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헝클어진 머리에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가진 남자가 탐사견과 함께 거리로 나선다. 드라마 <추노>에서 추노꾼 대길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장혁이 홀로 범인을 쫓는 현대판 추노, 탐정으로 변신했다.

흰색 셔츠는 티아이포맨(T.I For Men).

남색 코트는 라프 시몬스 바이 무이(Raf Simons By Mue), 모자는 브로너(Broner).

가죽 재킷은 커스텀 멜로우(Customellow), 바지는 티아이포맨, 스카프는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신발은 구찌(Gucci).

트렌치코트와 베스트는 타임 옴므(Time Homme), 셔츠는 버버리(Burberry).

깜짝 놀랐다. <추노> 10회를 보면서, 화면 속에서 오열하고 있는 저 남자가 정말 내가 알던 장혁이 맞나 싶었다. 10년 동안 애타게 찾았던, 사랑하는 여인의 혼인 소식을 듣고 포효하는 그의 눈빛에서 언뜻 호랑이가 비쳤다. 아니, 용띠 배우니까 용이라고 해두자. <추노>라는 개천은 이무기 장혁을 용으로 승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이런 걸 ‘물 만났다’ 고 하는 게다. 그동안 객관성을 빌미로 연기력보다는 예쁘장한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 배우를 다들 얼마나 쓴소리로 비평 했던가. 한동안 그는 평론가들에게, 관객들에게, 시청자들에게 ‘미남 배우를 닮은 또 하나의 미남 배우’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제대 후 그에게 성공적인 재기를 안겨주었던 드라마 <고맙습니다> 이후 그는 외모가 아닌 ‘눈빛’이 먼저 읽히는 배우가 되었고 샌님처럼 곱상하던 얼굴은 어떤 역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유리가면으로 바뀌었다. <추노>의 눈요깃거리였던 짐승남들의 복근 계절은 저물었지만, 수많은 시청자가 저녁 약속을 뿌리치고 여전히 TV앞에 바싹 다가 앉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손에 잡힐 듯한 숨소리와 12첩 반상보다 더 현란한 호화 캐스팅이 차려놓은 맛깔 나는 명품 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제는 마음 놓고 편애해도 좋을 배우, 장혁이 있다.

드라마가 발단과 전개를 지나 본격적인 깔딱고개에 막 들어섰을 무렵, 5개월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드라마 촬영만으로도 바쁠 텐데, 각종 쇼 프로그램 출연과 잡지 화보 등으로 홍보 촬영을 하느라 얼굴이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 반갑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안쓰러운 마음에 힘들지 않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힘들지 않아요.” 일주일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촬영하던 <명랑소녀 성공기>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장혁은 환하게 웃었다. “그때는 ‘식사하셨어요?’ 가 아니라 ‘오늘은 씻었어요?’ 가 인사였어요. 메이크업을 한 상태에서 티슈로 지우고 다시 메이크업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보통 회당 주연 배우가 60 신 중에서 25 신 정도 출연하는데, 그 작품은 제 분량만 50 신이 넘었거든요. 그런 데다 그때 마침 사극 <대망>도 사전 제작 중이어서 그나마 쉬는 날도 촬영을 했으니 거의 잠을 못 잤죠. 이동하면서 대사를 외워야 하고, 대사만 외우는 게 아니라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으니, 잠 한숨 안 자고 돌도 씹어 먹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30대 중반이 아닌가? 분명 몸이 낌새가 다르단 걸 눈치 챘을 법도 한데“. 물론 20대와 30대 사이의 체력 차이는 느끼죠. 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힘든 건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예전보다 더 활기차졌죠. 정신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육체적으로 힘든 건 다 견딜 수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게 문제이지.” 그에게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란, 촬영장에서 감독이나 스태프들과 소통이 안 될 때라고 했다.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바뀐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이라도 더 친해져서 많은 대화를 하고, 의견을 나누어 좋은 작품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피붙이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그 스태프들과 말이 안 통하면 그거야말로 고역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 초창기에 어느 정도 찾아오는 낯가림 시기가 그에게는 꽤 불편했으리란 결론이 나온다. “재미있는 게,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아마도 군대에 다녀온 뒤부터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거 참, 대한민국 군대가 정말 많은 걸 변하게 한다 싶다.

