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은행 이자보다는 훨씬 더 벌었어.”
펀드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이 나면 적금 이자보다 훨씬 높다. 펀드를 하지 않는 이유도 간단하다. 원금 보전이 안 된다는 위험성이다“. 처음에는 매달 80만원씩 적금을 넣을 생각이었는데, 은행 직원이 그 중 일부는 펀드에 넣는 게 어떠냐고 권했어. 월 30만원이면 손해를 봐도 울진 않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펀드에 가입했는데 10개월 후에 원금에 이자가16%나 붙었더라고!” 횡재한 기분으로 펀드를 환매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펀드는 장기 보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수익이 10%만 넘으면 팔곤 했는데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20%도 훌쩍 넘었을 상황이 대부분이었어. 펀드 재테크는 인내심이 필요해. 특히 큰 액수가 아니라 월급의 일부를 넣어야 하는 적립식 펀드는 적어도 3년은 가지고 있어야 해.” 그렇다면 어떤 펀드를 사야 할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 흔한 CMA 통장 하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경제학 전공이어도 나도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은행 직원의 말을 신뢰해. 적어도 나보다 흐름을 읽고, 대비를 하고, 교육을 받고 있을 테니까.” 그녀의 조언은 회사의 주거래 은행을 이용하라는 것“. 사원증을 잘 보이게 걸고 그 은행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 가까운 은행이면 오가며 마주칠 수도 있는 데다 주변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결 더 신경을 써줄 거야. 펀드가 곤두박질쳤을 때 더 이상 손해 볼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팔겠다고 난동을 부린적이 있는데, 담당 직원이 자기 믿고 좀 더 가지고 있으라고 달래더라고. 결국 그 조언이 옳았어.”
또 한번의 점심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잘 모르겠으면 무조건 상담하고, 되도록 우량주 펀드를 사. 3년 이상 된 펀드 중에서 추천을 받아. 어차피 너는 소심해서 모험적인 펀드는 못할 거야. 그거 알아? 결국 재테크는 자기 성격대로 하게 돼 있어.” 그녀는 펀드 재테크의 트로피나 다름없는 빨간색미니에 몸을 실으며 말했다“. 정말 독립하게 되면 보증금이다 월세다 고민하지 말고 부모님께 돈을 빌리고 대신 이자를 드리는 게 나아! 너, 세상에서 월세 내는 돈이 가장 아깝다는 거 알게 될 거다. 그 돈으로 펀드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