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비해서 풀이 죽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TV는 강력했다. 그동안 파스타의 진짜 맛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팔을 걷어붙였어도 알리지 못했던 이야기를 드라마 <파스타>가 해줬다. 그러나 못다 한 이야기가 아직도 많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던 겨울, 드라마 <파스타> 덕분에 여인들의 마음은 이미 상기된 봄이었다. 더불어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에도 봄바람이 불었다. 드라마 한 편이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에 미친 영향은 컸다. 파스타라면 질색하던 어르신이 한 번 맛이나 봐야겠다며 레스토랑에 걸음을 하고, 카르보나라만 먹던 남자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주문하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오픈 키친은 비로소 존재 이유를 찾았다. 주방이 닫혀 있건 열려 있건 신경 쓰지 않던 손님들의 눈이, 마치 월드컵 중계라도 보듯 오픈 키친에 쏠리는 일이 많아졌다. “<파스타> 이후로 가장 달라진 점? 손님들이 부쩍 주방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구르메 에오 어윤권 셰프의 말이다. 파스타도 연애도 무척이나 입맛 당기게 만든 <파스타>. 드라마를 복기하는 대신, 파스타 맛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아직도 그 길에는 파스타를 둘러싼 오해가 산적해 있었다.

짧아도 파스타예요
때론 너무 직설적이어서 오해를 부르기도 하지만 언제나 열정 넘치는 스스무 요나구니 씨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하는 레스토랑 ‘오키친’ 은 합리적인 가격에 수준 높은 정찬 코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코스에는 늘 한 가지 파스타가 포함되기 마련. ‘오키친’ 의 그 자리는 뇨키, 오르기에테 등 쇼트 파스타가 차지하고 있다.링귀니, 탈리아텔레, 페투치네 등 ‘국수’ 모양의 파스타를 롱 파스타, 나사 모양의 푸질리, 리본 모양의 파르팔레, 마카로니와 펜네 등의 파스타를 쇼트 파스타라고 한다. 수제비보다 국수를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입맛 때문인지 레스토랑의 파스타 메뉴 역시 스파게티, 링귀니 탈리아텔레, 페투치네 등 긴 파스타 일색이다. 세상에 무려 4백여 종의 파스타 면이 존재 한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손님들이 찾지 않으니 짧은 파스타를 내놓지 않고, 그러니 점점 짧은 파스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쫄깃함이 떡볶이 부럽지 않은 뇨키와 동전을 구부린 것처럼 재미있는 모양의 오르기에테의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말이다. 셰프들이 여전히 아쉬워하는 부분중의 하나가 다양한 면을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양 문화권의 사람들은 긴 파스타보다 쇼트 파스타를 더 선호한다. 요리하기 편하고 쉽게 불지 않고, 먹기도 쉽기 때문이다.

무조건 알덴테로 삶아달라고 하지 마세요
몇 년 전부터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는 레스토랑들이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저희는 매일 직접 뽑은 생면을 써요.” 어쩐지 갓 짜낸 우유처럼 신선하고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 힘든 일을 자청한다는 정성, 다른 곳과 차별화된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생면, 프레시 파스타가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드라이 파스타와 프레시 파스타 각기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일 뿐. “라자냐와 먹물 파스타 등은 프레시 면을 써요. 다른 파스타 면은 드라이 면을 쓰죠. 소스에 따라 어울리는 파스타 면을 쓰고 있어요.” 돈 파스타 전종규 셰프의 말이다. 만약 생면으로만 파스타를 만드는 식당이라면, ‘알덴테’ 로 먹는 건 포기해야 한다. 드라마 속 공효진은‘ 알덴테’로 삶는 비법을 터득하기 위해 수없이 면을 삶는다. 만약 공효진이 프레시 파스타를 삶았다면 그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익혀서 건조시킨 면을 다시 삶아 먹는 드라이 파스타와 달리 프레시 파스타는 밀가루 반죽 그대로이기 때문에 덜 익혀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라자냐, 탈리아텔레 등은 푹 익혀서 특유의 부드러운 맛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알덴테로 삶은 드라이 파스타를 미국과 일본에서는 밀가루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던 것처럼, 가끔은 냉정하게 자신의 입맛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알덴테가 입에 맞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탈리아 북부 입맛을 가진 사람이니 프레시 파스타를 공략하길. 아무튼 아무 데서나 알덴테 찾지 말기.

피클, 정말 없다니까요
한 때는 피클로 레스토랑의 수준을 가늠하기도 했다. 피자배달전문점 처럼 흐물흐물한, 설탕 탄 식초 맛밖에 나지 않는 싼 통조림 피클을 주면 C점, 역시 통조림이지만 아삭아삭하고 여러 향신료의 맛이 느껴지는 피클을 주면 B점, 직접 담근 신선한 피클을 주면 A점을 줬다. 여기에 안 나비니처럼 브로콜리나 콜리플라워, 청양고추, 붉은 양배추도 함께 절인 것을 주면 A플러스였다. 하지만 드라마 속 셰프는 레스토랑에서 피클을 추방한다. 공효진은 볼멘소리로 말한다“. 셰프, 우리나라 사람들은 피클 맛으로 파스타를 먹습니다.” 어느 셰프도 피클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님이 원하기에 준다. 지금껏 족히 수백 그릇의 파스타를 사 먹었지만 정말 피클을 주지 않는 파스타 점은 딱 한 곳, 돈 파스타뿐이었다. 10년 전 오픈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피클을 준 적이 없는 이곳. 피클이 파스타의 맛을 해친다는 확신과 제대로 된 파스타를 전달하고 싶은 셰프의 고집 때문이었다. 10년째 계속된, 그래도 달라는 손님과 정말 없다는 셰프와의 실랑이가 드라마 덕분에 훨씬 줄었다고“. 산뜻한 맛의 파스타라면 괜찮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바로 풍부한 맛의 파스타를 먹으면 너무 무겁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손님들은 아직도 샐러드를 주문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파스타가 나오기 전에 가볍게 입맛을 돋울 수 있도록 작은 샐러드를 내요. 우리 집에서는 어쩌면 그게 피클 대신이죠.”

