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신입생 시절, 개항기 역사에 관한 과제발표를 앞두고 인천역 주변 차이나타운을 찾은 적이 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개항기 역사에 관한 과제발표를 앞두고 인천역 주변 차이나타운을 찾은 적이 있다. 골목을 걸으며 근대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낯선 건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뒤로 8년이 흐른 어느 날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돼 낡은 것처럼 보이는 표지에는 근대건축물 귀퉁이와 가로등이 걸려 있고, 붉은 글씨로‘ 청춘 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는 제목이 새겨 있었다. 작가의 이름은 최예선.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홍차에 대한 책을 쓴 작가였다. 책의 표지를 들추자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과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나 홀로 유학을 떠난 프랑스에서 향수병을 달래려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그곳에서 홍차, 미술과 함께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반려자를 만난 모양이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여자와 건축사를 전공한 남자는 백 년전의 역사의 흔적을 좇아 전국 곳곳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백여 개의 근대건축물을 찾아서 긴 여정을 떠났다 돌아온 그녀는 책의 서평에‘ 세월 속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보고 느끼고 기록하고 남기려고 한다’고 적었다. 잊혀진 시간으로의 여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의 고백처럼 이 책은 근대건축물에 대한 단순한 기록은 아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상상하고 느끼고, 떠올린 생각들과 남편과 주고받은 대화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극히 사적인 감상만을 적어놓은 에세이집 같은 건 결코 아니다. 건축물을 둘러싼 시대 배경과 역사를 치열하게 공부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미술사와 건축사에 대한 이들 부부의 해박한 지식도 밀도 있는 글을 구성하는 바탕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똑똑하고 친절한 부부의 가이드를 받으며 답사 여행을 끝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