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를 보양식으로만 먹으면 정말 힘이 펄펄 날까? 밖은 너무나 덥고, 실내 에어컨은 너무나 추운 탓인지 마침 여름 감기라도 든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했다. 보양식이 필요했다.




아침 : 전복죽


건강에 관한 관심만 따지자면 대한민국은 세계 1%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식약동원,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다는 한의학의 정신을 우리나라사람들은 다 안다. 돼지고기는 성질이 차고, 양고기는 뜨겁다는 전문 지식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을 보면 명사에 이건 여자, 이건 남자 식으로 성별을 부여한 프랑스 사람들보다 신기해 보인다. 같이 먹으면 좋은 음식,같이 먹으면 좋지 않은 음식, 이 계절에 먹어야 할 것들에 대한 말들 속에서 여름 내내 먹어야 하는 ‘보양식’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요즘이다. 보양식의 생체실험자를 자청한 날. 아침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보양식은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오래오래 우려서 진액까지 뽑아담은 후끈후끈한 탕 요리가 많다. 하지만 아침부터 쇠꼬리를 고아 먹을수도 없는 일. 아침 식사로 적합한 보양식이 있을까, 의문을 갖는 순간 번개처럼 전복이 떠올랐다. 회로도 먹고, 구워도 먹는 전복이지만 전복은 전복죽일 때 가장 보양식의 성격을 띤다. 큰 병원 근처에는 죽집이 있고,그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것도 전복죽이다. 해삼을 제치고 바다의 웅담으로 불리는 전복이 아닌가.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은 전복을 가장 귀한 재료로 생각해서 찾아온 손님에게 전복 요리를 대접하고, 집안곳곳을 껍질로 장식했다. 불로장생약을 찾아 세계를 떠돈 진시황의 리스트에도 이 전복이 있었다. 전복은 크기가 클수록 비싸다. 손바닥보다 더 큰 전복 6개의 가격이 50만원을 훌쩍 뛰어넘기도 할 정도다. 하지만 죽 끓여 먹을 때는 크기가 작아도 신선한 전복이면 충분하다. 이때 필수는 전복 내장을 넣어야 한다는것! 전복죽의 고수들은 전복죽의 색깔만 봐도 표정이 바뀐다. 노란색이 돌면 시큰둥하고 매생이라도 푼 것처럼 초록색이 돌아야 반갑다. 전복의 내장을 말하는 ‘게우’가 많이 들어갈수록 색이 진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완도 등 전복이 많이 나는 곳에서는 이 게우로 젓갈을 담그지만 소량생산에 가격이 비싸 시중에서는 보기 힘들다. 언제인가 신선한 전복 내장을 기름장에 찍어 먹은 뒤로는 마니아가 되었다. 신선한 내장은 응축된 바다 맛이 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비리다며 입에도 안 댄다. 전복죽에 내장이 들어갈수록 진하고 비린 맛이 나는 건 사실.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있기 때문에 향토음식점이 아닌 서울의 식당들은 살짝 색과 향만낼 정도로만 내장을 쓴다. 하지만 보양식이 필요한 지금은 전복살, 전복내장을 듬뿍 넣어서 끓여야 옳다. 집에서 전복죽 한 그릇을 끓여보면 우리가 사 먹는 전복죽에 전복이 얼마나 조금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전복죽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낫다. 한번 해보길! 전복 한 개와 참기름, 찬밥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게 전복죽이다.

체감 보양 효과 30%
전복까진 좋았는데 죽 먹고 무슨 힘을 쓰냐는 어른들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아침으로 제격이다.__




