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이상이 보습 효과에 만족한다. 85%가 피부톤이 맑아졌다고 답했다’ 등 요즘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의 홍보 문구는 숫자를 무기로 하고 있다. 소비자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 수치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지금 이곳은 유명 뷰티 브랜드의 안티에이징 제품을 선보이는 행사장이다. 프레젠테이션 후반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사회자(혹은 담당 연구원)는 제품 설명의 화룡점정을 찍는 심정으로 임상 실험 결과로 얻은 숫자를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최근의 신제품 행사장에서 열이면 열, 듣게 되는 이 임상 실험의 수치들.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니만큼 이 수치는 당연히 칭찬할 만한 결과들일 것이다. 기자는 그래서 이 수치보다는 이 수치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졌다.

“임상 실험 결과가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 하죠. 특히 우리나라에서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식약청 고시에 게재된 기준에 근거한 임상 실험 결과가 필요해요.” 식약청 관계자의 말이다. 그 고시 내용에는‘ 화장품을 인체에 적용 시에는 관련 분야의 전문의나 연구소 또는 병원, 기타 관련 기관에서 5년 이상 해당 시험 경력을 가진 자의 지도 및 감독 아래 수행, 평가될 것.‘’ 효력 시험을 할 경우에는 심사 대상 효능을 포함한 효력을 뒷받침하는 비임상 시험 자료로서 효과 발현의 작용 기전(機轉)이 포함되어야 할 것’ 등의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은 물론이고, 해외 브랜드 제품 역시 이러한 기준에 맞는 연구 기관에 의뢰한 임상 실험 결과를 제시해야 하고, 이는 전문적인 체계를 갖춘 연구소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엘리드 임상연구센터의 임수연 선임연구원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상 실험을 하면 90% 이상 신뢰성을 확보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임상 실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미백이나 노화 방지 등 기능성 제품의 경우에는 반드시 20명 이상의 피험자가 필요해요. 비기능성 제품의 경우에는 최소 10명 이상이 참여해도 가능하지만 그 정도 인원수로는 통계 처리를 낼 수 없죠.” 임상 실험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피험자들은 똑같은 폼 클렌저로 세안을 하고,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된 방에서 30분 정도 대기하는데, 이는 피부 조건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테스트 제품을 바르기 전에 사진 촬영과 피부과 전문의에 의한 육안 평가, 기기를 통해 피부톤을 측정한다. “두 달 정도 테스트 제품을 사용한 뒤에 결과를 봐요. 중간중간 전화로 테스트 제품만 사용하도록 체크를 하지요.” 이것이 일반적인 임상 실험의 과정이고, 좀 더 과학적인 테스트를 위해서는 얼굴 피부 대신 등 피부에 제품을 바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백 제품의 테스트를 위해 등을 일부러 태닝하게 한 뒤에 시험 제품과 대조 제품을 각각 발라 미백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 테스트는 피험자가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연구소를 방문해 이뤄진다고 한다.

최근 뷰티 브랜드들은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피실험자의 집단을 다양화하고 있는 추세다. 아이오페는 화이트젠 앰플 에센스를 출시하면서 평균 나이 37세의 전업 주부를 모아서 임상 실험을 했고, 비쉬 역시 안티에이징 라인인 리프트악티브 CxP를 출시하면서 45~64세 아시아 여성들 중 주름이 잘 발달된 여성과 민감한 피부 여성 두 그룹으로 나누어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또한 엔프라니는 임상 대상자가 글로벌 포토에이징 스코어(피험자들의 피부 상태가 비슷할 것을 대비해 피부 상태가 더 나쁜 높은 연령대도 피험자에 포함)를 평균으로 맞출 수 있도록 30대 후반에서 50대로 했다.

진화화는 임상 실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라면 임상 실험의 결과와 단순한 설문 조사 결과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모 브랜드의 제품 홍보 문구를 살펴보자‘. 피부톤이 개선되고 환해진 것 같아요(95%).’ 이는 어디까지 나 주관적인 의견이고, 과학적인 수치가 아니다. 따라서 이를 임상 실험 결과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잡지의 뷰티 테스팅 코너에 게재되는 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몇몇 브랜드는 피험자들의 자가 평가, 즉 제품을 사용하고 난 뒤 질문지를 통해 매우 좋다, 좋다, 나쁘다 등의 항목으로 나눈 결과를 임상 실험 결과라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이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에요.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고 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요즘 화장품 광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죠.” 식약청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저희가 임상 실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할 때 이런 문구들은 배제됩니다. 전문가의 육안 평가, 기기 측정을 통한 결과가 핵심이에요.” 임수연 선임 연구원의 말이다.

예를 들어 엔프라니 레티노에이트의 임상 실험 결과는 레니노 에이트를 0.06% 함유한 제품 A와 레티놀 2500IU을 함유된 제품 B를 8주 후 사진 촬영으로 비교한 결과 p<0.05로 A가 주름 개선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특성 성분의 효능을 알아보는 것은 임상 실험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한 수준이다. 또 다른 국내 임상 실험 센터인 더마프로에서 진행한 아이오페의 화이트젠 앰플 에센스의 임상 실험 결과도 흥미롭다.“ 이 제품을 테스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어요. 먼저 안면 이미지를 분석해 피부 균일도와 톤을 측정하고, 피부 거칠기 분석을 통해 피부결과 주름 상태를 체크했죠. 이외에도 혈류량 측정, 진피 치밀도 분석, 수분량 측정 등을 이용했어요.” 아이오페의 김지영 연구원의 말이다. 이러한 임상 실험을 통해 멜라닌 지수 감소 정도만으로 미백 기능 여부를 파악하던 과거 방식에서 멜라닌을 억제하면 피부색이 달라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국내 브랜드는 대부분 국내 임상 실험 센터를 통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 해외 브랜드인 경우는 자체 연구소와 전문가를 적극 활용한다. 클라란스는 인텐시브 화이트닝 스무딩 세럼을 출시하면서 본사 연구소에 피부과 전문의를 불러 직접 임상 실험에 참여하게 했다. “클라란스는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5천 명의 지원자 중에서 제품에 따라 적합한 피험자를 선택하고, 6개월 동안 테스트를 해요. 특히 이번에는 시아스코프라는 피부 이미지 의학 장비를 활용해 얼굴에 색소 침착 부위의 멜라민 세포 수를 측정했죠.” 생물 과학 연구학자이자 클라란스 연구원 아이린 메리의 말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피부 상태나 스트레스 정도, 유전자 등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연구 결과가 당신에게도 같은 수치로 적용된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다. 임수연 연구원은 제품을 선택할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베이스 물질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에서 사용하는, 혹은 내세우는 주요 성분은 정말 대단한 것들이에요. 그 성분들의 임상 실험 결과는 늘 훌륭하죠. 그래서 저는 나머지 원료를 얼마나 좋은 것을 사용하는지 살펴봐요.” 그녀의 말처럼 화장품을 선택할 때에는 임상 실험의 결과에만 솔깃해 구입하기 보다는 직접 샘플 테스트를 해보고, 성분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를 할 필요가 있겠다. 왜냐하면 화장품은 소중한 당신의 피부에 직접 닿고 흡수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