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신하균이 웬일로 로맨틱 코미디를 찍는다. 영화 <페스티벌>의 크랭크인 하루 전, 신하균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거기 없었다.

티셔츠는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팬츠는 커스텀멜로우(Costomellow), 슈즈는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 안경은 톰 포드(Tom Ford)

티셔츠는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팬츠는 커스텀멜로우(Costomellow), 슈즈는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 안경은 톰 포드(Tom Ford)

 

카디건과 베스트는 커스텀멜로우, 코르사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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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못 본 사람들의 파리한 얼굴 틈에서 그의 잘 그을린 얼굴은 유독 눈에 띄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반팔 티셔츠 위로 보이는 팔, 셔츠 틈으로 살짝살짝 들여다보이는 가슴 근육도 같은 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태닝 기계에 무려 열두 번이나 들어가며 골고루 잘 구운 피부와 딱 사흘 동안 길렀다는 수염이 라벤더색 팬츠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직업이 경찰이에요. 역할을 위해 태닝을 했죠. 캐릭터랑 잘 어울릴지 어서 보고 싶어요.”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이렇게 탄 얼굴은 처음 봤다고 스태프가 옆에서 거든다. <카페 느와르>의 시사회에서 보았던, 창백한 선비의 얼굴이 어느새 마초맨으로 변해 있었다. 마초맨! 그것도 사랑에 빠진 마초맨이 그의 새 캐릭터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이제껏 본격 로맨틱 코미디는 없었다. 새 영화 <페스티벌>은 <천하장사 마돈나>로 대중과 평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 이해영 감독의 신작으로 신하균, 엄지원, 류승범, 심혜진, 엄정화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벌써 화제를 모으고 있다. 크랭크인 전날에는 주로 휴식을 취하기 마련임에도 <얼루어> 앞에 흔쾌히 서준 그에게 영화 소개를 부탁했다. “ 귀엽고 섹시한 영화예요. 사람들마다 각자가 감추고 있는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감각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려요.” ‘콩꺼풀’ 은 이미 벗어진 지 오래인 두 사람이 남았을 때 겪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영화 속에서 그는 6년째 동거 중인 경찰 ‘장배’ 역을 맡았다. 남자다움과 자신감 하나로 살아온 전형적인 대한민국 남자인 장배는 여자친구가 바이브레이터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큰 충격을 받죠. 남자라면 다 그럴 거예요. 그런데 그런 성적인 부분이 관계에서 큰 부분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남자는 굉장히 크게 생각하고 그로 인해 여러 일이 벌어져요‘. 그것’이 좋아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호기심에 사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바이브레이터를 앞에 두고 당황하는 마초맨이라니,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그가 선택했다면 어딘가 독특한 면이 있을 거란 예상이 딱 들어맞았다. 영화계에 ‘작가주의 감독’ 이 있다면, ‘작가주의 배우’ 도 있다. 배우로서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더 좋아한다. 다른 남자 배우들처럼 다정하고 이상적인 애인이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역할을 그는 거의 보여준 적이 없다. 무시무시해야 할 <예의 없는 것들>의 킬러는 혀가 짧다는 콤플렉스를 숨기고 있었고,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서는 바보 소리 듣기 좋게 짝사랑만 실컷 하고,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잡아다가 물파스로 고문을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박쥐> 같은 영화는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 독특한 캐릭터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게 배우 신하균의 특기라면 특기였다. 비범한 역할에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줬고, 평범한 역할도 조금 남달랐다. 신하균은 연기로 관객을 설득할 줄 알았다. 아무리 기괴한 역할도 실재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저와 제 여자친구를 맡은 엄지원 씨는 30대 커플이고, 첫사랑을 시작하는 커플이 있고, 중년의 사랑도 나오죠. 그들이 각각 성의 여러 단계를 보여줘요. 지금까지 이런 소재를 이렇게 푸는 영화는 없었어요. 아직 촬영 전이지만, 지금껏 받은 느낌은 상당히 새로워요. 제가 어디서도 보여주지 않은 캐릭터라는 건 확실해요. 멋지고 섹시하게 나오냐고요? 그래야 되는데 이미 두 사람은 그런 시절을 한번 지나쳤어요. 섹시함이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제가 많이 참고 있습니다. 하하.” <페스티벌>이 그의 출연작 중 가장 밝고 유쾌한 영화가 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간 컬트적인 인물을 소화하느라 숨겨둔 밝은 매력이 드디어 빛을 보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겼다. 영화 속 캐릭터에 가려져 온 그의 ‘자연스럽고 남자다운’ 매력 말이다“. 사람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설명하기란 불가능하잖아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서 비로소 완성되는 거죠.” 그걸 알기에 그는 늘 입체적인 배역을 원하고 선택한다. “감독의 전작을 매우 재미있게 봤고, 시나리오도 재미있었죠. 하지만 새롭다는 면에 가장 끌렸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데 우선순위가 있다면 첫 번째는 늘‘ 새로운 역할’이냐는 거예요. 관객들도 제게 그 부분을 기대하지 않을까 싶어요. 신하균이 나온다는 영화가 어떤 영화일까, 호기심을 가져준다면 고마울 거예요.”