“<추노>는 작품 자체로서도 좋지만 연기자에게도 정말 친절한 드라마 예요. 여러 모로 안배가 잘 돼 있죠. 주인공의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 등장인물의 에피소드가 알맞게 배합돼서 큰 그림에 함께 어우러져 있어요. 그러니 각 배우들마다 촬영 분량도 적절하고, 시청자들은 보는 재미가 있고, 더불어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지는 거죠.” 그는 지방 촬영이 많아서 집에 거의 못 들어가는 것 말고는 크게 힘든 것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10회까지는 사전 제작을 해두었기 때문에 쫓기듯 촬영하는 일도 없단다. 그래서 그런 명품 연기가 나왔던 것일까. 그에게 드라마뿐 아니라 ‘대길’ 이란 캐릭터가 갖는 매력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뜸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가 뭔지 아세요?” 하고 되묻는다.

“<여명의 눈동자>예요. 격동기에 벌어지는 스토리라는 점도 좋지만 최대치라는 캐릭터가 정말 좋아요. 그런데, 대길이가 최대치랑 닮은 구석이 있어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고 그 사람이 그렇게 된 이유를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 만약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최대치는 그렇게 징병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가 빨치산이 된 것도 버마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기를 처음 살려준 사람이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고요. 주인공이 이념적인 잣대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나름의 삶을 가진 인간으로서, 인물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당시로서는 꽤 신선했지요. 이대길이라는 인물도 그런 면에서 맥락이 비슷해요. 양반이었지만 노비가 도망가서 패가망신했고, 신분제도가 엄격한 사회에서 중인, 천민과 동고동락하며 살고 있죠. 악랄한 추노꾼이면서도 뒤가 켕기는 부분에 대한 잔정이 남아 있는 사람이고요.” 장혁은 작품 촬영에 앞서 감독,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배역을 맡든 제작진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맡은 인물은 점점 장혁과 닮아간다. <타짜>의 고니가 그랬고, <토끼와 리저드>의 은설이 그랬으며, <추노>의 대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굴에 있는 상처, 제가 제안한 거예요. 드라마는 도령과 추노꾼 사이의 10년이라는 세월을 안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나야 하는 거죠. 도령일 때의 대사 톤, 추노꾼이 됐을 때의 톤도 달라야 했고, 외모도 달라야 했죠. 그래서 감독님께 상처 이야기를 꺼냈어요. 액션도 송태하나 황철웅과는 다르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생존을 위한 안무를 제안한 거고요.”

롱재킷은 버버리, 빨간 프린트 스카프는 랑방 바이 무이(Lanvin By Mue).

그는 어느 순간 캐릭터에는 ‘엇박’ 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고, 아무리 슬퍼도 절제할 줄 아는 것. 그런 ‘의외성’ 이 캐릭터에 매력을 부여한다고 믿는다. 대길 역시 몰락한 집안에 대한 설움과 사랑하는 여인의 행방조차 모르는 아픔이 있지만 평소에는 패거리들과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비를 쫓기도 한다. 슬프다고 해서 마냥 슬퍼할 수 없고, 기쁘다고 해서 시종일관 웃을 수만은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기에, 그런 엇박이 더 현실과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제가 봤을 때 진짜 슬픔이라는 건요, 이런 거예요. 예전에 <고맙습니다>에서 의사 역을 맡아서 출연을 앞두고 다큐 멘터리 영화를 찍는 친구를 따라 병원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소아암에 걸린 두 살짜리 꼬마를 우연히 봤죠. 아이가 항암주사를 맞는데, 엄마가 정말 평온한 거예요.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당연히 엄마가 울고, 슬퍼하고 그럴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어디서 슬픔이 느껴졌냐면, 주사 맞는 아이를 잡고 있는 엄마 손에 핏줄이 서 있는 거예요. 혹시라도 아이가 주사를 맞으면서 울거나 움직이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손으로는 꽉 잡고 있으면서 아이를 향해서는 평온한 표정을 짓는거죠. 아이의 아픔에 대한 걱정이 얼굴이 아닌 신체의 다른 부분을 통해서 드러나는 걸 보니 슬픔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는 대길 역을 맡은 뒤 많은 고민을 했고, 캐릭터에 자신만의 리듬감을 부여했다. “개인적으로 이대길 캐릭터에서 꼭 갖고 가고 싶었던 부분이 눈이었어요. 그를 보면 눈이 항상 풀려 있어요. 조여야 될 때 빼고는. 양조위 영화를 보면서 그 배우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떠올린 거죠. <색,계>라는 영화를 보면 그는 반대로 눈에 항상 긴장을 담고 있어요. 끝까지 풀지를 않아요. 그런데 그 눈이 풀리는 순간이, 여주인공과 잠자리를 했을 때예요. 그때 편안함이 느껴져요. 그러다가 보석상에서 진실을 듣고는 또 한번 눈빛이 변하죠.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니까. 순간적으로 느낌이 확 변해요. 그런 느낌이 대길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0년 동안 추노질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베었으며,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겠어요. 그러니 이제는 그 잔인한 일이 습관이 돼 있는 거예요. 어지간한 일에는 눈빛이 돌아오지 않아요. 그런데 뭔가 집중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눈빛이 확 변해요. 그게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천지호를 연기한 성동일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피력 했다. 평소에는 코믹한 캐릭터이지만 노비를 추격할 때와 아끼던 부하가 죽었을 때 달라지던 그의 눈빛, 너무나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서 지극히 일상적으로“ 만득아~ 가자”를 내뱉던 모습에서 그 역시 전율을 느꼈다. <고맙습니다>를 비롯해 <타짜>, <추노>로 이어지는 호화 캐스팅 속에서, 쟁쟁한 선배들의 명품 연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꽤 운이 좋은 배우라고 했다.