파스타는 전채이기도 하고, 메인 디시이기도 해요
음식의 문화사를 잘 정리한 책 <진짜 세계사, 음식이 만든 역사>에 따르면 파스타에 토마토소스를 섞은 ‘나폴리타나’ 는 17세기부터 유행했다고 한다. 원래 이탈리아 남쪽에서만 먹었던 파스타가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진 데는 이 나폴리타나의 공이 컸는데, 그 무렵 파스타는 간단하게 먹는 한 끼 식사였다. 그 후 20세기부터 파스타는 메인 디시인 육류나 생선이 나오기 전의 작은 접시 ‘프리모 피아토’ 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끼 식사로 파스타를 먹는 건 틀린 방식일까? 구르메 에오와 리스토란테 에오를 이끄는 어윤권 셰프는, 음식 문화가 간소화되면서 파스타가 메인 디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식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요즘은 많이 달라졌어요. 바쁘게 살다 보니 식사도 점점 간소화되는 추세죠. 정찬 요리를 즐길 때의 파스타는 프리모나 세콘도 피아토가 맞지만, 요즘은 파스타가 한 끼 식사로 여겨지고 있어요. 대신 한 끼 식사를 담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재료가 더욱 풍부해졌죠.”

소스는 국물이 아니잖아요 많은 셰프가 드라마 <파스타>에서 다양한 파스타 소스를 소개하고 소스 양에 대해 지적한 것에 대해 고마워한다. 스타 셰프 박찬일이 쓴 <보통날의 파스타>에는 이탈리아 파스타와 우리나라 파스타의 밀고 당기기 같은 다양한 간극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에 소스를‘ 묻혀’ 먹지만, 우리는 파스타에 소스를 ‘적셔’ 먹는다는 것.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음식 연수 중인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김성윤도 같은 말을 한다. “한국 사람들이 국물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먹고 난 후에 소스가 흥건하게 남으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면 맛을 가린다는 거죠.”

소스는 한 가지도 아니잖아요 이탈리아는 파스타의 고향인 동시에 소스의 본고장이다. 토마토소스한 가지만 해도 수십 종이다‘. 포모도로’에 앤초비를 넣으면 ‘마리나라’ 가 되고, 여기에 검은색 올리브를 넣으면‘ 집시의 소스’라는 뜻의 ‘살사지타나’ 소스가 된다. 한 가지 재료만 달리 넣어도 미묘하게 맛과 향이 달라진다. ‘살사 지타나’에 케이퍼까지 넣으면 매춘부라는 뜻의 ‘푸타 네스카’ 소스가 되는데 이름은 좀 그렇지만, 한번 맛보면 헤어나오기 힘들 만큼 입에 착 달라붙는다. 그러니 늘 먹는 소스만 고집하지 말길. 셰프가 이탈리아 어느 지방에서 유학했고, 어느 지방 음식을 표방하는지 알게 되었다면, 당연히 그 지역의 유명한 파스타를 먹는 게 맛있다. 예를들어 시칠리 지방에서 꼭 맛보아야 할 3대 파스타가 있다. 정어리 파스타, 가지와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노르마 파스타, 보타르가(어란) 파스타다. 아쉬운 건 한국에서 더 이상 정어리를 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몇몇 레스토랑에서는 값싼 고등어로 정어리를 대체하고 있지만, 식감과 맛에서 정어리의 기름지고 촉촉한 맛에 비할 데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온갖 생선을 다 테스트해본 끝에 적절한 2인자를 찾아내고야 말았다며 미소 짓는 셰프에게 대체 그게 뭔지 알려달라고 졸랐다. 과연 그 주인공은 답은“? 밴댕이에요, 밴댕이.” 왜 자꾸 먹던 것만 고집하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파스타가 있죠. 카르보나라, 토마토소스의 해물 파스타, 봉골레. 다른 파스타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에는 파스타의 가격도 작용해요. 파스타를 비중 있게 내는 레스토랑의 일반적인 가격이 1만5천원에서 2만원대 초반이라고 하면, 적은 돈은 아니죠. 2만원을 내고 먹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아깝잖아요. 그래서 모험을 피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거예요. 이미 검증된 맛이니까요.” 파스타가 맛있는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그랑 씨엘의 박건호 셰프는 그래서 ‘오늘의 파스타’ 를 시작했다고 한다.“ 도산공원 사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손님들의 입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서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꺼리는 건 있어요. 이를테면 앤초비 파스타지만 큼지막하게 들어간 앤초비를 꺼릴 수도 있기에 앤초비를 잘 으깨어 향을 내죠. 기존 메뉴보다 저렴한 ‘오늘의 파스타’ 는 다양한 파스타를 소개하기 위해서 시작했어요. 마치 백반집에 가듯‘, 오늘은 뭘 먹지?’ 하고 오늘의 파스타 를 즐기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