연애 영화를 말하다 보니 자연히 이야기는 사생활로 흘러갔다. 여자친구에게도 영 무심할 것 같다고 물으니, 순순히 답한다“. 남녀 관계뿐만이 아니라, 저란 사람이 원래 그래요.” 여자친구는 정말 없다고 하면서도, 얼마 동안 없었냐고 하는 질문은 그냥 웃음으로 넘기며 누가 자길 좋아하겠냐고 되묻는다. “만날 집에만 있고, 술 좋아하는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일상에 대한 그의 진술은 항상 일관된다. 수년 전 인터뷰를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집에 있는 걸 가장 좋아하며,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술이다“.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취미가 없어요. 1년에 절반 정도는 술도 혼자 마시고, 음악도 집에서 듣고, 영화는 DVD로 보고 가끔 프라모델을 조립하기도 해요. 혼자 걷고, 혼자 등산 가고, 그게 전부예요. 사람들에게 ‘ 저 등산 왔습니다!’ ‘자전거 타러 왔습니다!’ 할 수도 없잖아요.” 인생에서 영화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술을 물어보니, 그제야 반색하며 이야기한다. 과하게 마시지 않는 것이 비결이며 소주 빼고는 전 세계 모든 술을 좋아해서 그날 기분에 따라서 골라 마신다. “비가 오는 오늘 같은 날이면 막걸리도 좋겠네요. 가장 좋아하는 술은 예전부터 막걸리예요. 가끔은 양조장에서 직접 시켜다 먹기도 해요. 싸고, 영양가도 높고 마시면 마실수록 정말 좋은 술이에요. 위스키도 좋아하죠.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 그러면서 할인매장에 가봤냐고 묻는다. “요즘 할인매장에 술 종류가 정말 많더라고요. 맥주도 다양하고…. 좋아졌어요.” 진지하고 차분하지만 언뜻언뜻 엿보이는 소년 같은 모습은 여전하다. 그래서 여자들이 신하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정작 그는 이제 그런 거 없다며 질색한다“. 어휴, 이젠 철없다는 이야기로 들려요. 간지러워요, 그런 얘기 들으면.”

해골 프린트 티셔츠와 팬츠는 닐 바렛(Neil Barrett).

해골 프린트 티셔츠와 팬츠는 닐 바렛(Neil Barrett).

그는 자신에게 너그러운 타입이 못 된다. 칭찬을 듣는 것도 영 어색해하고, 공인된 연기력조차 본인 스스로는 잘하는 편이 아니라고 할 정도다. 대답을 안 했으면 안 했지, 빈말은 못할 것 같은 그가 자신하는 유일한 부분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것“.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못하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모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영화는 수많은 사람과 많은 자본이 필요해요. 작품의 메인 배우가 되었다면 쉽게 행동할 수가 없어요.” 작품을 앞두고 팔이라도 부러질까봐, 지난겨울 내내 좋아하는 보드도 못 탓을 정도다“. 그러다 보면 많이 예민해지고, 개인적인 제 생활이라는 건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에요. 일도 생활도 다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잘 못해요. 여전히 제게는 연애보다는 일이 중요해요. 왜 술을 마시겠어요? 잠이 안 오니까 마셔요. 그날 촬영한 것들, 또 내일 촬영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요. 그럼 너무 예민해져서 잠이 안 와요. 어느덧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그렇게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연기 경력이 10년째인, 사람들에게 늘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모범생 같은 연기자는 연기하는 순간순간이 힘들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영화가 끝나면 오래 쉴 법도 한데, 지금까지 가장 오래 쉰 기간이 길어야 3개월이라니, 그는 대단한 워커홀릭이다. 이 작품만 끝나면 여행도 가고 쉬어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작품이 끝날 때면 다음 시나리오를 집어 든다. 배우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 ‘ 재충전의 시간’이 왜 1년씩 필요한지 그는 정말 모른다. “한 달 쉬어도 사실 충전이 되어요. 그럼 다음 작업이 하고 싶어져요. 또 새로운 뭔가 없을까, 하고.”