점심 : 삼계탕


닭은 가장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특히 올 여름은 닭의 수난시대다. 가뜩이나 여름이 되면 삼계탕을 많이 먹는 데다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겹쳐서 치킨 소비량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날이면 치킨집마다 적어도 500마리의 치킨을 팔았다고. ‘경기 시작하기 3시간 전에 치킨을 배달시키면 경기 끝나고 도착한다’, ‘우리가 8강전에서 탈락한 건 희생된 닭고기의 저주’라는 말까지 돌 정도였으니까. 닭은 모든 이들을 위한 보양 재료다. 소나 돼지고기, 양고기를 먹지 않는나라는 있어도 닭을 먹지 않는 나라는 없다. 때문에 각 나라에서는 조금씩 다른 형태의 치킨 수프를 가지고 있다.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은, 마음과 몸에 온기를 주는 닭고기 수프의 마력을 제목으로 삼았다. 미국에서는 파스타를 넣은 치킨 누들 수프를,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와 야채를 듬뿍 썰어놓은 미네스트로네 수프를 끓이고,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며 중국에서도 닭고기로 특히 유명한 하이난은 해초를 함께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동남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치킨라이스도 원래는 이 하이난 음식이다. 뚝배기에 넣어야 하기 때문인지 유독 영계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노계를 오랫동안 우려낸 수프를 좋아한다. 홍콩의 식당에서도 치킨 수프는 빠지지 않는데, 가끔은 그 안에서 닭발만 스무 개가 나와서 여행자들을 경악시킨다. 우리나라의 삼계탕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킨 수프다. 세계 미식가클럽의 회원 중 하나인 무라카미 류는 삼계탕 마니아다. 미식에 관한 가장 노골적인 단편 32편을 실은 그의 책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서 그는 삼계탕을 이렇게 묘사한다. “수프는 담백한데, 닭은 젓가락만 갖다 대도 살이 떨어질 정도로 부드럽게 삶겼고, 인삼의 강력한 향기도 풍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생명을 입속에 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젓가락을 갖다 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뼈에서 떨어져 나와 쫀득하고 하얀 덩어리로 변한 찹쌀과 함께 수프 속에 녹아든다. 봄에 녹아 내리는 빙산처럼.” 실제로 삼계탕은 아시아 지역에서 대부분 인기가 있다. 장이머우 감독 역시 삼계탕 마니아로 알려져 있으며, 아시아나 항공에서 제공하는 기내식 삼계탕도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삼계탕 집 중 하나는 故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찾았다는 ‘토속촌’이다. 이곳 삼계탕의 특징은 유난히 진하고 노란 국물이 나온다는 것. ‘식신’으로 불리는 에디터로서 나의 추측은 순수한 닭육수가 아니라 비법의 재료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조심스레 ‘콩가루’에 한표 던지고 있는데, 카운터 아저씨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닭을 이용한 고급 보양식으로는 ‘해신탕’이 있다. 용왕님이 먹는 보양식이라는 이름답게 닭과 전복. 새우나 낙지를 함께 고아서 만든다. 한남동의 ‘해천’은 이 해신탕으로 유명한 집. 큰 전복을 아낌없이 넣고 다른 재료를 건져먹은 후에는 남은 국물로 매생이국까지 끓여준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 한식당의 해신탕은 500g 미만의 부드러운 영계에 인삼과 대추, 은행, 밤, 불린 찹쌀을 넣고 끓는 물에 넣어 삶는다. 전복을 넣고 끓이다 그릇에 남고 마지막에 산낙지를 올린다. 죽어가던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보양 재료 낙지와의 결합. 건강도 건강이지만 우선 맛이 일품이다.

체감 보양 효과 50%
한약재에서 우러나오는 향 덕분에 보약을 먹는 것 같은 암시를 준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몰려드는 많은 사람 때문에 끓이는시간이 짧은 건지 회사 옆 삼계탕의 맛은 늘 가볍다. 보글거릴 때 편으로썬 마늘을 다량 투척하면 확실히 몸에 열이 난다.




