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죽을만큼 아파야만 병원을 찾고, 주사보다 건강 검진을 더 싫어하는 사람이 꽤 많다. 하지만 큰 병은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오고, 로또보다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미리미리 건강검진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자.

자타공인 건강염려증 초기 환자인 나는 몸에 조금만 이상 증세가 있어도 병원으로 달려가는 타입이다. 눈이 가려우면 결막염인 것만 같고, 현기증이 오면 세반고리관 이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배가 아프면 위궤양이 아닐까 의심한다. 병에 대한 걱정이 부끄러움을 누를 만큼 강력하다 보니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산부인과, 치과, 항문외과, 신경 정신과도 거리낌 없이 들락거린다. 하지만 정작 큰 병에 걸린 적은 한 번도 없고, 매번 비싼 검사비 내고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돌아오기 일쑤다. 그런데 이렇게 병원을 내 집처럼 여기면서도 건강검진을 받은 적은 그리많지 않다. 내 머릿속에서 건강검진이란 ‘이 노동자를 계속 부려도 고장이 안 날 겝니다’를 자료화하기 위해 회사에서 실시하는 연례행사 정도로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살짝 넘어서자 사정이 좀 달라졌다. 나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하나둘씩 몸에 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술, 담배, 과로를 벗삼던 친구 J는 위경련으로 응급실 신세를 졌고, 유난히 등산을 좋아하는 동호회 선배 K는 젊은 나이에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으며, 언제나 발랄하던 후배 Y는 갑상선암에 걸려 휴직을 해야 했다. 친구들의 잇단 병원행 소식에 겁이 덜컥 난 나는 당장 내 몸에 이상이 없는지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건강검진을 받기로 결심했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평소 나타났던 증상을 토대로 염려되는 질병이나 꼭 받아야 할 검사를 종이에 쭉 적은 다음, 해당 검사를 모두 시행하면서도 집이나 직장과 가까운 병원을 찾아보았다. 내가 선택한 곳은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였다. 대학병원이라는 점도 좋았고, 규모나 시설이 탁월한 데다 직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여러 면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건강검진 프로그램의 종류와 정보, 유의 사항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건강검진’ 메뉴에는 간단한 앙케트를 통해 나에게 가장 알맞은 검진 프로그램과 비용까지 계산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 주요 질병의 대부분이 40대 전후에 발생하기때문에 30대까지는 일반적인 검사만 진행해도 되지만, 암처럼 유전되는 가족 병력이 있거나 특정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프로그램에 해당 검사를 추가하기도 한다. 나는 특별히 이상이 있어서라기보다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검사를 받는 것이어서 ‘49세 이하 여성’ 을 기준으로 한 프로그램을 택하기로 하고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일정을 잡으며 몇 가지 질문과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우선 최근에 앓은 병이 있는지, 그로 인해 약 처방이나 치료를 일주일 이상 받은 적이 있는지, 특별히 의심되는 질병이나 증상이 있는지, 마지막 생리일은 언제인지를 물었고, 검진 전날 8시 이후로 물이나 껌을 비롯한 일체의 음식도 입에 대지 말 것, 특히 술이나 담배는 검진 3일 전부터 하지 말 것, 검사받는 날 아침 소변을 보지 말고 병원으로 올 것을 강조했다. 가임기 여성의 경우 산부인과 관련 검사에 대비해 검사는 생리가 끝난 이틀 뒤가 좋으며, 질세척은 하지 말고 간단히 물로만 씻어야 한다고 했다.

검사 당일, 고픈 배를 움켜쥐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달려갔다. 접수를 하고 가장 먼저 대기실에서 문진표를 작성했다. 문진표에는 예약할 때 간단하게 질문했던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주일에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최근 질병을 앓은 적이 있는지, 식사와 수면은 규칙적인지 등 신체, 식습관, 질병, 정신 건강에 관련된 질문이 영역별로 꽤 자세하게 주어졌다. 문진표에 답만 체크하는 데도 30분은 족히 걸리니 검진 시간을 줄이고 싶다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온라인으로 문진 작성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중간고사 답안지를 내듯 문진표를 제출한 뒤, 본격적인 검사에 앞서 간단히 예진을 했다. 예진이란 검사 전에 담당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을 뜻하는데 개인이나 가족의 병력 또는 문제점, 특별히 의심이 가는 질병, 검사 시 사용되는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나 부작용 여부, 불필요한 프로그램 유무 등을 확인한다. 내 경우에는 건강검진 한 달 전에 자궁경부암 검사를 했기 때문에 검사 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상담이 끝난 후에 로커룸으로 가서 건강검진용 옷으로 갈아입고 키, 체중, 비만도, 시력, 청력 등을 측정하는 신체 계측부터 시작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신체 상황이 예전과 비슷하거나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신체 계측이 끝난 뒤에는 혈액과 소변을 채취했다.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는 건강검진이 아니어도 비교적 자주 하는 편이라 조금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빈혈이나 체내 감염 여부, 비뇨기 및 전신 질환 진단에도 사용되므로 기본적이지만 꼭 실시해야 하는 검사다.