스크린 장악력이 대단한 배우지만, 실제 그의 모습은 고요하고 느긋한 호수에 가깝다. 학교 다닐 때도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는 말. 하지만 영화를 좋아했고, 영화 일을 하고 싶었다는 막연한 동경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말도 그 평화로운 표정을 보면 다 믿겼다. “고 3시절, 연극 영화과를 지망하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네가?’ 하고 그냥 웃어 넘겼어요.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그렇게 매력 있는 타입도 아니잖아요? 지금도 영화하는 신하균이 너 맞냐고 하기도 해요. 그런데 정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배우가 되었죠.” 한 해 동안 도합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적도 있는 신하균의 생활은, 배우가 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에서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살고 있고, 근처에 영화관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곳으로 이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욕심 없는 남자가 가진 유일한 욕심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제 욕심은 정말 허황될 정도로 큰 거였어요.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정말 배우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 꿈을 이룬 기쁨에 지금껏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말하는 신하균은 그래서 욕심만큼 얻었을까? ‘얻었다’ 는 말에, 신하균은 잠시 고민했다. “하게 되었잖아요, 결국. 10년 이상 연기해왔고, 지금도 저를 위한 자리가 있어요. 이것도 정말 큰 거예요. 물론 제가 안고 있는 부족한 부분을 극복해나가야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단점이 궁금했지만 그는 그냥 배우들은 다 그런 게 있다고 답할 뿐이다. 신하균은 너무 숨기는 게 많다.

영화 촬영을 막 시작하려는 지금이 가장 에너지가 넘친다. 그럼 가장 힘든 때는? “인터뷰예요. 그래도 10년 동안 해서 이만큼 하는 거예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아직도 어색해요. 아니, 내 이야기는 재미있는 부분이 없어요.” 개인으로서 신하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말할 만한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 책임감 강한 배우에게 인터뷰는 ‘작품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거’ 다. 작품과 관련없이 배우 신하균을 위한 인터뷰를 정말 한 번도 한 적이 없냐고 재차 물었다. “물론이죠! 제 개인의 홍보를 해서 뭐해요?” 그 순간 깨달았다. 영화를 물어보면 달변가가 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으면 그저 웃기만 하는 이유를. 그는 인터뷰를 할 때도 철저히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충실하기 때문이라는 걸. 사람들은 신하균의 사진을 보고 신하균을 읽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살고 있을 뿐이라는 걸.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는 그 인물 그대로 존재하고 싶어요.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신하균이 아니라‘ 장배구나’라고 생각해줬으면 해요. 그 정도만 연기했으면 좋겠다라는 게, 배우로서 욕심이라면 욕심이에요.” 영화 <페스티벌>은 4월에 크랭크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여름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촬영이 끝날 예정이다. 로맨틱 영화를 찍기엔 딱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촬영 때면 늘 혹한이나 혹염에 시달렸는데, 이런 날도 오네요.” 어쩌면 그 전에 그의 영화 한 편이 더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가 주연을 맡은 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작 <카페 느와르>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베니스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국제영화제를 바쁘게 다니고 있는 중이다.

인터뷰는 끝났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숫가루를 뜨거운 커피를 마시듯 마셨다. 주위의 공기와 시간이 그의 박자에 맞춰 느긋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흘러나오는 음악도 듣고, 콧노래도 흥얼거리다 몇 번인가 안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곤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또 다른 영화를 만나기까지 다시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거였다. 잠시 생각했다. 내가 만난 건 신하균인가? 아닌가? 하나는 분명했다. 그는 스크린에서만 존재하길 원하는 남자라는 걸. 문득 비틀스의 노래‘ 노웨어 맨’이 생각났다“.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여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시간을 즐기고, 서두르지 마세요.(Nowhere Man, Don’t worry, Take your time, Don’t hurry.)” 노래의 후렴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조금은 당신이나 나를 닮지 않았나요?(Isn’t he a bit like you and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