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루어 코리아>의 7번째 생일. 나이를 막론하고 생일에는 최고로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장안에서 음식을 가장 잘한다는 스타 셰프들이 차려준 생일상. 상다리가 휘어질 뻔하고 너무 먹어 배탈날 뻔했던 점심과 저녁은, 참 많이 황홀했다.




디저트만 사는 세상


그랜드 하얏트호텔 파리스그릴 비트 로펠
셰프의 이름은 ‘비트’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빠른 리듬 때문에 그가 매우 새침하고 예민한 페이스트리 셰프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순박한 미소를 날리며, 사흘 동안 제작한 축하 케이크를 들고 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케이크의 크기는 당신의상상을 뛰어넘는다. 개수를 세다가 지쳐서 포기한 최상품 체리와 블루베리는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매일 이 케이크를 먹으면 항산화 성분 때문에라도 젊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아름다운 여자의 이미지는 겹겹 꽃잎으로 싸인 연꽃 같다면서 초콜릿으로 한 잎 한 잎 세심하게 만든 꽃잎은 갈수록 진해졌고, 얼루어의 이름이 쓰인 화이트 초콜릿 카드 뒤에는 마카롱과자가 숨어 있다. 그 뒤로 라벤더 크림과 베리를 겹겹 올린 파르페, 과일을 곁들인 크러스트 파이, 케이크가 이어졌다. 디저트만 있는 세상. 가장 달콤한 생일상이 아닐까.





즐거운 식탁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피콜로 에오 어윤권 셰프
‘리스토란테 에오’를 처음 열었을 때 어윤권 셰프는 이제 음식 장르의 구분이란 무의미하다고 했다. 결국 남는 건 프렌치 퀴진이나 이탤리언 퀴진 같은 지역색이 아니라 셰프의 스타일일 거라고. 그 후로 6년, 그의 예언처럼 스타일이 없는 레스토랑들은 사라졌거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항상 중심에 있었다. 그는 조용한 혁신가였다. 세 번째 레스토랑 ‘피콜로 에오’를 준비하며, 셰프는 즐거워 보였다. 재미있는 레스토랑이 될 거라고 했다. 이번에도 그의 예언이 맞았다. 아이팟 메뉴와 새로운 칵테일, 배고픈 사람도 배부른 사람도 다 좋을 크고 작은 메뉴들이 새벽 2시까지 이어지는 피콜로 에오는 파티를 위한 레스토랑이다. 쌀을 넣어 구운빵 위에 예쁘게 올린 색색의 ‘에오스타일 수씨’는 샴페인과 최고로 잘 어울렸다. 아보카도와 바닷가재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는 샌드위치 하나도 최고여야만 하는 셰프와 꼭 닮아 있었다.





휘어진 상다리


비스트로 서울 윤종철 셰프
생일이면 늘 미역국을 먹는다. 그런데 그 미역국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엄마라는 건 다들 잘 모른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기에 지금도 여전히 미역국을 먹고 있지만 본래 생일 음식은 국수다. 때문에 가위로 잘라 먹지 않았다. 잘 끊어지지 않는 긴 국수 가닥처럼 건강하고 질기게 오래 살라는 의미다. 서울 거주 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우리나라 레스토랑이며, 스타일리시한 정통 한식의 세계 정복을 노리는 ‘비스트로 서울’의 셰프는 덥지 않냐며 시원한 마 국수를 말아줬다. 얼음 동동 육수에 채썬마와 비법 양념을 얹어 휘휘 저어서 먹으니 여름 더위도 갈증도 싹 가신다. 천연 재료로만 맛을 낸 은대구 조림, 와규 갈비찜, 돼지고기 맥적 중 하나만 있어도 풍족할 것을 다 차려준 이유는, 역시 생일이기 때문이라고. 생일에는 이렇게 상다리가 휘어지게 먹어야 하는 게 맞다. 특히 갈비찜이 빠질 수 없다는 말에 덥석 마지막 남은 갈빗대를 손에 쥐었다.





셰프의 록 콘서트


엘본 더 테이블 최현석 셰프
‘테이스티 블루바드’를 지나‘ 엘본 더 테이블’을 연 최현석 셰프는 서로 엇비슷한 레스토랑 음식이 지겨울 때면 가장 생각나는이름이다. 그의 음식 앞에선 도망간 입맛도 흥미도 자리를 고쳐 앉는다. 도발적일 정도로 창의적인 음식과 과감한 스타일, 폭넓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록 스타’에 비할 만한이 셰프는 기억과 공상을 자유롭게 파괴하고 새로 잇는다. 정통과 분자요리 기법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음식은 그래서 매번 감동을 준다. 물에 만 밥에 굴비 한 조각을 얹어 먹던 평범한 기억은 최현석 셰프의 손끝에서 세상에 없던 파스타로 변주된다. 가는 카펠리니 면을 녹찻물에 말아 그릴에 구운 굴비와 여름 향이 물씬 도는 물냉이를 올린 파스타는 입안을 유영하고, 그의 시그너처 메뉴인 장미 애피타이저와 연어알을 올린 두부 에스푸마는 먹기 아까울 만큼 예쁘지만 먹고 나면 더 빨리 먹을 걸 그랬다 싶다. 여전히 최현석은 멈출 줄을 모른다.