그 뒤부터 프로그램에 있는 각종 전문적인 검사가 이어졌다. 폐기능 검사는 천식이나 폐기능 저하 여부를 알아보는 것으로, 담당의의 안내에 따라 기계의 호스에 입을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힘껏 내쉬는 것을 두세 번 반복하는 간편한 검사였다. 비흡연자인 데다 나름 폐활량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라 크게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초음파 검사는 자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검진 전에 12시간이나 금식을 해야 하는 주범이 바로 요녀석인 데다, 상의를 벗은 상태에서 복부에 끈적하고 차가운 젤을 잔뜩 바르고 그보다 더 차가운 검사기로 여기저기를 문질러대는 것이 영 느낌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씨가 추울 때는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하지만 간이고 쓸개고 웬만큼 중요한 장기가 죄다 복부에 밀집해 있으니 꾹 참고 검사하는 수밖에. 검사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시선이 고정되는 곳에 모니터가 설치되어 환자도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도 담당 의사가 매우 건강하다고 했다. 초음파 검사를 마친 뒤, 대망의 위내시경 검사를했다.

위내시경은 몇 년 전에 위경련 때문에 한 번 해본 적이 있어서 수면 마취를 하지 않고 실시했다. 건강 검진을 꽤 자주 받았던 친구가“ 대장내시경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수면마취를 권장하지만, 위내시경은 5분만 눈 질끈 감으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 역시 그 말에 적극 동의한다. 간호사가 입에 머금고 있으라며 준 내복용 마취약을 꿀꺽 삼키고 나서 몇 분 뒤에 바로 내시경 검사를 했다. 말 그대로 ‘토할 것 같았던’ 몇 분이 지난 뒤 결과가 바로 모니터에 나타났다. 정신을 차리고 의사와 상담을 하며 찍힌 사진들을 보았는데, 위 또한 거짓말처럼 건강했다. 몇 년 전에 내시경을 했을 때 위벽이 손톱으로 할퀸 것처럼 빨갛게 헐어 있었고, 가끔씩 속쓰림과 복통에 시달렸던 터라 틀림없이 위염이나 위궤양 초기일 거라 생각했건만 사진 속의 위는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요 몇 년간 잘 살아보겠다며 유기농 채식 위주로 규칙적인 식사를 했던 게 효과를 본 것일까?

어쨌거나 위내시경 검사를 무사히 끝내고 또 하나의 난관인 유방 촬영을 했다. 유방암 검사는 가슴을 한쪽씩 기계 사이로 밀어넣고 위아래, 좌우로 번갈아가며 짓눌러 촬영하기 때문에 아픈 것으로 악명 높다. 하지만 몇 년 전에 한 번 경험해봐서인지 두 번째 검사 때는 그다지 무섭지도 않고 아픔도 덜했다. 큰 벽들을 넘어선 뒤에 실시한 산부인과 진찰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산부인과 검사는 특별히 검진 전에 담당 전문의와 한 번 더 상담을 했다. 마지막 생리일자와 정기적으로 받는 검진이 있는지의 여부, 임신 가능성, 기타 불편사항 등 문진표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상담 후에 내진뿐 아니라 초음파를 통해 골반 검사까지 함께 실시했는데, 골반 초음파 검사는 인체에 무해해서 생식기와 태아를 진단할 때도 쓰이는 것으로, 여성 관련 검사에서는 골반 내의 종양이나 염증, 난소의 상태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순서는 내겐 너무 친숙한 흉부 X선 촬영과 골밀도 검사였다. 골밀도 검사는 폐경 후의 여성들에게 주로 실시하는 검사지만 요즘 여성들은 운동 부족,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 불균형 등으로 일찍부터 뼈에 이상이 생기는 사례가 많아 30대 검진 프로그램에도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을 마친 뒤 검사실을 나오자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기쁜 소식이 들렸고, 담당 간호사는 모든 검사가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검사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검진 프로그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진단 결과 보고와 결과 상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보통 며칠 뒤에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의사와 상담을 하며 종합 소견을 듣는다. 지방에 살거나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든 직장인들은 우편으로 결과 보고서를 받고, 담당 의사와 전화를 통해 상담을 받는 방법도 있다. 개인적으로 종합 검진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여러 모로 좋은 점이 많았다. 필요한 검사와 불필요한 검사를 분류해 맞춤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 단체로 검진을 받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분위기에서 꼼꼼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등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 그러나 공짜에 가까운 단체 검진에 비해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점은 꽤 극복하기 힘든 단점이다. 건강검진 주기에 맞춰 소액 적금을 들거나, 검진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해두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