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영화부터 최근 영화에 이르기까지‘걸작’이라 불리는 영화는 많다. 하지만 좋은 영화의 잣대를 의상에 두면그 영예는 다른 영화 차지가 될 수도 있다. 캐릭터의 성격, 배경이 된 시대의 유행과 사회풍조 등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영화 의상. 그 이야기를 담은,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영화 속 여배우들의 여름 패션 걸작선.

오드리 헵번이 세기의 패션 아이콘으로 회자되는 데는 영화 속 의상의 공이 크다. <로마의 휴일>에선 아찔한 쇼츠를,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선 화려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었다고 가정해보자. 단언컨대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뒤흔들며 패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과거의 영광은 그녀의 몫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릴린 먼로와 소피아 로렌 등 육체파 배우들이 인기를 끌었던 1950~60년대 영화계는 그저 인형같이 예쁘기만 한, 작고 마른 체구의 그녀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드리 헵번은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영화 속 의상으로, 아름다움의 기준을 새로이썼고 꽉 조이는 옷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여성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여성스러운 풀 스커트에 플랫슈즈를 신고 로마 곳곳을 누비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을 본 여성들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고,가슴을 부풀리는 일을 멈췄다. 몸을 따라 유연히 흐르는 간결한 민소매검은색 드레스에 업스타일 헤어로 우아함의 절정을 보여준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룩은 클래식 룩을 대표하는‘ 리틀 블랙 드레스’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영화에 등장한 멋진 의상은 줄거리를 빛낼 뿐만 아니라 명장면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그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아이콘을 낳기도 하는 등 영화,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패션과 영화, 모두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꼽는 패션 걸작 영화는 많다. 그중에서도 이 여름에 주목할 만한 영화들을 엄선해보았다. 여름에 즐겨 보는 공포영화처럼, 시원하고 아찔한 여름 패션이 일품인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리조트 룩부터 파티 룩까지, 눈요기로 감상해도 좋고 기회가 된다면 여름 패션에 적절히 활용해봐도 좋겠다.

고급스러운 리조트 룩의 정석
영화 <리플리> 속 기네스 팰트로의 패션은 고급스러운 리조트 룩의 대명사로 꼽힌다. 원작인 <태양은 가득히>에서 입증된 흥미진진한 줄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촬영 배경지인 나폴리의 이국적인 풍경은 아름다운 영상을 책임진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이탈리아 상류사회의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특히 상류층인 기네스 팰트로가 나폴리 섬을 여행하며 선보이는 리조트 의상이 압권이다. 잔잔한 무늬가 드리워진 A라인풀 스커트에 반소매 셔츠를 묶어서 연출하는 패션을 주로 선보이는데,그녀 특유의 여성스럽고 세련된 분위기가 더해져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좇게 만든다. 또 금발 웨이브 헤어를 더욱 우아하게 빛내는 헤어밴드, 해변에서의 레트로 풍 비키니 수영복, 파티 신에 등장하는 우아한이브닝 드레스 룩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무리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리플리> 속 기네스 팰트로 룩은 정말이지 고급스럽고 감성적인 지중해풍 리조트 룩을 잘 표현해냈다. 2007년 개봉한 <어톤먼트>는 <타임>지가 선정한‘영화 속 최고 패션 1위’에 등극하는 영광을 안은 작품이다. 영화 초반부에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골 연못 풍경의 낮과 밤, 로맨틱한 러브 신, 그리고 여주인공인 키이라 나이틀리의 아르데__코풍 리조트 룩은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 상류층인 키이라 나이틀리가 시골 저택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면서 펼쳐지는 격정적인 러브스토리를 담은 이 영화는 <오만과 편견>으로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 의 상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던 디자이너 재클린 듀란이 의상을 담당했다. 특히 1930년대 아르데코 무드를 재현한 녹색 드레스는 영화 속 최고 패션 1위라는 영예와 함께 키이라 나이틀리를 더없이 고혹적인 여배우로 등극시켰다. 또한 은은한 꽃무늬의 시스루블라우스 룩과 고급스러운 수영복들은 영화 속 애절한 사랑과 뜨거운 계절인 여름을 더욱 부각한다. 다음 소개할 영화는 아네트 베닝의 화이트 리조트 룩을 만날 수 있는 <러브 어페어>다. 타히티라는 아름다운 섬과 보잉 선글라스, 우연한 만남이 이뤄낸 서정적인 사랑의 멋을 처음으로 일깨워준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은 사춘기 여고생의 마음을 달뜨게 만들었다. 특히 에메랄드 빛 바다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똑같이 흰색 옷을 입고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에서는‘와, 성숙한 멋이란 저런 거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함에 푹빠져들었던 흑백영화 <상류사회>도 빼놓을 수 없다. 삼촌 옆에서 슬쩍슬쩍 훔쳐봤던 그토록 우아한 여자가 그레이스 켈리라는 사실은 나중에나 알았지만 어린 눈에 그녀는 마치 공주 드레스를 입은 바비 인형 같았다. 성인이 된 후 그 기억을 되살려 다시 영화를 보게 되면서 화려한드레스 뒤에 숨은 멋진 의상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흰색의 홀터넥 원피스 수영복. 지금 입어도 너무 근사한 리조트 룩이 될 영화 속 수영복은 1950년대 수영복 패션을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브로드웨이 쇼 입성을 꿈꾸는 여배우들의 하숙집을 배경으로 한 1937년 영화 <스테이지 도어>에서는 레트로풍의 리조트 룩을 만날 수 있다. 근사한 휴양지는 등장하지 않지만 캐서린 헵번이 입었던 실크 소재의 폴카도트 미니 점프슈트나 세일러 쇼츠 룩은 리조트 패션으로 손색없는 멋을 자랑한다. 꼭 리조트 패션이 아니더라도 레트로 패션을 제대로 한번 감상하겠다 한다면 <스테이지 도어>를 추천한다.