생일을 축하하는 우아한 방법


키친 조성호 셰프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셰프들은 ‘카리스마’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분명하고, 창의적이며 미각을 요리하듯 사람들의 기분도 요리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W호텔이라는 특별한 공간, 그 안에 있는 걸출한 레스토랑 ‘키친’의 조성호 셰프는 호탕하게 말했다. 메뉴에 없는 음식을 차려주겠노라고. 그러니이 메뉴들은 오롯이 우리만 먹은 것일 테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얼루어 코리아>의 이미지가 있다. 아름답고 건강하며, 밝고 산뜻하면서도 개성이 있다. 셰프가 차려준 코스 요리도 그와 닮았다. 제철 식재료가 가진 소박한 건강함은 셰프의 맛을 통해 성장한 여인으로 변해갔다. 진한 푸아그라와 가벼운 맛의 애피타이저, 완벽한 굽기라는 것을 보여준 스테이크의 핑크색 속살을 지나 초콜릿 케이크, W호텔의 라벨을 달고 출시되는 레드 와인을 지나면서 음식이 주는 행복을 다시 느꼈다.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 방법으로는 역시 음식이 으뜸이다.




복잡미묘한 맛의 진수성찬


피에르 가니에르 아 서울 줄리앙 보스퀴스 셰프
현존하는 세계 3대 셰프로 손꼽히는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아서울’의 상륙은 ‘사건’이었다. 그 후 2년, 피에르 가니에르는 식문화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물론 피에르 가니에르가 이곳에 상주하지는 않는다. 그가 없을 때는 그가 신임하는 총주방장이 이곳을 맡는다. 보스퀴스 셰프는 7월을 맞아 메뉴를 새로 디자인했고, 우리에게 가장 처음으로 보여줬다. 아니스 향의 펜넬 마멀레이드, 여름 채소, 콩가루를 입혀 구운 농어, 블랙올리브와 베어블랑이 한 입에서 어우러지는 특별한 경험. 어떤 음식도 심플하지 않고, 복잡한 추리 소설 같다. 상상하지 못했던 재료의 맛이 점층되며 완성된 맛은 오케스트라에 비할 만하다. 장담하건대 이곳에서 맛보는 것들은 ‘난생 처음’이란 수식어를 훈장처럼 달게 된다. 특별함이야말로 남다른 가치가 아니던가. 남은 소스를 싹싹 긁어 먹는 것으로 경의를 표했다.




늘 새로워야 한다는 것


더스파이스 에드워드 권 셰프
에드워드 권의 이름을 전면에 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더스파이스’의 출항을 알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호통을 쳤다. 우리나라 레스토랑은 거품이 너무 심하다. 그리고 기자들도 그곳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그는 3코스, 4코스의 메뉴를 3만원대의 가격에 선보였고, 요즘 더스파이스에서 식사를 하려면 1주일 전 예약을 해야 한다. 그 예약을 비집고 받은 생일상은 계절의 향기가 가득했다. 글이 사람을 드러내는 것처럼 음식은 셰프를 꼭 닮는다. 에드워드권의 음식은 진취적이면서 섬세하다. 하나하나 공을 들여 재료 최고의 맛을 뽑아낸 음식들이 가지런히 모여 또 새로운 음식을 완성한다. 스펀지 같기도 하고, 카푸치노 거품 같기도 한 완두콩 수프의 특별한 질감은 버섯 파우더의 풍미 속에 목구멍 깊숙이 사라졌고, 미디엄 레어로 구운 연어의 촉촉한 맛과 향은 피로의 흔적인 다크서클마저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일본식 만수무강 생일상


스시조 한석원 셰프
일본에서는 도미가 생선의 왕이다. 전라도의 홍어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때 결코 빠져서는 안 될 귀한 생선이라 ‘축제의 생선’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일본의 결혼, 회갑, 생일상에는 도미조림이나 도밋국이 꼭 올라온다. 우리나라의 미역국만큼이나 일본의 소울 푸드이기에, 우리나라 최고 일식당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는 스시조가 가장 먼저 도미머리 술찜을 생각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일본 음식의 섬세한 맛을 보여주는 술찜은 향기롭고 우아하다. 세 가지 여름 생선을 이용한 사시미는 계절을 담는 가이세키 음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얼음물에 헹궈 한층 탱글한 맛을 자랑하는 농어 아라이, 여름에만 잠깐 볼 수 있는 하모, 도미를 예쁘게 담았고 슴슴하게우려내어 가쓰오의 본래 풍미가 느껴지는 국수를 곁들였다. 분명 양이 작아 보였는데 먹다 보니 딱 좋았다. 지금 스시조가 최고인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