이런저런 진지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함께 출연 중인 오지호 이야기를 슬쩍 물어봤다. 두 사람이 함께 작품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고, 극중에서 앙숙으로 나오니 현장에서는 어떨지 궁금했다. “오지호 씨와는 친구예요. 나이가 같아서 지호 씨 친구가 제 친구고 그렇죠.” 데뷔는 자신이 좀 더 빨랐지만 그런 걸 따질 나이는 아니라며 웃었다“. 나이도 같고, 액션 장면 때문에 트레이닝을 같이 하면서 빨리 친해졌어요. 운동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도 있고요. 그 친구는 야구 같은 구기 종목을 좋아하고, 저는 절권도처럼 혼자서 조용히 하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하하. 그렇게 조금씩 친구가 되는 거죠. 차태현 씨와도 <햇빛 속으로>라는 작품을 하면서 친구가 된 걸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연기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배우에게 연기란 스스로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품을 함께 할 때에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대신 숙소에서 술자리를 가지면서 이런저런 고민은 많이 주고받는 편이에요. 결혼 생활이나, 취미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와 인터뷰를 하고 있노라면, 이빨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성실하고 엄격한 배우와 지독스레 연기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느낌을 곧잘 받는다. 사적인 질문을 싫어하니 절대 던지지 말라고 미리 주의를 주는 스태프들의 귀띔만 봐도, 그가 벽창호처럼 연기만 뚫어져라 파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결혼 후 부쩍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 태어난 둘째의 안부를 묻자, 그는 순식간에 아버지가 되었다. “둘째가 태어나니 책임감이 더 커지고, 아버지 생각이 더 났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아버지는 건설업계에서 일하셨는데, 제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가 한창 건설 붐이라 아버지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로 해외에서 일을 많이 하셨어요. 그러니 1년에 기껏해야 한 달이나 보름만 한국에 들어오셨죠. 그래서 제 어릴 때 꿈이 선생님이나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자기 시간도 가질 수 있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는 연기자가 되어 그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하느라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가기 일쑤다. “가족한테 더 잘하려고 밖에서 더 많이 일하는 건데, 오히려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이 더 없어진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많이 미안하고 아쉬워요. 마음은 안 그런데, 저도 고향이 경상도라그런지 무뚝뚝해요. 자상한 아빠이고 싶지만, 늦은 밤에 겨우 집에 가서 아이들 자는 모습만 보는 게 전부예요. 그래도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지난번에는 밤 12시에 인터뷰가 끝났었다. 이번에는 휴대폰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긴 촬영으로 지쳐 있을 그를 배려해 일찍 들어가라고 그렇게 권했건만, 한사코 괜찮다며 길고 성실한 답변을 해주던 그도 시계를 보더니 “이제는 들어가도 될 것 같다” 며 장난 섞인 미소를 지었다.

청바지는 아르마니 진스(Armani Jeans).