저녁 : 민어탕


만수무강하기를 바라는 우리 조상들은 온갖 보양식을 개발해뒀다. 육개장은 체면상 보신탕을 먹을 수 없는 양반들이 대신 쇠고기를 넣어 끓여 만든 것이며, 이북에서 즐겨 먹던 어복쟁반도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와 만두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던 보양식이다. 그러나 이 보양식에도 서열은 있었는데, 서울 양반들은 민어로 끓인 민어탕을 최고로 쳤다. 여름에 민어로 탕을 끓여 먹는 것을 ‘복물림’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임금은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고 달큼하게 끓인 민어감정을 드셨다. 서울에도 민어로 이름난 몇 곳이 있다. 민어구이를 잘하는 곳, 민어탕을 잘하는 곳 등 조금씩 특화되어 있지만 민어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면 대개 탕은 맛있다. 분홍빛이 곱게 올라오는 민어회는 흔하게 먹는 광어나 우럭과 맛이 조금 다르다. 탱글한 식감 대신 보드랍게 씹히며 녹아든다. 얌전하고 음전한 맛이라서 사군자 그리던 양반들이 좋아했나 싶기도 하다. 이 민어회를 먹을 땐 민어껍질, ‘배받이’라고 불리는 민어뱃살, 민어부레까지 챙겨야 민어회 먹었다고 말할 수 있다. 뱃살은 그렇고 껍질이나 부레를 어떻게 먹냐고? 막상 먹기 시작하면 꼬들꼬들하고 쫀득한 부레 맛과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부레 맛에 빠져 없어서 못 먹는다. 식당에 따라서 창자나 간을 더해주기도 한다. 특히 여름에 맛이 좋은 민어는 단백질과 비타민 A, B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생각보다 크기가 엄청 크고, 커야 맛있다. 흔한 생선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민어는 고급 보양식이다. 민어회를 먹고 마늘과 후추 향이 얼큰한 민어탕까지 먹으면 잘 먹었다는 소리가 절로 난다. 논현동의 ‘목포자매집’처럼 대체로 민어집들은 전라도 음식을 선보이는데, 그 말은 반찬이 맛있다는 것. 회 먹다, 탕먹다, 반찬 먹다 젓가락이 바쁘다.

체감 보양 효과 70%
여럿이 먹어야 다양한 부위를 먹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여러 사람이 모여 민어 한 마리를 통째로 사서 참치 해체하듯이 먹는 것이다. 회부터 탕까지 잘 차려진 한 상을 받는 동안 에너지가 충전된다. 효과를 누리고 싶다면 회가 아무리 찰지고 맛있어도 반주는 피하길.


별식 : 불도장


중국 태생으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보양식 ‘불도장’에는 위엄마저 느껴진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말처럼, 이 진귀한 수프를 끓이는 냄새에 수련 중인 스님도 담을 넘는다는 뜻으로 ‘불도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텔 식당에서는 음식을 포장 판매하는 일이 많지 않지만 이 불도장만큼은 판매 비율이 상당하다고 한다. 환자들은 물론 가족에게 챙겨 먹이려는 여사님이 많기 때문이다. 불도장을 먹은 한 재벌 총수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청바지가 찢어질 것 같다.” 이 말은 지금까지 불도장의 효능(?)을 나타내는 말로 인용되고 있다. 불도장의 맛은 특별하다. 메리어트 서울의 중식당 ‘만호’에서 불도장을 주문하면 밥공기보다 조금 큰 중국식 수프 그릇이 나온다. 뚜껑을 열면 한약 냄새와 함께 온갖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다. 상어지느러미, 쇠힘줄, 전복, 표고버섯, 송이버섯, 말린 햄, 오골계, 죽생, 말린 관자, 해삼 등눈에 보이는 재료도 이렇게 많은데 수프를 내기 위해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까닭에 불도장의 맛은 다른 어떤 보양식과도 닮지 않았다. 오래된 장롱을 열었을 때의 말린 한지 냄새처럼 고풍스러운 향기를 내다가도 마지막에는 대추의 단맛이 스치고,상어지느러미가 쫄깃하게 씹힌다. 불도장은 맛있지만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보약에 가깝고, 호사에 가까웠다. 마지막 한 입을 떠 넣을 때까지, 수프 그릇을 신주단지처럼 잡고 있었다.

체감 보양 효과 90%
결코 크지 않은 수프지만 재료가 풍부해 먹는 데는 한참 걸린다. 수프와 재료를 번갈아 먹는 동안 몸이 훈훈해지고 신기하게도 마음까지 위안을 얻었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끓인 음식을 먹었다는 힐링 효과일까? 마음까지 보해주는 그야말로 보양식. 몸을 보호하고 양기를 불어넣는다는 보양식이 왜 우리나라에서 유독 발달했을까. 사는 일과 먹는 것을 결코 구별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정신도 있겠지만 연중 더운 것도 아니고, 연중 추운 것도 아니고, 연중 미지근한것도 아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사람에게 보양식은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계절용 옷을 모두 사야된다는 스트레스만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계절 변화는 곧 일조량의 변화와 직결되고 모르는 사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를 준다. 특히 여름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두 더워서 힘든 계절이다. 보양식으로만하루를 채운 날. 의사들은 칼로리 과다라고 핏대를 세울지 모르지만 내 입에서는“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분명히, 보양식은 몸을 위해서만 먹는 음식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