한여름 밤을 위한 파티 룩
한여름 밤을 위한 세련되고 섹시한 파티 드레스 룩을 감상하고 싶다면 영화 <러브 인 클라우즈>에 주목하면 된다. 샤를리즈 테론,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이 영화는 레드 립 메이크업과 최근 유행했던 일명‘ 물결파마’의 웨이브 헤어, 보디 실루엣을 과감히 드러내는 원색적인 드레스, 화려한 주얼리 연출 등 여자를 농염한 파티의 여인으로 변신시키는 다양한 요소를 담고 있다. 거기다 금발의 샤를리즈 테론과 눈썹까지 새까만 페넬로페 크루즈의 서로 다른 섹시함을 감상할 수 있어 더 흥미롭다.<러브 인 클라우즈>가 고혹적인 섹시함을 드러낸다면 1953년의 고전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의 드레스들은 관능적인 섹시함을 드러낸다. 1950년대의 섹시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가 등장하는 영화니그 농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할 것이다. 3명의 여주인공들이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에는 남자를 꼬이기 위한 섹시 글램 룩이 줄줄이 등장한다. 보디슈트를 연상시키는 미니 드레스부터 글로시한 붉은색의 롱 드레스까지 다양한 빈티지 드레스를 감상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물론 최고의 감상 포인트는 마릴린 먼로의 빼어난 관능미! 1930년대의 초기 갱스터 영화를 1983년에 리메이크한 영화 <스카페이스>의 미셸 파이퍼는 당시 샤인 드레스와 금발헤어, 빅 선글라스로 대표되는 패션 스타일로 화제를 모았다. 가슴 골을 드러내는 클리비지 드레스 외에는 어떤 액세서리도 걸치지 않은 연출은 청순한 단발머리와 대조를 이루며 묘한 섹시함을 풍긴다. 클래식한 리틀 블랙 드레스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앞서 소개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제격이다. 오드리 헵번의 가녀린 몸에 걸쳐진 디자이너 위베르드 지방시의 간결한 블랙 드레스는 가장 클래식한 드레스 룩으로대표된다. 이 드레스야말로 불멸의 영화 의상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의상으로 떠나는 이국적인 여행
특별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 나라의 이국적인 패션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스페인이 배경인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페넬로페 크루즈를 통해 정열적이고 보헤미안스러운 스페인 패션을 엿보인다. 그렇다고 붉은색의 탱고 드레스를 상상하지는 말아야 한다. 페전트 무드의 화이트 원피스에 검은색 페도라를 쓰거나 스모키 아이에 검은색 리넨 원피스를 걸친다거나 하는 식의 은근한 멋이 바로 포인트니까. 스페인에 놀러 온 여행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캐주얼한 티셔츠를 입은 스칼렛 요한슨과는 달리 페넬로페 크루즈의영화 속 의상은 불안정한 정신을 가진 다혈질의 스페인 여성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섹스 앤 더 시티2>가 더 기대되는 이유는 영화 후반부의 배경이 되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사막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영화 나들이 감상은 전편으로도 충분했고, 뉴요커 4인방의 사막 여행 패션이 어떻게 그려질지가 훨씬 궁금하다. 공개된 스틸 컷에 등장한 원색적인 색상의 에스닉 의상들은 이번 속편을 빛낼 비장의 무기는 여기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파리 룩의진가를 만날 수 있는 걸작 중의 걸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영화 속 패션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영화이며, 메릴 스트립의 명연기도 만날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영상에 녹아든 1960년대 홍콩의 여름과 장만옥의 모던 치파오 룩을 감상할 수 있는 <화양연화>도 놓치기 아깝다. 컷마다 달라지는 치파오의 프린트, 색상, 소재 등의 변화와 그 다름이 주는 멋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방을 배경으로 한 <투스카니의 태양>은 양귀비 꽃 가득한 투 스카니의 평야와 해안 마을인 포지타노를 그림처럼 펼쳐 보인다. 여주인공인 다이안 레인의 화이트 셔츠 원피스와 노란색 원피스 등의 사랑스러운 영화 속 의상은 따사로운 투스카니의 태양 아래 꽃처럼 빛난다. 얼마전 타계한 누벨바그 감독, 에릭 로메르의 <해변의 폴린느>는 프랑스 시골 해변과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여름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펼쳐지는 프렌치 감성의 흰색 페전트 룩과 복고풍 수영복 룩은 지금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영국 윔블던으로 떠나고 싶다면 영화 <윔블던>을 보면 된다. 실제 윔블던 경기가 펼쳐지는 테니스 코트와 영국의 황홀한 공원 등이 영화를 채우며, 전성기를 구가하는 테니스 선수로 나오는 커스틴 던스트의 클래식한 흰색 테니스 룩은 보너스로 감상할 수 있다. 테니스 룩은 이번 시즌 트렌드이기도 하니, 영화를 보면서 스타일링 팁도 훔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